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씨에 관한 생각들을  좀 정리해 봤습니다. 아크로 다른 분들에게서 배운 것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처음 시민후보로 박원순 씨가 부상했을 때 부터 여러번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었습니다. 일단 통합후보다 된 다음에는 그냥 지켜보는 입장이었지만,  결국 우려했던 가장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많던 지지율 격차 다 까먹고 뒤쳐지는 모습을 보게 되니 안타깝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박원순씨에 개인에 대한 평가는 개인적으로는 존중하고, 어느정도 존경할 만한 분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치가로 그것도 서울시장 정도의 중요한 자리로 갑작스럽게 뛰어드시기에는 정치경험이 부족하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그리고 막상 본선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이런 부족한 점이 선거의 승패가 갈릴만큼 점점 크게 드러날 뿐 아니라, 혹시라도 서울시정을 맡았을 때 문제가 될 것 같아 보이는 모습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존경받는 시민 운동가 혹은 사회사업가 박원순씨와 정치행정가 서울시장 박원순 씨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아름다운 가계를 혹은 다른 사회사업을 할 때는, 오직 자신의 목적과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그리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을 믿고 의지합니다. 하지만 서울시장 혹은 정치인이 그런 일을 하는 자리입니까?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은 이해관계가 서로 첨예하거 충돌하는,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쪽은 손해를 보는 그런 집단들의 갈등을 어떤 식으로든 조정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거기에다가 모든 사람/집단은 어떤 제도등 최대한 활용 - 심지어 악용 - 해서 자신들의 이득을 끝없이 최대화 하려는 욕망을 가졌기 때문에, 그걸 제어해 줘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직책은 매우 다른 사고 방식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무급 인턴 논쟁입니다. 아름다운 가계는 선의로 무급 인턴을 유지했고, 실제로 무급 인턴을 한 사람들도 거기로 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며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무급 인턴은 악용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쁜 사람이 맘먹고 "너저분한 가계"라는거 만들어서 겉으로는 사회활동 한다고 하면서, 젊은 애들 데려다가 6개월씩 일시키면서 인턴 증명서만 써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라 수십 수백군데가 다 비슷한 짓을 하면요? '일 가르쳐주고, 경험 쌓게 해줬는데 돈까지 줘야 겠냐? 니들이 지금 돈벌라고 일하냐? 젊은이라면 열정이 있어야지.' 사장은 이렇게 말하고, 자기도 월급 거의 안받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회사차 두 대 지꺼처럼 굴리면서 판공비, 접대비를 지돈처럼 쓰면서 먹고 살면요? 저런 악덕 사장의 목소리가 사실은 이미 벌써 사회에 만연하고 있고, 젊은 세대들이 항상 듣고 있거든요.


이 논쟁이 벌어졌을때, 박원순씨 측은 아름다운 가계의 선의를 강조하는 답변에 집중했습니다. 아름다운 가계는 선의를 위한 집단이다. 인턴한 사람들도 좋다고 했다라고요. 시민 운동가 박원순씨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치 행정가 박원순 씨라면 다른 관점에서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취업문제, 스펙 경쟁에 허덕이는 젊은 세대한테 무급 인턴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지를 먼저 이해하는 제스처를 취해주고, 무급 인턴이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마련을 하겠다는 이야기 정도는 해 줘야했습니다. 특히 문제를 인식했다는 제스처가 더 중요합니다.


예선에서 나왔던 무급 인턴 문제 자체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박원순씨가 이 문제에서 보여주었던 문제해결 방식은 본선에서도 그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것도 네거티브 경쟁이 아니라 정책 경쟁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티비토론에서 [강남, 강북의 격차를 어떻게 줄이겠냐?]는 화두에 대해서 [강남사람들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야권 표밭이 상대적으로 강남에 비해 발전이 더딘 강북지역이라고 생각했을때, 저런 대답이 유권자에게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졌겠습니까? 네, 당연히 강남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훌륭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감정도 있고. 선한일에 동참하고 후원금도 내고 기부금도 내고 질서도 잘지키고 합니다. 하지만 집단과 계층에 이익이 걸려 있는 문제는 각각의 개인의 선악과 관계없이 누구나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종부세 문제나 무상급식 투표에서 몇 번에 걸쳐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그런 집단간의 갈등을 조정하라고 선거하고 시장 뽑는 자리에서, 저런 말씀을 하시면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비슷한 예시가 주택 문제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주거 문제에 관한 이야기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땅콩집'의 예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하애졌습니다. 사회 운동 하실때는, 봉사활동 하실때는 본인이 관심가지고 있는 어떤 특정한 주제의 특정한 집단의 이슈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이를테면 공정무역커피 같은거. 하지만 정치인이 되면, 그때부턴 본인의 관심 보다는 집단 소속원의 관심사를 봐야 합니다. 땅콩집이라는 거, 전원주택입니다. 본질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은퇴해서 시골에 땅사서 집짓는 겁니다. 두 가구가 함께 짓는다고 하더라도, 대지를 구입하고, 집을 지어야 하는 비용이 있기 때문에, 가구당 수억원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서울에서 지금 주거 문제를 가장 크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생각한다면, 저런 집은 발상의 전환도 못되고 와닿지도 않습니다. 지금 전세값이 사천이 올라서, 같은 평수로 갈려면 서울 밖으로 나가야던지, 아니면 평수를 줄일려고 해도 지금 동네에는 물건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저런 이야기 하면 무슨 소리 듣겠습니까?


네거티브에 대한 대응 방법 또한 정치현장에서 굴러보지 않았던 티를 너무 많이 내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한 존재입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캐보면 뭔가 비난 받을 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사람들도 정치인이 100% 흠결 없으리라고 사실 기대 안합니다. 다만 그걸 자신의 흠결을 인정하고, 양해를 받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회 사업가, 시민운동자 박원순씨는, 좋은 목적을 위한 기부금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서,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대신, 자신의 선의를 최대한으로 호소하는 (때때로 과장하는) 일이 습관화 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더 좋은 목적"을 위한 일이니 "작은 서류상 잘못" 따위에 집중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정치인은 그래선 안됩니다. 정치인의 '더 좋은 목적'따위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발뺌하려는 대신, 인정할건 인정하고 털고 넘어갈건 빨리 털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를테면 병역 문제. 13살 짜리가 주도적으로 병역 기피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의 형과 본인이 뭔가 사람들에게 흔하지 않은 절차를 통해서 쉬운 방법으로 병역을 마쳤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슈가 나왔을 때, "13살 짜리가 병역기피를 했다는 말인가?"라고 역경을 내는 편은 도움이 안됩니다. 그건 오히려 "부모님이 알아서 병역기피 시켜주셧지롱 ㅋㅋㅋ" 이렇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중 대다수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그렇게 싸울게 아니라, "군대 때문이 아니라 집안 문제 때문에 입적된 것인데, 결과적으로 병역 의무를 편하게 수행하게 되어서, 힘들게 고생하신 다른 분들에게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대답하면 되는거 였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건 '고생하신 분들 미안합니다.' 이거거든요. 그 말 들었으면, 정황상 부모가 병역 기피 시킨거 아니야 의심하는 사람들도 벌써 수십년전 이야기니까 '그래, 미안하면 되었어' 하며 넘어갔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병역기피가 아니었다.' 쪽이 사실로 인정받겠죠. 이러면 혹시 이후에 병역 문제를 한나라당에서 더 끄집어냈다고 하더라도, 이미 사과한 문제기 때문에 별로 반향이 적었을 겁니다.


학벌 문제. 강남 집 문제. 하바드 책 복사문제. 전혀 쓸데 없이 자신을 '완전무결' '백의의 천사' '순수의 화신'같은 이미지로 만들려다 보니까 정말 쓸데 없는 논란만 만들어서 자기 이미지를 완전히 깍아 먹고야 말았습니다. 강남에 집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민주사회에서 부자랑 빈자랑 편갈라서 혁명놀음 하자는거 아닙니다. 억지로 가난한 척 할 것 없이, 자신이 어느정도 재력가임을 인정하고, 대신 (없어 보이는 수입에도 불구하고) 강남에 꼭 거주해야할 필요성을 인정받으면 됩니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가계같은 것은 결국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기부금 마련이 꼭 필요한데 그걸 위해서라도 강남에 거주할 필요가 있었다. 대신 그렇게 만들어진 기부금은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잘 쓰였다. 뭐 이런식으로 접근하는게 무난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억지로 장서 보관 드립 같은걸 치는 바람에, 지지하려는 사람이 믿어주고 싶어도 도저히 믿어주기 힘든 수렁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어 버린 겁니다. 사람들이 아주 바보는 아니거든요.


박원순씨 개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그렇습니다. 무급인턴 논란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태도도 그렇고, 기업이나 부유층의 지원에 의존하는 형태의 아름다운 재단도 그렇고 본인 스스로는 경제적인 계급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조금 보수적인 인물이신것 같습니다. 다만 시민운동 활동이나 사회 사업 경력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진보적인 사람들과 접접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도 많은 분입니다. 적어도 비양심적으로 특권과 반칙을 써가면서 개인의 이윤만 쫒아다니는 사람들보다야 훨씬 낫습니다.


그러니 본인이 정치에 뜻이 있으셨다면, 진작에 정당에 입문을 하셔서 정치인으로서의 훈련을 받으셨으면 어떠셨을까 안타깝게 합니다. 정당 밖에서 훈수두는거 말고, 정당 안에서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다 보면, 시민운동-사회사업 하던 때랑은 아주 다른 관점을 가지실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선거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없으셨겠죠. 저 개인적으로는 민주당이 서민과 중산층의 연합정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박원순씨 정도면 민주당에 흡수되어 외연을 확대할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물론 한나라당에 입당하셔서 양심있는 보수의 목소리를 내주시는 것도, 국가 전체로 보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정치권 밖에서 뜻을 계속 펼치시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처럼 갑자기 등장해서 기획 정치판에 휩쓸리는 듯한 모습은 본인에게도, 국민에게도 손해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