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현재’를 위해 살아가는 일본 청춘들의 표상 츠마부키 사토시… <조제, 호랑이…> 이어 <오늘의 사건사고>에서 아찔한 매력 계속

▣ 김도훈 <씨네21> 기자


쓰마부키 사토시는 나이를 대신 먹어주는 초상화를 벽장 속에 숨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공기 중의 미립자를 보고도 웃을 이 남자의 얼굴은 보는 이에게 영원히 소년으로 머물고 싶다는 욕망을 부질없이 되뇌게 만든다. 하지만 사토시에게서 도리안 그레이의 비극적인 숙명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수포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의 그늘 없는 미소는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가 아니라 하이쿠의 간결함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오락실 사진 기계로 우연히 배우 입문


쓰마부키 사토시는 원래 진지한 배우를 꿈꾸며 영화계로 스며든 소년은 아니었다. 그가 배우가 된 계기는 우연히 들렀던 오락실 한켠에 놓여 있던 오디션용 사진 기계였다. 장난처럼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사토시는 300만분의 1이라는 경쟁을 물리치고 배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갑작스레 스타의 자리에 오른 철없는 소년의 오만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일본 특유의 연예계 시스템 덕분이다.


하룻밤 만에 스타가 되어 매니저에게 호통칠 권리를 얻는 한국의 젊은 스타들과 달리 일본의 배우들은 매니지먼트의 철저한 관리를 받으며 방송과 영화의 조연으로 시작을 한다. 사토시도 마찬가지였다. 오디션이 열린 해 <후지TV>의 드라마로 데뷔한 그는 이후에도 <토미에 리버스> 같은 영화들에 얼굴을 비치며 차근차근 길을 밟아올랐다. 그리고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뒤에야 뒤늦게 연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는 뭔가에 쉽게 빠졌다가 금방 싫증을 내곤 한다. 하지만 연기는 그렇지 않다. 마치 연애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점점 빠져들게 된다. 연기를 계속할 수만 있다면 다른 취미는 필요 없을 것만 같다.”


걱정도, 희망도, 희열도, 모든 것을 간결하게 함축하는 사토시의 미소를 처음으로 보여준 영화는 야구치 시노부(<스윙걸즈>)의 <워터보이즈>였다. 어찌 보면 야구치 시노부의 소년, 소녀들은 참으로 한심한 청춘들이다. 의지와 야망도 없이 그저 벚꽃처럼 젊음을 즐기다 한순간에 가버려도 개의치 않을 듯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거친 현실에 부딪혀 생채기를 입으며 크는 한국 청춘영화의 아이들과는 달리 현재의 자그마한 꿈을 찾는 순간에 열정을 불사른다. 사토시의 간결한 미소는 그처럼 ‘현재’를 위해 살아가는 모든 일본 청춘들의 표상이었다. 재미있게도, 지난해 한국에서 줄지어 개봉한 사토시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그의 철없는 듯한 청춘의 얼굴을 이용한 작품들이다. 전공투와 히피문화가 꽃피던 1969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상일 감독의 <69>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고등학교에서 바리케이드 봉쇄를 사상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학생이 있을 리 없다”고 사뭇 진지하게 말하는 사토시의 순진한 얼굴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 숨어 있는 무게를 온전히 덜어낸다. 이상일 감독은 인터뷰에서 “사토시는 순진한 성격의 인물로 주로 나왔고, 남동생으로 삼고 싶은 배우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 점에서 좀 탈피해 활력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사토시를 캐스팅한 연유를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사토시는 <69>에서도 여전히 아찔하게 가벼운 매력으로 정치와 시대를 무력화시킨다.


사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야말로 사토시의 특징을 가장 잘 이용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쓰마부키 사토시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살짝 비틀어내며 관객의 가슴을 친다. 장애를 가진 소녀 조제와 기묘한 연애를 하는 츠네오. 사랑이 끝나는 순간에 그는 쿨하게 이별을 고하지만, 길을 걷다가 혼자서 무너져내린다. 그의 얼굴에는 과거의 무게와 미래의 고민이 없다. 텅 비어 있는 여백처럼, 간결하고 직설적이다. 그래서 사토시가 무너져내리는 순간, 전혀 기대치 않았던 관객은 함께 무너져내린다(사토시는 이 영화로 영화 잡지 <키네마준보>의 일본 영화 주연남우상을 받았고, 기록에 따르면 20대의 배우가 이 상을 가져간 일은 <키네마준보> 50년 역사상 단 두 번밖에 없다). 곧 개봉할 유키사다 이사오의 영화 <오늘의 사건사고>에서 사토시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영화감독 지망생 나카자와를 연기했다.


특징 없고 우유부단하고 생각을 싫어하는 듯하지만 조용히 그 자리에 자신으로 존재하는 남자다. “연기를 할 때는 특별히 뭘 의식하지는 않는다. 그저 캐릭터에 동화돼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로 연기를 한다. 그 덕에 지금까지 맡은 역할들이 내 자신과 닮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그는 사소한 일상에 의미를 담는 작은 영화에 어울린다. 그리고 아주 약간 그의 이미지를 비틀어낼 줄 아는 감독에게 사토시는 여백으로 가득 찬 좋은 캔버스가 된다.


다이쇼 시대의 로미오에 도전


그래서 사토시에게서 오다기리 조(<메종 드 히미코>), 구보스카 요스케(<고>) 같은 동시대 배우들의 괴이한 열정을 읽어내려는 시도는 수포로 돌아갈 확률이 크다. 쓰마부키 사토시는 관객이 살아가는 현재의 순간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배우다. 유키사다 이사오가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봄의 눈>(春の雪)에 그를 캐스팅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에서 사토시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비극으로 치닫는 다이쇼 시대의 로미오를 연기하지만, 거추장스러운 다이쇼 시대의 제복을 입고 있어도 관객이 근접할 수 없는 동화 속 꽃미남으로 떨어져내리지 않는다. 과거라는 시제마저도 현재로 환원시키는 친근한 미소. 그것이야말로 쓰마부키 사토시라는 아름다운 남자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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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건, 문화기사를 읽는 잔잔한 재미 중의 하나다.

'재'만 남기고 타버린 청춘적 환멸의 초상화도 있는거지만, 흔적없이 아름답게 증발해 버리는 청춘도 있는 거다. 현실에로의 자라남, 강렬한 햇빛이 숨막히게 하는 양지로의 성장만 있는 것은 아닌 거니까. 어떤 성장은, 내 고통의 뿌리를 송두리채 감싸고 있는 흙을 찾아 떠나는, 음지로의 여행이니까.

                                                             2006.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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