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할 때에는 지극히 조심해서 표현한다. 안 그러면 학술지 편집자들이 받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과 관련된 논문일 때에는 “이 가설에 부합하는 이런 저런 현상들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확신을 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고 여러 가지 난점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연구해 보아야 한다” 정도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중서나 신문에서는 같은 연구가 상당히 다르게 소개된다.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수식이나 개념이 사라지면서 가설이 단순화되어 소개되는 일이 많다. 단순화는 많은 경우 왜곡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논문보다 덜 조심스러운 표현들이 등장한다. 논문 발표자는 “이 가설에 부합하는 현상들이 있으며, 나는 이 가설이 상당히 가망성이 있다고 믿으며, 앞으로 계속 연구해 보겠다”는 정도로 이야기했는데 대중서나 신문에서는 마치 그 가설이 확실히 입증된 것처럼 단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거기에 연구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와 저자가 자신도 모르게 왜곡을 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상당히 보편적인 것 같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진화 심리학 논문들을 직접 읽어 보시라. “may”, “might”, “perhaps”, “possible”, “can”, “could”, “plausible”과 같은 단어들이 짜증나게 많이 등장한다. 반면 대중들이 접하는 진화 심리학 소개 글에서는 그런 단어들의 빈도가 상당히 줄어든다.

 

대중서나 신문 기사만 보면 진화 심리학자들이 잘 검증된 명제와 아직 가설일 뿐 명제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진화 심리학자들을 그런 식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서나 신문에서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고, 심지어 글쓴이의 무지로 인한 왜곡도 일어나는 것은 진화 심리학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진화 심리학에 매혹된 사람이든, 진화 심리학을 증오하는 사람이든 대중서는 대중서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진화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대중서만 봐서는 안 되며, 진화 심리학을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대중서만 비판해서는 안 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자연 선택과 관련된 그럴 듯한 이야기를 끝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적응 이야기 즉 적응과 관련된 착상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다. 설사 그런 착상들 중 90% 이상이 쓸모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의미가 있다. 물론 모든 착상이 진리라면 좋겠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착상 능력이 없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내 착상은 곧 진리다”라고 믿는가? 나는 그렇게 바보 같은 진화 심리학자는 한 명도 못 봤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할 때 아직 확실한 증거가 안 나왔는데도 자신이 발표한 이론의 우아함 때문에 거의 확신했다고 한다. 물론 진화 심리학자도 때로는 자신의 착상이 진리로 드러날 것이 뻔하다고 확신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이것은 상당히 가망성이 있겠군”, “이것은 약간이라도 가망성이 있지 않을까?”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자신의 착상에 대해서 떠들어 대거나 글을 쓰는 것이 잘못인가? 아니다. 때로는 착상 자체가 대단한 과학적 업적으로 인정 받을 만할 때가 있다. 그리고 착상을 잘 정리된 가설로 다듬는 과정에서 토론이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글로 써서 착상을 공개적 토론에 부치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실험과 관찰을 통해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를 찾거나 가설을 반증하는 것만 과학인 것은 아니다. 착상을 떠올리고 그것을 가설로 만드는 과정에서 개념적 교통 정리를 하는 것도 과학에서 중요하다.

 

 

 

일부 대중서 저자들이나 신문 기자들이 착상일 뿐인 것, 또는 아직 증거가 부족한 가설일 뿐인 것을 마치 잘 검증된 명제나 되는 것처럼 쓴다고 해서 진화 심리학자들의 잘못인가? 아니다. 진화 심리학자들에게 전 국민을 가르칠 의무는 없다.

 

과학 교육을 조금이라도 받은 사람은 “아직 가설에 불과한 명제”와 “잘 검증된 명제”가 매우 다르다는 것쯤은 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이런 것도 구분 못하는 바보는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잘 확립된 현상에서 출발하여 가설을 만들지 않고 진화론의 논리에서 출발하여 가설을 마구 만들어내는 것에 시비를 건다. 하지만 오히려 가설에서 출발하여 현상을 발굴한다면 더 인상적이다. 잘 알려진 현상에서 출발하여 가설을 만든다면 끼워 맞추기식 설명이라는 비판을 듣기 십상이지만 가설에서 출발하여 누구도 알지 못했던 현상을 발굴하게 된다면 그런 식으로 비판하기 힘들다.

 

 

 

진화 심리학에서는 물리학이나 화학에서처럼 환상적인 정량 분석이 가능할 때가 별로 없다. 따라서 물리학이나 화학에서처럼 확실히 입증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유치한 수치화를 해 보자. 수학의 증명을 100의 확실성이라고 하고, 상대성 이론처럼 잘 검증된 이론의 확실성을 90이라고 하자. 그리고 증거가 하나도 없는 경우를 0이라고 하자. 수학에서처럼 확실히 반증된 경우는 -100이라고 하자. 진화 심리학 명제의 경우에는 90에 도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가설의 경우에는 20 정도일 것이고, 어떤 가설의 경우에는 50일 것이고, 어떤 가설의 경우에는 70 정도일 것이다.

 

수학 정리들의 경우에는 몽땅 확실성이 100이다. 물리학 명제들의 경우에는 90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반면 진화 심리학의 경우에는 0에서 80 사이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편의상 음수 쪽은 제외하자). 따라서 입증/반증 이분법으로는 진화 심리학 명제의 입증 정도를 표현하기 힘들다.

 

어떤 진화 심리학 명제를 보았을 때 “그 가설은 입증되었는가?”라고 묻는 것보다 “그 가설은 얼마나 입증되었는가?”라고 묻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입증”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 80에서 “전혀 입증되지 않음”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0까지 어디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들은 무엇이고, 그 가설과 충돌하는 증거들은 무엇인지를 종합해 보고 대충 “30 정도 입증되었군”이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증거만큼만 믿으면 된다. 그런데 증거를 음미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제시하는 증거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진화 심리학의 검증 방법론에 정통해야 한다. 검증 방법론에 정통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검증 방법들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여기에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 또 있다. 검증 방법론에 대해서도 학자들끼리 논란이 많다. 이런 일은 물리학계나 화학계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검증 방법을 누구는 인정하고 다른 누구는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검증 방법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먼저 정립한 후에 그 입장에 비추어 증거들을 음미한 후 그 만큼만 믿으면 된다. 많은 경우 이것은 초보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과업인 것 같다.

 

 

 

그렇다면 초보자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무조건 조심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즉 아주 확실해 보이는 증거를 충분히 접해 보지 못했다면 그냥 가설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하다. 물론 초보자가 보기에 아주 확실해 보이는 증거도 전문가의 눈에는 그저 그런 증거일 뿐일 수도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이것은 실천적으로 훌륭한 전략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진화 심리학 지식을 교육, 정치, 경제, 의료 등에 적용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착한 사람이 착한 일을 하기 위해 잘 검증된 진화 심리학 지식을 적용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초보자는 무엇이 잘 검증된 지식인지 가리기 힘들다. 잘 검증되지도 않은 명제를 적용한다면 착한 사람이 좋은 의도로 해도 나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1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