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은 정의하기 나름이다
 

구소련은 공산주의 사회인가? 현재의 북조선은 공산주의 사회인가? 마오쩌뚱이 지배하던 중국은 공산주의 사회인가? 현대의 중국은 공산주의 사회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공산주의 사회”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있다.

 

자칭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바로 이것이 진정한 공산주의 사회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당신이 꿈꾸는 사회는 가짜 공산주의 사회다”라는 뜻을 함축한다. 나는 개념은 정의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한 사람의 정의가 다른 사람의 정의와 다르다고 둘 중 하나가 진짜 정의고 다른 하나가 가짜 정의인 것은 아니다. 둘이 하나의 용어를 서로 다르게 정의할 뿐이다.

 

만약 학계에서 절대 다수가 어떤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다수파의 정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굳이 “이것이 이 개념의 정의다”라고 밝힐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반면 소수파는 자신의 독특한 정의를 밝히지 않으면 다수파의 정의로 오해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공산주의 개념의 경우에는 널리 받아들여지는 어떤 정의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단적으로 말해 구소련을 공산주의 국가라고 규정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지만 구소련은 공산주의가 절대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지금은 상당히 많아졌다. 구소련을 공산주의 국가라고 규정한다면 공산주의자로 유명한 마르크스와 레닌의 공산주의 개념과 마찰을 빚을 것이다.

 

나는 그냥 내가 꿈꾸는 공산주의 사회를 나 나름대로 정의할 것이다. 물론 이 정의를 몽땅 내가 생각해낸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정의의 구성 요소는 사실상 모두 여러 사상가들이 이미 생각해낸 것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 기존 요소들을 어느 정도 재구성했을 뿐이다.

 

 

 

 

 

나는 왜 공산주의 사회라는 개념을 정의하려고 하나?
 

내가 공산주의 사회라는 개념을 정의하려는 것은 학술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즉 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틀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공산주의자인 나를 따르라”라는 말을 하기 위해 공산주의 사회를 정의하려고 한다. 즉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자”라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만약 공산주의 사회를 정의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데?”, 또는 “구소련이나 북조선 같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하라고? 너 미쳤니?”라는 말을 들을 것이 뻔하다.

 

따라서 공산주의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내가 꿈 꾸는 사회는 바로 이런 사회다”, “나는 사회가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어떤 사람은 그냥 “이덕하가 꿈 꾸는 사회”라고 할 것이지 왜 하필 공산주의 사회라고 이름 붙이느냐고 핀잔을 줄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공산주의자로 유명한 마르크스와 레닌이 꿈 꾸었던 사회와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에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빌어왔다고 변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확장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여러 말이 많지만 실질적인 선거권, 1인 1표제, 표현의 자유, 노동조합이나 정당 결성의 자유, 집회나 파업의 자유 등을 포함한다고 정의한다면 그리 크게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도 이런 자유들을 옹호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이런 자유는 보장될 것이다.

 

나는 거기에 자본주의 사회에는 보통 없는 것을 추가하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총과 돈을 통제하는 조직에는 보통 선거권이 적용되지 않는다. 선거권이 적용되더라도 제한적이다. 예컨대 회사의 사장을 뽑을 때 주주들이 모여서 선거를 하는 기업이 자본주의에서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19세기까지 돈이 많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모여서 정치 지도자를 선거로 뽑았던 것과 비슷하다. 나는 기업의 경우 그 기업에 다니는 노동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선거로 사장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1인 1표제로 말이다. 나는 군대나 경찰에서도 대표를 선거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소환권이 어느 정도 있다. 나는 소환권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선거로 뽑혔다 하더라도 심하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소환되어 경우에 따라 관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공직자들의 임금을 노동자 평균 임금과 비슷하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역시 이 의견에 동감한다. 그래야 돈을 노리고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솎아낼 수 있다.

 

위에서 보여주었듯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기존의 민주주의가 더 확장된다.

 

 

 

 

 

부자의 불로소득의 축소 또는 폐지
 

이윤, 이자, 지대, 상속 등으로 부자들은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소득이 폐지되거나 축소된다. 이윤, 이자, 지대 등은 사라진다. 상속의 경우에는 일정액(예컨대 10억 원)만 상속 받고 나머지는 모두 국가가 몰수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상속 재산을 제외하면 모든 소득은 임금 소득이거나 복지 소득(국가가 제공해 주는 무상 서비스 등)이다.

 

불로소득이라고 볼 수 없는 인세 수입처럼 애매한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상한제를 두면 될 것이다. 현재와 비슷한 방식으로 인세 수입을 얻지만 책 한 권당 일정액(예컨대 1억) 이상이 되면 국가에서 몰수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특허권과 다른 형태의 저작권도 비슷한 방식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다.

 

 

 

 

 

영업의 자유 제한
 

이윤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영업의 자유가 대폭 제한된다는 의미다. 이것을 보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여전히 기업은 있을 수 있지만 기업이 얻은 이윤이 사장이나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일은 없다. 사실 이윤 자체가 없고 주식 자체도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 돌아갈 이윤도 없고 이윤을 받을 주주도 없다.

 

자본주의자들은 보통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유를 추구하고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평등을 추구한다고 한다. 여기서 자본주의자들이 추구한다고 하는 자유는 영업의 자유를 뜻할 때가 많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이 영업의 자유만큼은 엄청나게 제한된다. 이런 면에서 공산주의 사회는 자유가 축소된 사회다.

 

 

 

 

 

가난한 자의 불로소득의 확장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현재의 복지 제도를 더 확장한다. 기본적인 의식주, 정식 학교에서 하는 교육, 의료 등은 무료다. 그리고 어린이, 노인, 환자, 장애인 등에게는 따로 연금도 나온다.

 

따라서 게으른 사람들은 전혀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 단지 남들보다 더 가난하게 살면 된다. 어린이에게는 연금이 따로 나오고 교육 등이 무료이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의 자식도 어느 정도 경제적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다.

 

 

 

 

 

경제적으로 더 평등해지지만 여전히 불평등한 사회
 

상속이 제한되고, 부자들의 온갖 불로소득이 폐지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불로소득이 확장되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평등해진다. 의식주가 공짜기 때문에 극빈층을 형성하는 노숙자가 있을 수 없다(길바닥에서 자는 것이 취향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경제적인 불평등이 분명히 있다. 왜냐하면 상속이 어느 정도 인정되며 임금 소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같은 일을 한다면 더 오래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숙련도가 비슷하다면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에 비해 시간 당 임금을 더 받을 것이다.

 

아마 숙련도가 높은 사람이 시간 당 임금을 더 많이 받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전문 노동은 대체로 일하는 것이 즐겁다. 반면 미숙련 노동은 일하는 것이 지겹다. 일하는 것도 지겨운데 월급도 조금 받으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하지만 숙련 노동자나 전문 노동자들이 소수일 수 밖에 없어서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들이 저항한다면 더 많은 임금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문직 노동자들의 생각이 나처럼 바뀔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리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얼마나 불평등할 것인가? 그것을 미리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생산되는 전체 소비재 중에 어느 정도가 무상 서비스로 제공되고 어느 정도가 임금으로 제공되는지에 달려 있다. 또한 숙련도에 따른 임금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게으른(또는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과 부지런한 사람들의 노동 시간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에 달려 있다. 나는 최상층과 최하층의 소득의 차이가 열 배가 안 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열 배를 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09-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