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민주당 세력이 비겁한 이유는 정당이라는 틀로 심판받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찬종 조차도 신정당을 창당해 정당 정치의 공간에서 대안이 되고자 했다. 그러고 보면 옛날 정치인들이 오히려 교과서적인 의미의 정치에 충실했던것 같다. 지금 논의되는 소위 "정당정치의 극복"이 시대변화에 따른 정치의 진화라기 보다는 노무현 신화를 잊지 못한 떳다방 정치인들, 룸펜들의 한철 장사 같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정당 정치의 강화가 중요한 이유는 "정당이 중심이 되는 이해관계의 생태계"를 대체할만한 특출난 대안이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에 규정된 "행정부"와 "국회"를 유권자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연동시키는 장치로서 정당은 인간이 현재까지 발견한 가장 쓸만한 도구이다. sns로 모인 촛불시위대가 국회와 청와대를 점령할게 아니라면 말이다.

민주당은 정당 바깥의 이해관계를 수용하는것과, 외부세력에 휘둘리거나 용해되는 것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해관계 생태계의 주요 참여자로서 노조와 같이 책임의식이 있는 집단과 제휴를 맺고 협상을 해야 한다. sns와 촛불로 무장한 정체불명의 깨어있는 시민이 아니라.

정책 대안은 탁상공론이나 정치공학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당사자를 자꾸 만나고 의사소통 하는과정에서 자연 스럽게 도출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정책은 사회공학이 아니라 "민의의 대변" 그 자체가 된다. 조직화된 민의와 이해관계를 귀납적으로 수용해 최종지점에서 정치철학이나 경제사상과 접목시키는 것이 진정한 정책대안이고 정책 아젠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 그리고 이해관계의 생태계가 필수다. 정치는 아웃풋이 아니라 "인풋"의 문제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