오늘 아침 조선일보 귀퉁이에 박원순의 족보와 관련한 기사가 짤막하게 나왔더군요.
박원순 집안의 족보에 박원순의 삼촌이 종조부의 양자로 입적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박원순의 삼촌은 1988년에 돌아가셨고, 아들을 하나 두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족보에는 박원순이 종조부의 양손이나 당숙의 양자로 입양되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박원순측은 족보와 행정상 호적이 다른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박원순측도 족보에는 박원순이 양손으로 입양된 기록이 없고, 종조부의 양자로 입적된 것은 삼촌임을 시인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박원순의 병역특혜와 관련한 가족사에 대해  사실만을 서술해 보겠습니다.

1) 박원순 1956년 출생.
2) 박원순 종조부 일제시기 징용인지, 자발인지 사할린으로 간 후 행방불명.
3) 종조부의 아들(박원순의 당숙), 1969년 사망.
4) 1969년, 박원순의 나이 13세(우리 나이 14세), 박원순 형(박우순)의 나이 17세(우리 나이 18세) 때에 박원순의 아버지는 박원순을 종조부의 양손으로 행정상 호적으로 불법 입적.
5) 박원순은 행정상 종조부의 양손으로 입적됨에 따라 선부망독자라는 이유로 6개월 방위 혜택.
 * 박원순 형(박우순)도 6개월 방위 혜택을 받았는데, 이것은 사유가 이해되지 않음 - 뒤에 다시 논의.
6) 족보상에는 박원순의 삼촌이 종조부의 양자로 입적, 박원순의 삼촌은 아들 하나를 두고 1988년 사망, 족보상에는 박원순이 종조부의 양손으로 입양된 기록이 없음.
7) 박원순은 종조부의 제사를 이 때까지 지내왔으나, 당숙(호적상 아버지?)의 존재는 최근에야 알았다고 함.
8) 박원순의 모친은 1996년에 돌아 가셨지만, 박원순은 공식석상에서 두 번이나 1985년도에 돌아가셨다고 말함.

이상의 사실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1) 집안의 대를 잇고, 제사를 모시는 것을 정하는 것은 실질적인 행위를 우선하지 행정상의 호적을 우선하지 않습니다.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집안의 일(유교적 질서, 제사 지내기, 대 잇기)은 족보가 더 정확히 기록합니다. 행정상 호적 정리는 필요하면 하지만, 실질적으로 필요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관례입니다. 박원순 집안의 족보를 보면 박원순의 삼촌이 종조부의 양자로 입적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유교 질서에 따르면 종조부의 양자로는 삼촌이 맞지, 박원순이 양손으로 들어가는 것은 항렬상으로 맞지 않습니다.  박원순이 양손으로 들어갔다면, 아버지를 건너 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종조부의 양자 형식으로 입적되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둘 다 전통적 유교질서에 반하는 것이죠.

2) 박원순이 13살 때 입양되었음으로 박원순은 성인이 될 때까지 본인이 직접 종조부나 당숙의 제사를 지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은 박원순의 아버지나 삼촌이 지냈을 것입니다. 족보상으로 삼촌이 종조부의 양자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삼촌이 지냈을 확률이 높겠군요.

3) 박원순의 아버지는 박원순 형제의 병역면탈을 위해 불법적으로 박원순을 종조부의 양손으로 행정상으로 입적시켰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족보에도 박원순의 삼촌이 종조부의 양자로 되어 있고, 제사도 삼촌이 지냈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보아  대를 잇기 위함이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박원순을 입양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입양 절차의 불편함과 불법을 저질러가며 무리하게 호적상 입양을 한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4) 박원순은 종조부의 제사도 이 때까지 지내지 않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박원순이 당숙의 존재를 이 때까지 몰랐다고 하는 것은 당숙의 제사는 지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존재 자체도 모르는데 어떻게 제사를 지내줄 수 있겠습니까? 호적상 아버지의 제사는 지내지 않았는데 호적상 할아버지 제사는 지냈다?  박원순이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면서 아버지 제사는 내몰라라 했다면 이건 진짜 후레자식이죠. 박원순이 당숙의 존재를 몰랐다고 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숙은 박원순이 13살 때 돌아가셨고, 행정상 호적으로 아버지가 되는 분인데 그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당숙의 존재를 몰랐다고 하는 자체도 나는 내놓은 자식이다고 자인하는 꼴이죠. 이런 정황을 보면 종조부의 제사는 박원순의 삼촌이 지내왔기 때문에 박원순은 행정상으로만 종조부가 할아버지로 되어 있었지 제사는 지내지 않았겠죠. 종조부 집안의 제사에는 실질적으로 관여도, 관심도 없었을 박원순이 당숙의 제사에 신경을 썼을 리가 없지요.

5) 박원순의 형, 박우순은 어떻게 6개월 방위를 받았을까요? 지금까지 언론이나 박원순측은 박원순이 종조부의 양손으로 가면서 형과 박원순이 모두 6개월 방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병역법상으로 선부망독자인 박원순이 6개월 방위를 받는 것은 정상인데, 박원순의 형은 당시 박원순의 부모가 모두 살아계셨기 때문에 박원순과 달리 선부망독자라는 사유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 잘 아시는 분 계시는지요?
박원순의 아버지의 형제가 몇인지 모르지만 종조부의 양자로 간 삼촌 한 분만이 계셨다면, 삼촌은 양자로, 박원순은 양손으로 가게 해서 박원순의 형을 2대 독자로 만든 것일까요?  그런데 이렇게 할 경우 박원순이 선부망독자 사유가 되지 않게 됩니다. 박원순이 징집대상이 된 시기에 삼촌은 다시 행정상 호적에서 빠져 나와 박원순이 선부망독자가 되게 한 것일까요?

6) 저는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박원순이 "선부망독자"라는 사유로 6방을 받았는데, 이 때 '선부망"에서 "부"가 도대체 누구였는지 궁금합니다. 당숙인지, 종조부인지, 삼촌인지.

박원순은 병역면탈을 주도하거나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하지만 부친의 불법적인 행위로 본인이 병역혜택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박원순은 이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박원순은 오히려 당당하게 나왔습니다. 양손 입양은 관행이었고, 자신은 병역혜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박원순이 병역혜택의 주모자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박원순이 보여주는 태도와 접근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