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 Kitcher의 주장
 

Philip Kitcher가 『Vaulting Ambition: Sociobiology and the Quest for Human Nature』에서 사회생물학자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발표할 때 다른 학자들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어 보지 않았다. 나중에 그 책을 읽고 좀 더 상세히 비판할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은 사회생물학이라는 용어는 잘 쓰이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행동 유전학과 진화 심리학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사회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이 다른 면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다루는 주제의 측면에서는 둘을 동일시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Kitcher는 왜 진화 심리학자가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 이유는 물리학이나 화학에 비해 진화 심리학이 이데올로기의 문제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Herbert Spencer를 비롯하여 진화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매우 반동적인 정책을 주창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즉 진화 심리학 가설은 그 이데올로기적 파장이 상대적으로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Kitcher에 따르면 진화 심리학자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섣부르게 발표해서는 안 된다.

 

내가 보기에는 Kitcher의 이런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생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왜 동의할 수 없는지에 대해 쓸 것이다.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행동 유전학과 진화 심리학의 가설들
 

행동 유전학이나 진화 심리학 가설들 중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많다.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지능의 선천적 개인차. IQ는 지능의 여러 측면 중 과학기술 능력을 그럴 듯하게 측정하는 것 같다. 만약 IQ를 타고난다면, 그리고 IQ가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끼친다면 사회 계급, 지위, 신분, 수입의 개인차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타고난 IQ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이런 명제는 계급이나 수입의 차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

 

둘째, 지능의 선천적 성차. 만약 남녀가 서로 여러 측면에서 선천적으로 지능이 다르다면 어떤 직종의 남녀의 임금이나 직급의 차이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타고난 성차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이런 명제는 여성 차별이 존재하는 곳에서 그 원인을 엉뚱하게 타고난 성차로 돌릴 위험이 있다. 게다가 “여자는 지적으로 열등하다”와 같은 성적 편견을 강화할 위험도 있다.

 

셋째, 지능의 선천적 인종차. 만약 인종마다 IQ가 선천적으로 다르다면 한 나라에 사는 여러 인종의 서로 다른 처지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선천적 IQ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이런 명제는 인종 차별이 존재하는 곳에서 그 원인을 엉뚱하게 타고난 인종차로 돌릴 위험이 있다. 게다가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와 같은 인종적 편견을 강화할 위험도 있다.

 

넷째, 남자의 강간 메커니즘 또는 정신병질이 적응으로서 진화했다는 가설.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이런 가설은 강간범이나 정신병질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 원래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다섯째, 남녀의 선천적 성격 차이에 대한 가설들. 두 가지만 들어보자.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보다 선천적으로 더 공격적이라는 가설은 남자의 공격성을 정당화할 수 있다. 여자가 남자보다 자식을 선천적으로 더 사랑한다는 가설은 여자를 가족에 묶어두려고 하는 반동적 가족 이데올로기에 봉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동 유전학과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가설들은 안 위험했나?
 

Kitcher의 핵심적 오류 중 하나는 마치 한 쪽의 가설들만 위험하다고 가정했다는 점이다. 나는 선천론에 강조점을 두는 행동 유적학과 진화 심리학의 가설들과 환경론에 강조점을 두는 다른 가설들 중에 어느 쪽이 정치적으로 더 위험한지 잘 모르겠다. 둘을 비교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정량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환경론이 실제로 어떻게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몇 가지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첫째, 자폐증에 대한 일부 정신분석가들의 가설. 행동 유전학자들은 자폐증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즉 운 나쁜(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운 좋은)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이 자폐증을 얻게 된다. 이에 대해 상당히 환경 결정론적인 일부 정신분석가들이 반대했다.

 

그들에 따르면 자폐증은 순전히 환경 탓이다. 정신분석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상호작용을 매우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자폐증의 원인이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는 방식에 있다는 가설이 탄생했다. 자폐증 어린이와 그 부모의 상호작용을 관찰한 그들은 그런 부모가 다른 부모들에 비해 자식을 냉담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런 관찰을 바탕으로 그들은 부모가 자식을 냉담하게 대했기 때문에 자식이 자폐증이 되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물론 온갖 골치 아픈 정신분석 전문 용어들을 사용해서 복잡한 이론을 내세웠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위에서 소개한 “냉담 가설”이 그 골자다. 어차피 나는 정신분석이 미신이라고 보기 때문에 깊이 파고들 생각도 별로 없다.

 

만약 내가 자폐증 어린이의 부모라면 그런 정신분석가가 옆에 있다면 따귀라도 날려주고 싶을 것 같다. 정신분석가의 그런 헛소리는 상처 잎은 부모에게 소금을 치는 격이었다. 실상은 어떤가? 물론 자폐증 어린이의 부모는 자폐증 어린이와 별로 교감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자폐증의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부모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아무리 해봐도 자식의 반응이 없자 체념한 것이다.

 

이것은 환경 결정론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자폐증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온갖 발달 장애에 모두 해당된다. 그리고 정신병질(psychopathy) 문제에도 해당된다. 만약 정신병질이 순전히 환경 탓이라면 부모가 잘못 교육했기 때문일 것이다. 행동 유전학자들은 온갖 발달 장애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유전자 탓이라는 것을 온갖 증거로 입증했다. 그리고 이것은 정신분석을 배우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기도 하다.

 

둘째, 성적 학대가 강간범을 만든다는 가설. 이 가설에 따르면 어렸을 때 성적 학대를 받은 사람은 그 상처 때문에 강간범이 되기 쉽다. 나는 이 가설이 옳은지 여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가설이 어떻게 강간범에 의해 응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강간범은 법정에서 “나는 어렸을 때 학대 당했어요. 강간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이 경험 때문이죠”라고 변명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강간 유전자가 있다는 행동 유전학자의 주장이나 강간 메커니즘이 적응으로서 진화했다는 진화 심리학자의 주장이 강간범에게 “제 행동은 순전히 유전자 탓입니다”라는 변명의 여지를 줄 위험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환경 결정론적 가설도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비슷한 방식으로 변명의 여지를 줄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다른 온갖 환경 결정론적 가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강간범은 “제가 강간을 한 것은 순전히 가부장제 문화 때문입니다”라고 변명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남녀의 지능, 성격, 취향의 선천적 차이가 전혀 없다고 보는 가설. 실제로 20세기에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이렇게 믿었다. 그리하여 어떤 학과나 직업에서도 성비율이 50:50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무언가 차별이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고속도로 정비와 같이 여자가 별로 할 것 같지 않은 힘들고 위험한 일에 여성 고용자가 적다는 이유로 고소를 했고 조사까지 벌였다. 이런 일은 상당히 여러 번 일어난 것 같다. 단지 성비율이 50:50이 아니라는 이유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닌다면 진짜로 여자를 차별하는 곳에 쏟아야 할 돈과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다. 또한 무고한 사람들이 조사를 받는 피해도 생긴다.

 

만약 모든 학과의 성비율이 정말로 50:50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그 비율에 맞추겠다는 욕심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은 사람들의 학과 선택이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구소련 “공산주의”에서는 서구에 비해 여자가 온갖 직업에 진출한 것을 자랑했다. 나는 구소련의 실정에 대해 상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탄광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이 상당히 많았던 점을 고려할 때 지독한 독재 국가인 구소련에서 과연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일에 나섰는지는 의심해 볼 만한 것 같다.

 

만약 부모가 정말로 취향의 선천적 남녀차이가 없다고 믿는다면 아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놀고 싶은 장난감을 빼앗길 것이다.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싶은 남자가 아이가 노는 시간의 절반은 강제로 인형을 가지고 놀아야 할지도 모른다.

 

넷째, 동성애자와 성전환자. 만약 동성애가 순전히 환경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면 또 다른 환경으로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더 커진다. 이것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결합하면 동성애자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랬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동성애자를 “치료”하기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정신분석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오랜 시간 정신분석을 해서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돌려 놓으려고 했다. 행동주의를 받아들이는 치료사들은 전기 “치료”를 하기도 했다. 동성애자에게 동성의 나체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전기 충격을 주는 식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전기 고문이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동성애자들이 신이 준 자유를 남용해서 동성애와 같은 악을 선택했다고 비난했다.

 

유전자가 성정체성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적 성을 거부하는 성전환자들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성정체성이 순전히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사람들은 굳이 성전환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환경을 통해서 어떤 사람의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이 일치하도록 “치료”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녀의 성정체성이 순전히 문화적 구성물일 뿐이라면 굳이 둘 사이에 불일치가 있다고 해도 해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왜 과학자들이 멍청하거나 사악한 사람들이 악용하는 것까지 책임을 져야 하나?
 

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를 제목만 보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이전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마찬가지로 제목만 보고 응용하려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에 따르면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따라서 여성 할례나 명예 살인도 상대적인 것이므로 굳이 비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파고 들면 히틀러의 나치 독일도 당시의 문화일 뿐이니까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이런 주장에 매우 황당해했다. 아인슈타인이 그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고 발표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할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Herbert Spencer가 진화를 들먹이며 복지 폐지를 주장했을 때 다윈이 책임질 일은 별로 없었다.

 

만약 아인슈타인과 다윈이 그런 문제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면 진화 심리학자의 여러 주장들을 반동적 이데올로기의 재료로 써 먹는 자들이 있다고 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는 언제나 과학자들이 내 놓는 이론을 이상하게 이해하고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는 멍청해서 오해하기 때문이고 일부는 사악해서 일부러 그런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런 것까지 다 고려해서 논문이나 책을 출간하거나 미루거나 취소해야 한단 말인가?

 

 

 

 

 

진리 추구는 다락방에서 혼자 하란 말인가?
 

충분히 입증될 때까지 발표를 미루라는 이야기도 웃기는 얘기다. 과학의 힘이 무엇인가? 논문을 발표하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씹어주는 것이 바로 과학의 정수다. 과학은 그런 식으로 발전한다. 해당 이론에 매우 적대적인 전문가들의 의혹은 견뎌내야 가설은 어느 정도 이론으로 인정 받는다.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공개적으로 씹어야 개인적인 온갖 오류에서 벗어날 가망성이 좀 더 크다는 것은 과학계에서는 너무나 당연시하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과학 철학을 연구한다는 Kitcher는 다락방에서 혼자 연구해서 충분히 입증될 때에만 발표를 하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혼자 또는 마음 맞은 사람들끼리만 연구하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오류가 증식될 수 있다. 정신분석이 아마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Kitcher는 행동 유전학이나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가설들이 하루빨리 발표되는 것에는 별로 시비를 거는 것 같지 않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런 가설들도 온갖 해악을 끼쳐왔고 앞으로도 끼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남이 하면 안되고 자기 편이 하면 상관 없다는 말인가?

 

행동 유전학(또는 진화 심리학)의 어떤 가설이 옳을 수도 있고, 그와 모순되는 환경결정론자의 어떤 가설이 옳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행동 유전학의 어떤 가설이 정치적으로 위험할 수도 있고, 그와 모순되는 환경결정론자의 어떤 가설이 정치적으로 위험할 수도 있다. 인간의 상상력과 오해하는 방식은 무한하기 때문에 세상에 과연 위험하지 않은 가설이 있을지 의문이다.

 

과학자들은 어느 정도 그럴 듯한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을 학술지나 책으로 발표해서 적대적 과학자들의 비판에 노출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좀 더 객관적인 진리에 도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는 이 방법 말고 더 좋은 뾰족한 수는 없다. 어차피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온갖 오류에 빠질 수 있고 그 오류는 날카로운 지성을 갖춘 남이 비판해 줄 때 고칠 가망성이 조금이라도 더 커진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대중저술가, 대중매체, 정치조직 등에서 자신의 가설이나 이론을 왜곡하거나 이상하게 응용하려고 할 때 그것을 비판해야 한다. 어차피 멍청하거나 사악한 사람들은 비판한다고 설득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합리적 비판 말고 다른 뾰족한 수가 있나? 독재 정신에 충만한 사람은 누군가 결정을 해서 아예 입을 닫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나는 독재에는 반대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 8:31~32, 표준새번역)

 

나는 예수의 이 말을 좋아한다. 물론 그대로가 아니라 “너희가 과학의 말에 머무르면, 참으로 과학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조금 바꾸어서 말이다.

 

나는 정말로 세상을 좋게 바꾸고 싶으면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는 자본주의를 엎어 버리고 싶으면 먼저 자본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어떤 가설이 기분이 나쁜지 여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지 여부 등은 일단 무시하고 무엇이 진리에 가까운지를 과학의 기준 즉 논리적 일관성과 실증의 기준으로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상당히 확실한 과학적 설명을 얻었다면 그것을 응용하면 될 것이다.

 

물론 과학적 지식은 사악한 의도로도 응용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핵물리학 지식을 이용해서 핵무기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으며 심지어 실제로 대도시에 터뜨리기도 했다. 따라서 과학적 지식에 도달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비과학적 지식에 의존한다면 그 의도가 선하더라도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의학을 비롯한 온갖 민간 치료법은 “의사”가 선하더라도 살릴 수 있는 목숨을 죽일 수 있다. 오직 과학적 지식과 선한 의지가 합쳐져야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할 수 있다.

 

현대 의학이 기존의 엉터리 의술을 물리치고 정말로 과학적인 의학을 정립했듯이 진화 심리학은 기존의 엉터리 이론들을 물리치고 정말로 과학적인 심리학과 사회 과학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기존 심리학 이론이나 사회 과학 이론이 모두 엉터리란 말은 아니다). 이것이 내가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진화 심리학에 대해 소개하려는 이유다.

 

 


2009-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