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설계의 논증과 창조론자의 반격」에 “왜 우주의 물리 법칙들과 우주 상수들은 마치 인간과 같은 복잡한 생명을 만들기로 작정한 것처럼 생겨먹었을까?”라는 질문이 등장했다.

 

이 질문에 답하는 전략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머리를 긁적이며 “그것 참 희한하네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 지능이 뛰어나고 손재주가 좋은 신이 자연 선택에 의한 인간의 진화까지 미리 염두에 두고 물리 법칙들과 우주 상수들을 의식적으로 설계했다고 이야기하는 방법이 있다.

 

셋째, 세상에는 무한히 많은 우주가 있어서 어떤 우주는 공간이 2차원이고, 어떤 우주는 공간이 3차원이고, 어떤 우주는 공간이 4차원이고, 어떤 우주는 공간이 5차원이고, 어떤 우주는 만유 인력이 아예 없고, 어떤 우주는 만유 인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어떤 우주는 만유 인력이 거리의 40제곱에 반비례하고, 어떤 우주는 거의 제곱에 비례하고, 어떤 우주는 전자가 있고, 어떤 우주는 전자가 없는데 그 중에 극히 일부의 우주에서만 인간과 같은 지적인 존재가 진화할 수 있으며 마침 우리 인간이 사는 우주가 바로 그런 우주들 중에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대답에 비해 두 번째와 세 번째 대답에는 설명 또는 이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녹아 있는 것 같다. 정말 그런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상 우주 A와 우주 B는 어떤 상호 작용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주 A에서는 우주 B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관찰할 수 없다. 물론 우주 B가 존재하는지 여부도 관찰을 통해 알 수 없다. 따라서 아예 검증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과학자들은 검증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명제를 가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검증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명제가 옳은지 여부를 전혀 가릴 수 없다. 설명이나 이해는 옳아야 의미가 있다. 완전히 틀린 것이라면 설명이나 이해라고 부를 수 없다. 비슷한 이유로 옳은지 여부를 전혀 가릴 수 없는 것을 나는 설명이나 이해라고 부르지 않을 생각이다.

 

 

 

『만들어진 신』에서 도킨스는 “신이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신 가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신 가설이 거의 틀린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나는 아예 다른 전략으로 창조론을 비판할 생각이다. 나는 “신이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아예 가설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가설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신이 남자를 먼저 창조한 후 남자의 갈비뼈를 뽑아서 여자를 창조했기 때문에 남자는 갈비뼈가 하나 부족하다”는 식의 명제는 검증이 가능하다. 수많은 남자들의 X-ray 사진을 찍어서 갈비뼈의 수를 세 보면 된다. 이런 경우 가설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똑똑한 창조론자들은 이런 바보 같은 명제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순수한” 형태의 창조론을 내세우며 그것은 검증이 불가능하다.

 

 

 

검증이 불가능한 명제는 수도 없이 만들 수 있다. 우주의 개수와 관련하여, “우리가 사는 이 우주 단 하나밖에 없다”, “우주는 다섯 개 있는데 그 중에 두 개에는 생명체가 산다”, “우주는 무한히 많이 있는데 그 중 단 한 곳에서만 생명체가 산다”, “우주는 무한히 많은데 그 중 생명체가 사는 곳은 96123개다”와 같은 명제들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명제도 검증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우주는 무한히 많은데 그 중 생명체가 사는 곳은 96123개다”라는 명제를 믿는다고 해도 누구도 내가 틀렸음을 입증할 수 없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그런 명제가 도대체 세상을 이해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나?

 

 

 

신에 의한 우주 창조와 관련하여, “신은 우주를 약 6000년 전쯤에 창조했는데 공룡 화석까지도 창조해서 마치 우주가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라는 명제가 있다. 일부 기독교인들한테 이 명제가 인가 있는 듯하다. 누군가 “신은 우주를 약 6000초 전쯤에 창조했는데 공룡 화석이나 에펠탑 같은 것까지도 창조하고 과거에 대한 인간의 기억까지도 조작해 놓아서 마치 우주가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라고 주장한다고 하자. 두 명제 모두 반박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기독교인들은 보통 “신이 우주를 창조했지만 신은 스스로 존재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나보다 우주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뻐긴다. 만약 누군가가 “신이 우주를 창조한 것은 맞지만 신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신은 메타-신이 창조했다”라고 이야기한다고 하자. 그러면서 우주의 기원을 모른다고 하는 나보다 우주를 더 잘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의 기원을 모른다고 하는 기독교인보다 신을 더 잘 이해한다고 뻐긴다고 하자. 물론 메타-신에 대한 그의 명제도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는 정말 신의 기원에 대해 기독교인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일까? 아마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메타-신이 신을 창조했다”는 명제가 신을 이해하는 데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왜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명제가 우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201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