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적 접근
각자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 데는 전부 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당을 꼭, 어떤 인물을 꼭 지지 해야 (하지말아야) 한다고 절대적인 이유를 말할 수는 없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고향 때문에, 어떤 분들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애증 때문이겠져. 그러니 뭐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건 좀 아닌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개인적인 이유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 볼까 합니다.

저는 지금의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세력을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그 세력이 저를, 그리고 저와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도움을 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도권 사람입니다. 서울서 태어나서 자랐고, 서울에서 살다가 경기에서 살다가 그랬습니다. 부모님 고향도 호남도, 영남도 아니십니다. 물론 부모님의 고향이 어땠건, 저는 자신의 정체성을 수도권(서울)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혹은 다른 정당/세력을 지지 않는) 이유는 지역 문제는 아닙니다.


(2) 개인적으로 바라본 현실의 문제

그보다 저는 중산층과 서민의 경계정도에 있는 삶을 살아 왔습니다. 다행히도, 운이 따랐는지 일신에 몇가지 재주가 있어서,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자리에서 일도 하면서 여러계층의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여가면서 점점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는 어쨌거나 소수의 '이너서클'이 있어서 그 이너서클이 모든 자원과, 자기 발전의 기회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독점하고 있고, 소수의 전문가 그룹이 그 '이너서클'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며, 다수의 (사무직/현장)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은 오직 제한된 기회를 가지며, '효율성을 위한 경쟁'이라는 기치하에 행복하지 않은 삶을 강요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마져 떨어저 나간 사람들은 실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희망없는 삶을 살도록 내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현 시점에서 이너서클의 문은 닫혀 있습니다. 즉 타고 나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못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너서클을 위해 봉사하는 전문가 그룹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 자리는 갯수가 적고, 아주 높은 수준의 경쟁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 경쟁에서 이길수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내 아이들도 그럴수 있을까요? 게다가 결국 전문가 그룹안에서도, 이너서클과의 연줄이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여부에 대한 큰 요건이 됩니다. 내 자신이 그런 연줄이 없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이다음에 혹시 내 자식들의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서, 전문가 그룹 경쟁에 뛰어든다고 하더라도, 저로서는 그런 연줄을 제공해 줄 수 없습니다.

전문가 그룹이 되기 위한 경쟁은 차라리 낫습니다. 만약 개인적인 능력이 그 경쟁에 끼어들 수준이 아예 안되는 사람이라면, 더 끔찍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바로 '생존' 경쟁입니다. 굳이 이너서클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더라도, 단지 결혼하고,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기르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평범한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엄청난 경쟁을 해야 합니다. 나이가 조금 들 때까지 직장을 얻지 못하면 저런 '평범한' 생활을 하기 힘듭니다. 나이가 조금 든 이후에 직장을 잃으면 다시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되고 저 생활은 금방 파탄납니다. 없는 돈으로 자영업을 한다고 한들 쉽게 돈이 벌어질 리가 없습니다. 장사되는 가게는 몇 개 뿐입니다. 가게문 닫지 못해 적자를 무릎쓰고 꾸려갑니다. 내 자식들에게 이 생존 경쟁을 하도록 시키기가 너무 너무 두렵습니다.

만약 경쟁에서 탈락해서 내몰리면. 정말로 고통속에서 허덕이는 삶을 살거나, '저런 낙오자 같은 인간'이라는 시선을 서로가 서로에게 보냅니다. 다른 길이 있긴 합니다. 다른 사람을 등쳐 먹으면서 살면 됩니다. 이너서클에 들어가서, 국가 시스템의 가호를 받으며 남을 등처 먹지 못할바에야, 스스로로 만만한 사람들 등처 먹으면 됩니다.  그리고 이런 투쟁적 경쟁을 강요당하는 현실은 이너서클이 현재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부의 편중을 더 심화하는데 훨씬 더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시켜만 주면 일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는에 월급은 무슨.' '이 친구는 해외 연수까지 갔다 왔는데 자네는 고작 아르바이트 하느라고 학점이 안좋았다고?')


(3) 바라는 현실과 그를 위한 정치 세력.

예,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어느 사회에서나 경쟁은 있어왔고 부의 편중은 자연스러웠습니다.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총생산력이 온 국민의 절대적인 의식주를 해결 못할 정도로 낮은 것도 아닌데, 굳이 큰 부자가 되려는 것도 아닌 사람들 마저도,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만민에 대한 투쟁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가심아픕니다. 그리고  내 자식들에게 그 현실을 물려주기가 너무너무 싫습니다.  그래서 이 현실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정치 세력을 골라서 지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경쟁을 통한 효율성 강화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경쟁을 뚫고 높이 올라간 사람이 더 많은 과실을 먹는 것 자체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능력있는 사람들끼리 전문가 집단의 높은 자리를 놓고 경쟁할 때는 그 룰과 출발선이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공정했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그 경쟁을 포기하고 '소시민'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했을 때는, 소소한 범위에서나마 삶을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를 더 많이 소유한 집단이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은 용인하겠는데, 조금이라도 자신보다 부와 권력이 못한 사람들을 대놓고 '아랫 것'이나 '천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게 하는 사회를 바랍니다.

어느 정당이나 말이야 다 제가 방금 한 것과 비슷한 말을 하겠지만, 내어놓는 정책과 그 정책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봤을 때 지금의 민주당이 저의 이상과 가장 가깝다고 판단되어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더 중요하게 말하자면 저는 한나라당을 증오하기 때문에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이 친일과 독재의 잔재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증오하지 않습니다 외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저는 충분히 존중합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비양심적으로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나랏돈을 제돈처럼 쓰는 무리들이 있긴 합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런 무리들의 그런 행동을 지지하는 것은 아닐테지요. 그보다는 오히려 저는 한나라당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을 지지할 것 입니다. 아무리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일을 벌린다고 하더라도, '이너서클'의 기득권을 얼마만큼 인정할 것이며, 그 바깥에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경쟁을 요구할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스텐스를 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이너서클'의 이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야권 연대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직 '한나라당을 타도하기 위한' 야권연대에 냉소적입니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불법적인 쿠테타로 정권을 탈취한 집단이 아닙니다. 어쨌거나 자신들의 정책 철학-- 경쟁을 통한 효율성 강화, 트리클 다운으로 인한 경기 활성화,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정책 --을 가지고 국민에게 선택받은 합법적 정부입니다. 그러니 정권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는 저 정책철학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다른 정책 철학을 내 세워서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그게 정치인의 기본입니다. 아무런 정책 철학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한나라당] 구호 하나만으로 정확히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국민의 분노의 파도를 타고 정권을 잡는 행위는, 정치인들의 직무 유기요, 국민에 대한 사기입니다.

물론 한나라당의 많은 정치인/공직자들은 합법적 정부 안에서 (자신들의 현재 가지고 있는 그 수많은 기득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개인적인 이득을 얻고자) 온갖 구린 짓을 행했습니다. 그 구린짓을 심판하기 위해서 정권을 잡아온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렇게 범죄한 몇몇 심판한 다음에는 뭘 할건데요? 새 정부에서 땅투기, 탈세를 안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너서클 (이를테면 삼성재벌)의 기득권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가 들어선다면, 저와 같은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나아지겠습니까?

더 극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왜 정치인들 끼리 [통합]이니 [연대]니 하는 거에 동원되어서 다른 사람들이나 입씨름 해가면서 그 장단에 춤을 춰야 겠습니까? 정치인들이 나한테 와서 자기들의 정책에 세일즈 포인트를 요점정리해서 말해줘야죠. 시장으로 말하자면 "우리 회사 물건은 어떤 식으로 만들어줘서, 어떤 식으로 동작할 겁니다. 가격은 얼마입니다."이렇게 말해줘야죠. 그래에 그게 내가 바라는 제품인지 아닌지 알지요. 그게 아니라 물건 만드는 회사 몇개가 자기들 끼리 쑥덕거리더니, "올해는 A,B,C사 제품중 A사만 팔기로 했습니다. 훌륭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업계 1위 D사의 안티이기 때문에, 각 회사의 이익은 일정부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D사 제품에서는 쥐가 나온거 아시죠? 우리꺼 살래요 D사꺼 살래요?"


(5) '친노 그룹'. 민주당. 제3세력 신당.

저는 정치 세력에 대한 충성심, 혹은 정치인에 대한 빠심은 그래서 집어치우기로 했습니다.  

2002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었던 것도 제가 바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서도 아웃사이더 였던 노무현 후보가, 일단 권력을 잡으면 이너서클로 집중되어 있는 사회 구조를 좀 개선해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원칙과 상식>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바로 그걸 이야기 하는 듯 했고요. 이후 열린 우리당 분당시, 호남 기반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큰 상처를 입으셨겠지만, 저로서는 그 시점에서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2)에서 이야기 했던 현실을 탈피해서 (3)에서 바라는 이상을 향해 가까이 가는 정치를 한다면, 그를 위해 영남에서의 지지를 조금 더 탄탄히 하고 싶었다면, 한번 하고 싶은 데로 해 봐라 정도였습니다.(그리고 호남도 그 시점에서는 열린우리당으로 같이 따라갔었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3)의 이상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접근하는데 아주 처참히 실패했습니다. 원-달러 환율 얼마, 일인당 국민소득, 세계 몇대 강대국, 어쩌고 성적표를 흔들어 댔는데, 제가 정말 고치고 싶은 (2)의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이너서클로의 권력과 재력의 집중은 더 심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삼성이 있었고요.) 그렇게 되니 제가 지지해야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더군요.

제가 소위 '친노 그룹'을 탐탐치 않게 보는 이유가 달리 있지 않습니다. 참여정부는 (2)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데 실패했고, 이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리 비극적으로 운명을 달리하셨다고 하더라도 변하지가 않습니다. 후임 이명박 현 대통령이 벌이는 행적이 아무리 더 엉망징창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전의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10 이 -5보다 더 작다고, -5가 양수가 되는건 아니니까요.

어쨌거나 열린우리당은 다시 현재의 민주당이 되었고, 야당이 되었습니다. 현 집권 여당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 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이 버텨준데에 대해서는 일단 감사합니다. 야당이 되엇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삼성과의 컨넥션이 없어져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열린우리당 시절보다는 좀 더 현실 개선에 대한 인식이 조금 개선된것 같습니다. 특히 복지논쟁을 불러일으킨 점, 그래서 소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이 보장받아야 된다는 이슈를 만들어 준 것에도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물론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2)의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여전히 강하게 들어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민주당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제삼세력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존의 정치는 만족스럽지가 못하니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람들입니다. 근데 그 사람들은 (3)을 위해 어떤 비전도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한나라당 민주당 모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 뿐입니다. 새로운 정당,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고만 말합니다. 근데 그렇게 만들어진 새 정당이 '무엇'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책에 관한 입장이 지금 민주당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면, 오히려 지난번 열린 우리당 수준으로 후퇴한다면 그런 새 정당 왜 필요합니까?

그렇게 신당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민주당과 차별화되어서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요? (2)의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건지요.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하려고 하기 때문의 지금 민주당을 부정하는 것인가요. 그냥 단순히 비슷한 (진보) 세력끼리 싸우다 망하지 않으려고요? 열린우리당이 망한게 민노당이랑 싸워서가 아니지 않습니까.

기존의 정치인들은 여야 할것 없이 썩었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근데 그 새로운 인물이란게 누구입니까. 유시민? 문재인? 이해찬? 이 사람들이 정말 새로운 인물인가요? 이 세 사람은 참여정부, 열린우리당이 실패했을 때 그 중심에 있던 사람들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는 열린 우리당의 실패의 책임을 지기 싫어서 그 책임을 전부다 지금의 민주당에게 떠 넘기고,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와 같이 할 수 없다고 핑계 대면서) 도망가 있던 사람들인것 같습니다. 현 집권 세력이 기세가 등등해서 온갖 깽판을 치고 있을때, 이 사람들은 어디서 무슨 역할을 했습니까. 지금 민주당이 했던것 만큼이라도 했나요. 이분들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고 한들, (2)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지난 정부의 현실인식에서 나아간 게 지금 민주당 만큼도 없다면, 그렇담 제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정말로 신선한 뉴페이스는 어떨까요. 조국 교수. 안철수 교수. 박원순 이사장 같은 분들. 박원순씨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와준게 어떻게 보면 잘 된 일 같습니다. 밖에서 훈수만 두던, 현실 정치의 마인드로 무장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실제 혼자서 정치 무대에 뛰어들었을 때의 한계가 어떤지 몸소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지난번 글에도 밝혔지만, 저는 박원순씨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존경할 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진작에 민주당에 들어와서 민주당 정치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민주당의 정책을 가지고,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으셨다면, 그리고 그 테두리 안에서 자기 이상 - 그런게 있다면-을 펼쳐 보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럼 이번 선거에서 보여주신 그 수많은 삽질을 좀 덜하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본인 준비 안된건 어쩔 수 없으셨겠지만.)

저는 이런 뉴페이스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2)의 현실 인식을 공유하고 (3)의 이상을 향해 사회가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있는 정치세력중에서, 정책기조가 그것과 가장 가깝고, 그것을 실제로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제가 생각하는 것은 민주당입니다. 근데 본인들이 하시고자 하는 정책기조가 지금의 민주당과 어떻게 확연히 다르시기에, 지금의 민주당과 함께 할 수는 없으신 겁니까? 민주당이 자리를 마련해서 모셔온다고 해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차이가 큰 것 입니까? 만약 지금의 민주당을 완전히 배재하고 새로 신당 차리면, 어떻게 지금 민주당 보다 더 잘 수행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저는 뉴페이스들이 말하는 '새로운 정치'가 지금 민주당의 정책기조랑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트위터에서 팔로워 많은 순서대로 국회의원 공천 준다는 것은 아닐테고, 뭔가 정권을 잡으면 국정을 운영할 방향이 있을 텐데, 그걸 한번도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민주당에서 영입하는 것을 거부하고 '비민주당'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도 이해가 안갑니다. 민주당 문이 얼마나 헐겁게 열려있습니까? 한나라당에서 홀홀단신 넘어온 손학규가 당대표 합니다. 개혁 공천한다고 공천도 안주던 박지원씨가 살아돌아와서 원내대표 합니다. 충청도랑 전 강원 도지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왼팔 오른팔이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기좀 있을때 들어오면, 그 밑에 줄을 설 국회의원도 널렸습니다. (하하하) 그런데도 민주당에 영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지막으로 신당의 문제입니다. 새로 급조된 정당은 좋은 인물을 많이 모을 수 없습니다. 참신하고, 개혁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들 대신, 다른 정당에서 공천 한번 못받을 법한 사람들이 바람을 타고 몰려와서 기회를 노립니다. 탄핵정국에서, 창조한국당에서, 국민 참여당에서 이런 모습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정상적인 정당활동을 통해서 지역과 밀착하던 지역 정치인 대신, 이런 정치 낭인들이 단일화 바람을 타고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건 길게봐서 야권 전체의 인력풀의 질을 떨어뜨리고, 추후 선거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나쁜 인상만 남겨주게 되니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을 거부하는 데는 저는 한가지 대답 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호남의 (냄새나는) 지지가 부끄럽다.'


(6) 지역문제

서두에서 말씀드렸듯 저는 수도권 연고자라서 지역 문제에서 자유롭습니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디씨 같은데서 '킁킁킁 어디서 홍어냄새가 나는데 무슨 개드립이야.' 이러고 말겠지만.) 그렇지만 호남의 지지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정치에 바라는 것 ((2)의 현실을 (3)의 이상쪽으로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가장 강력한 동맹입니다.

이론적으로 지역문제(영호남 출신 지역에 따른 자원의 배분 불균형 문제)와 개혁문제 (이너서클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자원 배분 불균형 문제)는 서로 독립적인 (independent)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두 문제는 서로 깊은 연관관계(correleation)에 있습니다. 쉽게 말해 영남지역 출신은 이너서클을 이루는 하나의 큰 축입니다. (고-소-영이 괜히 나온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너서클에 몰려있는 자원과 권력을 재분배하는 일은 영남에 몰려있는 자원을 재분배하는 일과 연결되어 집니다.

반대로 호남의 역할은? 호남의 역할은 학교에서의 왕따 학생의 역할, 조선시대 천민(백정, 광대)의 역할, 인도 카스트 제도의 불가촉 천민의 역할과 유사합니다. 계급화된 사회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서 (냄새가 난다던지, 피부색이 다르다던지, 신의 저주를 받았다던지, 남의 뒤통수를 잘 친다던지) 하면서 계급의 맨 밑바닥에 놓고 천대하고 박해하도록 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그 박해에 동참하면서 자신들이 그 천대받는 계급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만약 그 박해에 참가할 것을 거부할 경우, 자신들도 같은 취급을 받을까봐 무의식적으로 두렵게 생각합니다. ("너도 홍어지?") 이 설정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건 계급의 최상층, 즉 이너서클입니다. 아래층 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을 박해하고 싸우느라, 정작 이 부조리에서 이익을 얻고 있는게 누구인지 생각할 수가 없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호남인들의 제일 야당에 대한 지지는, 이너서클 중심으로 과도하게 돌아가는 사회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저의 정치적인 욕망과 상당부분 일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호남사람들의 지지는 저의 입장에서 봤을때 가장 큰 동맹입니다.

인정합니다. 호남 지역 정치인 중에 순수하게 자기 지역 발전이라는 이기적인 목표를 압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데 그건 어느 지역 (충청도건, 강원도건, 심지어 경상도건) 정치인도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지역 정치인이 그 지역 유권자에게 이루어 져야 하는 의무와도 같습니다. 과도하게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이너서클을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정권을 잡기 위해 이런 세력들과는 얼마던지 (계약을 통한) 동맹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호남뿐 아니라 충청, 강원출신 정치인과도요. 그리고 이걸 '정치'라고 부릅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상을 세우기 위해 호남은 무조건 적으로 희생하고 뒤로 빠져라, 안그러면 경상도 지역주의와 다를게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계신다면. 만약 호남의 지지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시다면. 그분들은 제가 가지고 있는 현실 인식과 아주 다른 인식을 가지고 계시거나, 아니면 본인들이 또 다른 이너서클이 되고 싶어하시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7) 정리 및 마무리

저는 지금의 현실이 이너서클에게 과도하게 자원과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경쟁을 강요하는 그런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회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기조를 가진 정치 세력, 그리고 그 정책기조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정치 세력을 지지하기 때문에, 현재의 제일 야당인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그러므로 저의 지지는 팬덤의 지지가 아닌 소비자의 지지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민주당 보다 (1) 저의 이상적인 목표를 더 잘 이룰 수 있는 정책 기조를 제시하고, (2) 그 정책 기조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능력을 지닌 정치 세력이 있다면 저는 그 세력을 기꺼이 지지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뉴페이스를 바탕으로한 제삼세력도, 아니면 심지어 야권 통합신당도 이 두가지 기준을 놓고 봤을 때, 지금의 민주당 보다 더 나을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현재의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것을 더 약화 시키는 결과만 나올 것 같아서, 그런 움직임에 매우 부정적입니다.

아 물론 이 모든 견해는 개인적인 견해이며, 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충분히 존중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자는게 아니라, 아직 견해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의 관점을 좀 공유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에피소드를 하나 떠올리며 마치겠습니다. 한 10년쯤 전에,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의회 다수당 후보의 위세가 아주 막강한 상태였는데, 제2당 후보의 지지율이 낮았습니다. 그래서 일각의 사람들이 제2당의 지지율과 후보의 지지율이 낮아서 안된다며, 지지율이 높던 무소속 제3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했었더랍니다. 천신 만고 끝에 단일화가 이루어 지고, 제2당 후보로의 단일화가 성사되기는 했지만, 그때 단일화를 추진했던 사람들은 엄청난 성토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을 우리말로 하자면 '후보단일화협의회'라고 했었죠. 지금의 단일화 추진 세력이, 그때 그나라의 단일화 추진 세력보다는 나은 사람들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