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빠들이 '깨어있는 시민의 힘' 어쩌구 하는 말을 좋아한다.

이건 노무현이 죽기 전에 한 발언에서 따온 표현인 것으로 아는데,

결국은 참여정부의 '참여'도 실은 같은 맥락, 뉘앙스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럼 도대체 이 친구들이 왜 이리 시민이니, 참여니 하는 말을 좋아할까?

내가 보기에는 일종의 소외감, 공포심이 배경에 자리잡고 있다.

그건 바로 전문가들과 파워엘리트들이 연합해서 만들어내는 강고한 이너서클에 대한 소외감과 공포심이다.

그건 사실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소외감과 두려움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사회의 핵심 의제, 이슈를 평범한 시민들이 이해하고 판단하여 적절한 해결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즉, 이 사회가 제공하는 일반적인 제도교육만 받아도 이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자기 몫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사실상 87년 체제를 만들어낸 그러한 가치관이며,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공식적인 가치관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저 가치관이 근거하던 현실이 많이 바뀌었고, 앞으로는 더 빠르게, 더 큰 폭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군부독재가 독점하던 권력을, 그 군부독재를 지원하던 파워엘리트 그룹, 흔히 뷰로크랫이라고 부르는 그룹들이 넘겨받았다. 조중동 등 제도언론과 검/경, 다양한 지식인 집단이 그들이다.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에 익숙하지 못하고 전문성이란 점에서도 점차 시대에 뒤떨어져가던 군발이들 대신 권력을 이어받은 파워엘리트 그룹은 훨씬 세련되고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에 잘 적응하는 반면, 자신들의 영향력 행사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은 자신들의 전문성과 지식을 활용하고, 일반인들이 넘보기 어려운 '소통의 벽'을 쌓아올린다.

흔히 이야기하는 인문학의 위기는 사실 이러한 이너서클의 발호에 따른 결과이다. 인문학이란 결국 보편성의 영역, 제너럴리스트의 활동 무대이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 그룹들이 자신들의 독자적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성역을 구축하고 다른 집단과의 소통을 거부할 때 인문학의 설 자리는 없다.

하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궁극적으로 자기 분야의 발전을 고민할 때는 결국 소통의 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자신들만의 영역 안에 갇혀서는 결코 어느 한계 이상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인문학적 상상력 어쩌구 하는 얘기는 이렇게 각 전문분야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보편성의 영역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적 상상력의 문제는 바로 이렇게 87년 체제의 문제, 한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하지만 인문학적 상상력을 강조한다고 해서 이것이 전문가 집단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87년 체제가 붕괴시킨 군부독재, 인권부재, 권위주의적 시스템,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전문가들의 이너서클 체제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비록 전문가 집단들이 이너서클을 형성해 자신들의 폐쇄적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가진 전문성을 부인하는 결론으로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무식한 군발이들 밑에서 소신껏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전문적인 식견을 해방시켜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목소리로 전환시킨 것은 87년 체제의 가장 눈부신 성과 가운데 하나였다. 또 한편으로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권위주의적 권력 때문에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묻혀버리는 경우도 너무 많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과 노빠들, 깨어있는 시민들의 참여를 강조하는 목소리는 사실 바로 이러한 '전문가들의 영역과 영향력'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말하는 '깨어있는 시민'의 본질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전문가들의 영역을 거부하는 아마추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아마추어들이 전문가들의 영역을 거부할 수 있을까? 노빠들은 여기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 대안이 없다. 그 대안 없음을 표현하는 쉐리프가 바로 '깨어있는'이라는 편리한 수식어이다. 그냥 똑똑하게 대처해서 전문가들에게 당하지 말라는 당부일 뿐이다.

저런 표현은 현실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질문에 "잘"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다. 그래서 '깨어있는'이라는 수식어를 즐기는 자들은 점차 커지는 전문가들의 영향력에 대해 소외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시민들, 87년 체제의 승리자였다가 지금은 점차 손에 쥔 것을 뺏기고 있는 시민들을 등쳐먹는 사기꾼들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의 목표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시민들의 두려움과 소외감을 이용해 한탕 해먹으려는 속셈일 뿐이다.

전문가들의 특권과 폐쇄된 의사결정 구조를 극복하는 것은 또다른 전문성 즉, 인문학적인 감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러한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것, 즉 전문가들에 대항하는 또다른 전문가 조직을 만드는 것이지, 기존 전문가 조직을 해체하라고 깡패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아마추어리즘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지금 민주당의 존재를 거부하고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강조하는 목소리들은 바로 그러한 파괴적인 욕구를 등에 업고 있다. 정당이 왜 필요하냐? 왜 니들만의 이너서클, 폐쇄구조를 유지하려는 거냐? 개방해라! 아니, 아예 해체하라! 바로 이런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이 사회의 변혁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그 수단으로서의 정당 특히 민주당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특권을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서 정치력이 필요한데, 바로 그 길을 또다른 정치 전문가 집단인 민주당이 가로막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욕구를 등에 업은 문재인 유시민 안철수 박원순 등은 정치적 목적을 이룬 후에는 저 전문가 조직들을 해체할 생각일까? 그건 아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 친구들도 알고 있다. 이들은 단지 전문가 집단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목소리를 이용해 집권에 활용할 생각만을 하고 있다.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그 전문가 집단 내부에서의 주도권 장악이다. 즉, 전문가 중심 체제의 특권과 혜택, 단물은 그대로 누리되 그 주도권을 지들이 쥐려는 속셈인 것이다.

이 자들이 민주당을 사실상 해체한 후에는 그 민주당의 간판과 명분, 조직을 활용해 집권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만 봐도 이들의 속셈을 훤히 짐작할 수 있다.

박원순과 노빠들은 이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에 약간 차이가 있다. 노빠들은 전문가 체제에 대한 시민들의 맹목적인 두려움을 이용하는 반면, 박원순은 그 전문가 체제를 부러워하고 거기에 한 발 끼어들고 싶은 시민들의 욕구를 이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박원순이야말로 자신은 이 사회를 움직이는 어떤 전문영역에도 뛰어들지 않으면서 그 전문영역에 개입하고 싶은 시민들의 욕구를 이용한다.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원칙이 바로 '깨어있는 시민의 힘' 바로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호소라고 할 수 있다.

박원순 같은 시민운동 방식은 결코 전문가 집단의 높은 벽을 부수거나 뛰어넘을 수 없다. 단지 위협을 가함으로써 몇푼의 댓가를 얻어낼 뿐이다. 그 돈으로 다시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동경심을 품은 시민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환상을 상품화한다. 이 말이 너무 부정적이라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하나 물어보자. 도대체 박원순의 시민운동이라는 것이 이 사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가? 아니 해결은 고사하고 문제의 부분적인 개선이라도 이룬 적이 있는가? 내가 보기에 박원순 식의 시민운동의 유일한 성과라면 그 전문가 시스템을 위협해 돈을 효과적으로 뜯어냈고, 그 전리품으로 다시 또다른 시민운동(?) 집단들에게 배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박원순의 전리품을 배분받은 시민운동들 역시 박원순처럼 어떤 개혁이나 성과도 얻어내지 못하고 지들의 호구지책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래서 박원순은 아마추어 짓을 전문적으로 해서 목적을 달성한 프로이다. 그래서 나는 박원순을 '프로 아마추어'라고 부르고 싶다. 노빠와 박원순, 둘이는 서로 잘 만났다.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동종업계 종사자끼리니까 아마 꽤 말이 잘 통하리라 믿는다. 저들은 이제 동종업계 종사자일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사업을 같이 하는 '동업자'이기도 하다.

하나 예언한다면 저들의 동업이 깨질 때 저들의 이전투구는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싸움보다 지저분할 것이다. 왜냐고? 지금 저들의 동업은 바로 이 업종이 더 이상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사양산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차를 갈아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하루빨리 사기질에 가까운, 아마추어리즘 팔아먹는 시민운동 버리고 남아있는 자산 처분해서 제도권 정치로 진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시도가 실패한다면? 답이 없다. 침몰해가는 배에서 몇 개 남지 않은 구명조끼 서로 차지하려고 상상을 초월하는 난장판이 벌어질 수밖에.

어이, 아마추어리즘 팔아먹는 프로 장사꾼 박원순, 요즘 기분이 워뗘? 동업자랑은 잘 돼가? 근디 자네들 사업이 잘 될랑가 모르건네? 하여간 나한테 와서 그 허접한 물건 팔아묵을 생각일랑 아예 허덜덜 마소. 알거째? 괜히 귀찮게 굴먼 자네들 좌판 뒤집어지는 수가 인네. 명심하길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