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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Harry Should Avoid Meeting Sally (By Stanley Fish)

해리가 샐리를 만나는 것을 피해야 할 때 (스탠리 피쉬)

 

* 출처: <뉴욕 타임즈> 독자투고란 / 2011103

http://opinionator.blogs.nytimes.com/2011/10/03/when-harry-should-avoid-meeting-sally/

 

A philosopher I know told me that once, when he was explaining his views on a contested matter to a group of his peers, he was met with this objection: “But that sounds like Stanley Fish.” I would bet that no one else in the room had ever met me and that few if any had ever read me. It is just that for many in his corner of the discipline, “Stanley Fish” is a placeholder for ideas you don’t want to be associated with. Saying of someone that he sounds like Stanley Fish is a quick and easy way of refuting him. You might say that it takes the place of an argument or, perhaps, that it is an argument all by itself and one that can be conveniently made in shorthand. (It’s not quite ad hominem; it’s ad hominem backed up by reasons that don’t even have to be given.)

 

내가 아는 한 철학자는 내게 언젠가 그가 논란되어온 한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일단의 동료들에게 설명하고 있었을 때, 다음 반대에 부딪혔다고 얘기했다: “그렇지만 그건 스탠리 피쉬의 말처럼 들리는 군요.” 나는 그 방의 어느 누구도 그때까지 나를 만난 적이 없으며 그들 중 내 책을 읽은 이들이 있다 해도 극소수일 거라는데 내기를 걸 수 있다. 그의 전문분야의 많은 종사자들에게, “스탠리 피쉬는 동의하고 싶지 않은 생각의 대명사이다. 누군가에게 그의 말이 스탠리 피쉬의 말처럼 들린다고 말하는 것은 그를 반박하는 신속하고 편리한 방식이다. 당신은 그것은 하나의 논변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또는, 아마도,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전적으로 하나의 논변이며 편리하게 속기될 수 있는 논변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순전한 대인논변이 아니다; 그것은 제출될 필요조차 없는 이유들에 의해 뒷받침되는 대인논변이다.)

 

I didn’t resent the anecdote at all. I took it as a compliment. After all, you don’t get to be the poster boy for obvious error everyday. It takes work and some measure of prominence. I of course have my own Stanley Fishes, figures whose writings and thought I consider to be so wrongheaded that when someone I encounter seems to be echoing them or approving them or even being nice to them, I dismiss out of hand what I’m hearing or reading.

 

나는 그 일화에 전혀 분개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매일같이 명백한 실수를 저질러서는 포스터 보이가 될 수 없다. 포스터 보이가 되는 데는 노력과 일말의 탁월함이 소요된다. 나는 물론 내 자신의 스탠리 피쉬들을 갖고 있다. 나는 그 인물들의 저작과 사상을, 내가 마주친 누군가가 그들을 반향하고 있거나 찬성하고 있거나 찬양하기조차 하는 것처럼 보일 때, 내가 듣고 있거나 읽고 있는 것을 즉시 기각할 정도로 그릇되었다고 여긴다.

 

* 포스터 보이(poster boy) - 한 특정한 성격, 대의, 의견, 기타 등등을 대표하는 사람

 

The German philosopher Jürgen Habermas is a luminary who occupies such a place in my anti-pantheon. I have been throwing verbal brickbats at Habermas for years (I once even called for him to be prevented from writing anymore; I didn’t specify the means), poking academic fun at his slogans (like “ideal speech situation” and “universal pragmatics”) and trumpeting the emptiness of his program to anyone who would listen.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내 반()-만신전((萬神殿)에서 그러한 자리를 점하는 한 유명인사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하버마스를 비난해 왔다(나는 언젠가 그가 집필을 계속하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이상적 담화 상황보편적 화용론같은) 그의 구호들에 학술적 조롱을 던지고 경청하고자 하는 어느 누구에나 그의 프로그램의 공허함을 떠벌리면서 말이다.

 

This means that Habermas (along with a few others I will not name) is very important to me. I feel that I couldn’t get along without him. I need him to be there. If he were taken away from me, I wouldn’t know what to do. I’d have to find someone else to be the object of my unreflective scorn. And that would prove difficult, given that Habermas, or anyone else who might fill this slot, has very particular views (the ones I love to hate), and installing a disciple or a simulacrum in his place would not really be satisfying.

 

이것은 하버마스가 (거명하지 않을 다른 몇몇 이들과 나란히) 내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 없이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잘 해낼 수 없을 것처럼 느낀다. 나는 그가 거기에 있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가 내 앞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나는 나의 무반성적 비난의 대상이 될 그 밖의 누군가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버마스가, 또는 이 명부를 채울 그 밖의 누구든 그 누구가 매우 특수한 견해 (내가 증오하기를 즐기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자리에 신봉자나 모조품을 앉히는 것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으리라는 것을 고려하면, 힘든 걸로 증명될 것이다.

 

But how could Habermas ever be taken away from me? Even if he were no longer publishing, I could always have recourse to his previous writings whenever I needed to signal a negative judgment; I could still say (dismissively), “sounds like Habermas” and leave it at that. So no matter what he does or doesn’t do, he’s still mine. The only thing that might take him away from me is meeting him, something I was threatened with a few years ago in Chicago, but something I avoided like the plague.

 

그런데 과연 어떻게 하버마스가 내 앞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그가 더 이상 출판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하나의 부정적 판단을 신호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그의 이전 저술들에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퇴짜 놓으면서), “하버마스의 말처럼 들리는 군요라고 말하고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든 그는 여전히 나의 것이다. 내 앞에서 그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을 유일한 것은 그를 만나는 것 - 몇 년 전 시카고에서 일어날 뻔 했지만 내가 돌림병 피하듯 피했던 것 - 이다.

 

Why? Because were I ever to meet him, the odds are that I would like him (the public record suggests that he is an admirable fellow) and if I liked him it would be hard for me to continue beating up on him. (Despite the proverb, familiarity does not breed contempt.) In fact I would immediately regret, and want to take back, all the nasty things I had said with such zest.

 

? 그를 만나게 된다면 그를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고 (공개되어 있는 기록은 그가 찬탄할 만한 상대임을 시사한다) 그를 좋아한다면 그를 계속 때려대는 것이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속담에도 불구하고, 친근함은 경멸을 낳지 않는다.) 사실 나는 즉각 후회할 것이고 내가 열심히 말했던 그 모든 험악한 것들을 철회하고 싶을 것이다.

 

Indeed, this has happened to me several times. I got to know long-time personal piñatas and found that they were can you believe it? human beings, often perfectly nice human beings with perfectly nice families. Even worse, the first words out of their mouths were sometimes, “I admire your work” and once an author hears that, his estimation of the person voicing this pleasing judgment immediately rises. (She thinks I’m good, therefore she must be good.)

 

정말이지, 이것은 내게 여러 번 일어났던 일이다. 나는 오랜 동안의 개인적 피냐타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 믿을 수 없게도 - 인간들임을, 종종 완벽하게 훌륭한 가족들과 사는 완벽하게 훌륭한 인간들임을 발견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입들에서 튀어나온 첫 번째 말은 때때로, “당신의 저작은 감탄스럽더군요이었다 - 그리고 일단 한 저자가 그런 찬양을 듣게 되면 이 기분 좋게 하는 판단을 행하는 이에 대한 그의 평가는 즉각 상승한다. (그녀는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녀는 대단함에 틀림없다.)

 

* 피냐타(piñata) - 크리스마스 파티나 생일 파티 때 사용되는, 사탕이나 장난감이 들어 있는, 천정 따위에 걸어 늘어뜨리게 되어 있는 장식물. 본문에서는 유치하고 경박한 언사를 일삼는 이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듯 하다.


At that moment your inventory of ready-made-always-available-in-a-pinch targets would be diminished by one, and since the list is never really that long, the loss of one would be serious. Of course, it might be the case that the person you have learned to dislike in print is even more dislikable in the flesh (oh happy day!), but you can’t count on that and so it is better, all things considered, not to take any chances. (The reverse story, where in-the-flesh dislike proves no match for epistolary affection, has been told in a play and in the three movies and one stage musical it has spawned “The Shop Around the Corner,” 1940; “In the Good Old Summertime,” 1949; “She Loves Me,” 1963; and “You’ve Got Mail,” 1998.)

 

그 순간 당신의 <언제나 가용하도록 준비되어 있는 꼬집을 표적물들>의 일람표에서 표적물 하나가 줄어들게 되는데, 그 명세서는 결코 그다지 길지 않기 때문에, 표적물 하나의 상실은 심각한 사태일 것이다. 물론, 당신이 인쇄물로 접하고 싫어하게 된 사람이 (다행스럽게도!) 실물로 접하면 훨씬 더 싫어할 만한 사람인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당신은 그 경우를 기대해서는 안되며 모든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실물을 접할 수 있는 어떤 기회도 마다하는 것이 더 좋다. (실물로는 싫은 사람이 편지로 정감을 나누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인걸로 증명되는, 그 역()인 이야기가 희곡 하나와 그 희곡이 파생시킨 세 편의 영화들과 한 편의 뮤지컬 공연에서 펼쳐진 적이 있다 - <길모퉁이 가게> (1940), <그 좋았던 여름날들> (1949), <그녀는 나를 사랑해> (1963) 그리고 <유브 갓 메일> (1998).)

 

The psychology I am describing is not limited to the academic world. There may be a politician who embodies every idea and policy you detest and fear. There may be a distant family member whose (no doubt) unmerited success gives you a receptacle for your resentment and envy. There may be an athlete who is your example of everything that is wrong with the modern world. These are valuable people and you want to hold on to them.

 

내가 기술하고 있는 심리작용은 학계에 제한되지 않는다. 당신이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생각과 정책을 구현하는 정치가가 있을 수 있다. 그의 (의심의 여지없이) 부당한 성공이 당신에게 마음껏 분개하고 질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 성원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이 현대 세계에서 그릇된 모든 것의 사례로 여기는 운동선수가 있을 수 있다. 이들은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며 당신은 그들을 붙잡고 있고 싶어 한다.

 

So whoever are the characters filling out your precious roster of perfect villains and nogoodniks, take care not to meet them. And if one of your antiheroes happens to turn up in a coffee shop you’re sitting in, get up and leave immediately.

 

따라서 누가 당신의 귀중한 <완벽한 악당들과 시시한 인물들> 명부를 채우든 간에, 그들을 만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고 당신의 반()영웅들 중 하나가 우연히도 당신이 앉아있는 커피 숍에 나타난다면, 일어나서 즉시 자리를 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