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시민이 민주주의의 보루' '시민 정치 세력화' '시민의 승리'...

우리가 흔히 듣는 구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나 자명해보이는 '시민'은 과연 무엇인가?

시민은 누구나 알고 있듯  '시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도시민과 시민의 뉘앙스는 다릅니다. 왜 시민은 도시민과 다를까요?

조금 더 살펴봅시다. 제가 알기로 市City는 城Citadel에 그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Citizen이란 과거에  '성안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허전한 설명입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런데 허전해하기에 앞서 우리는 성이 있던 시대를 상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시대, 성에 살던 사람은 극히 소수일 뿐더러 주로 농사에 종사했던 성 밖 사람들과 달리 기사나 상공업에 종사했죠.

자, 그렇지만 근대에 접어들기 전까지 성안 사람들은 위와 같은 특징에도 별로 주목받는 계층은 아니었습니다. 직업만 다를 뿐, 교황 모시고 왕 모시고 귀족 떠받들고 하는게 성밖 사람들과 다를게 없었죠.

그렇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이 성안 사람들은 성 밖 사람과 다른 정체성을 획득하기 시작합니다. .

우선 자본주의적 관계가 확대되면서 이들의 힘이 커졌습니다. 힘만 커졌을까요? 이들은 그 힘을 바탕으로 기존과는 다른 질서를 추구합니다.  성 밖 농민들이 아직도 교회와 영주의 절대적 권한에 종속되어 있다면 이들은 대등한 관계에서의 계약을 중시합니다. 쉽게 말해 농민들이 영주 앞에서 '영주님, 은혜를 베푸소서.'하고 있었다면 이들은 '칼 100자루, 창 20개, 총 열자루 합 1억 되겠슴다. 선금 2천 쏘시고..엥? 프로방스 30대 영주인 명박스코 공작을 못믿냐구요? 죄송합니다만 이 계약은 없던 걸로 하시고 저희는 옆 동네 라이벌이자 1억 2천 부르신 그네와트 공주님과의 협상을 위해 이만...''하고 있었죠.

그렇지만 구세력이 만만한가요? 당연히 소수인 성안 사람들이 함부로 까불지 못하도록 가끔 단도리를 하였으나...시간이 흐를 수록 승부는 성안 사람들에게 기웁니다. 그 이유야 많고도 많습니다만....결론은 머니입니다. 허구헌날 전쟁으로 날새우던 당시 유럽에서 왕이든, 귀족이든, 교황이든 황금알 낳는, 아니 세금 내는 시민들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성 밖 농민들과 달리 나름대로 권력과 부, 그리고 뚜렷이 다른 성안 사람들은 먼저 자치권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상공업이 발달한 네덜란드나 이태리 등이 대표적이죠. 그리하여 성안 사람, 즉 시민계층은 길드 등을 통해 스스로를 조직하고 성안 문제를 자치적으로 해결합니다.

물론 이런 시민들을 구세력들이 곱게 볼리는 없었죠. '돈 밖에 모르는 천한 것들'이 아마 당시 귀족들이 갖고 있던 '시민'에 대한 생각이었을 겁니다. 물론 시민들에게 귀족들은 '돈도 없는 주제에 개폼이나 잡는 속물'에 불과했죠.

아무튼 이렇게 힘을 쌓은 성안 사람들이 역사에서 자랑스런 이름을 획득하게 되었으니...이른바 구체제와 정면으로 맞선 시민혁명입니다. 다시 단어에 주목해주세요. 프롤레타리아나 농민이 아니라 '시민' 혁명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구요? 

시에서 일어났으니까요. - -;; 허무한가요? 에이, 그러면 데모를 당연히 도시에서 하지, 허허벌판인 농촌에서 하겠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3.1 운동 이전에 민란은 주로 농촌에서 일어났습니다. 오히려 도시는 농민 봉기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죠. 그런데 시민 혁명에선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가령 프랑스 혁명 당시 농촌은 반혁명의 근거지였습니다. 귀족 뿐만 아니라 농민들까지 '신을 섬기지 않는' 시민 계층에 대한 적대감이 드높았답니다. 

여기까지 정리해볼까요? 시민 혁명 당시, 혹은 그 이전의 시민들은 구체제에 대해 정치적, 문화적으로 차별성을 갖고 있는 비교적 소수집단이었습니다.  즉 정체성이나 인구학적으로 과거의 농민들과 뚜렷이 달랐을 뿐만 아니라 그 이념이나 문화에서 선구적 측면을 갖고 있었죠.

그런데 시민 혁명이후 시민은 분화합니다. 특히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고 슬럼화가 진행되면서 이제 시민은 자영업자나 수공업자가 주를 이뤘던 과거와 달리 그 정체성은 복잡해집니다. 간단히 말해 장인과 도제가 손잡고 귀족 타도에 나섰던 시대는 지나가고 도시 안에서 같이 사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가 싸우는 시대로 바뀐 겁니다. 

이 과정을 특별히 주목했던 학자가 있죠. 그 유명한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어쨌든 한가지 유념할 점은 맑스의 경우 시민이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보기에 시민이란 단어는 계급 간의 불평등과 부르주아의 반동성을 은폐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죠. 그가 - 누구보다 시민혁명의 역사에 천착했음에도 - 만국의 시민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외친 이윱니다.

산업혁명 시대가 그러했다면 이후는 어떨까요? 예. 아시다시피 우선 대도시 인구가 많아졌습니다. 이제 시민 아닌 사람을 찾기 힘들죠. 반면 도시 안의 인구 구성은 산업혁명 당시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고 그 정체성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습니다. 같은 도시에 산다 할지라도 거주지가 부촌인가, 슬럼인가 같은 빈부차이는 물론 세대별, 인종별, 심지어 성적 취향까지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나뉘어 있습니다. 같은 맨체스터 시민이라도 시티(중산층 기반)와 유나이티드(노동자기반)로 나뉘어 웬수처럼 지냅니다. - -;;

그러면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에서도 이른바 '시민'에 주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백낙청 교수는 70년대 아직 한국의 근대화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민 계층이 민주화 및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돌이켜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왜냐? 당시 한국에서도 시민은 나름대로 기대할 만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의 지배가 지금처럼 완성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대규모 사업장도 드물었고 무엇보다 '여촌야도'란 단어에서 드러나듯 상대적으로 근대 교육의 수혜를 입은데다 독재라는 체제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종로나 강남이 정치 1번지로 날렸습니다.

여기서 한가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백낙청 교수는 당시 유행했던 대자적 존재, 즉자적 존재 비슷하게 시민은 단순히 '도시민'을 뜻하는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시민 계급이 수행했던 근대적 가치 - 민주주의 및 민족국가 수립-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존재로서 시민을 규정했던 것입니다.

글쎄요. 이 부분은 참 아리까리합니다. 가령 그 가치를 절대시하면 시민은 이른바 '우리 편'이 되어 버립니다. 반면 객관적 조건을 절대시하면 운동 주체들의 역할이 사라지죠.

어쨌든 전 백낙청 교수의 시민론은 유의미했다고 생각합니다. 뭐 어렵게 풀 것 없이 87년 6월 항쟁 주력인 학생과 넥타이 부대가 바로 한국에서 '시민'이 어떤 존재인가를 증명했으니까요. 그리고 이는 서구 사회가 수백년 전에 진행했던 시민 혁명의 재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후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뿐일까요? 흔히 한국은 서구 수백년 역사를 압축해서 100년 동안 거쳤다고 하죠. 시민의 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6월 항쟁 끝나자마자 바로 일어났습니다. 7,8월 울산의 노동자들은 가히 엄청난 스펙타클의 대규모 시위를 벌입니다. 그 노동자 시위는 이른바 민주주의라는 일반적 명분으로 '한줌 독재 세력을 빼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음을 뜻합니다. 개인적으로 민주화에 공감했던 '사장님'들이 그 시위 이후 한나라당 지지자로 변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거꾸로 반공 정신에 투철했던 노동자가 빨갱이 노조 위원장으로 탈바꿈하기도 했죠.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문화적으로도 나타납니다. 가령 여러분은 90년대를 어떻게 회상하시나요? 전 욕망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군부 독재는 물론 여러 구시대적 억압에서 드디어 탈출한 욕망들이 질주하던 시대...그게 제가 회상하는 90년대입니다. 70년대까지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외제품을 쉬쉬하며 구매해야했고 부잣집 아이도 보리 혼식을 해야했지만... 그리고 80년대 대학생들은 자신이 대학생이란걸 부끄러워하기도 했고 명문대생들은 학교 상징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90년대는 드디어 오렌지 족이 등장하고 외제차 구매는 선망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대학생들은 학교 로고가 적힌 옷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강남을 비롯한 부촌은 한나라당 아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근대의 특징 답게 모든 형이상학적 가치는 가루가 되어 흩어집니다. 이제 시위는 민주화나 통일 같은 거대 담론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더 많이 일어납니다. 

이게 뭘 뜻할까요? 바로 한국 사회도 더이상 시민이라는 단일한 이름으로 그 정체성을 규정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같은 서울 시민일지라도 강남북이 다르고 사장님과 피고용자가 다르고 남자, 여자가 다르고 요즘은 심지어 인종도 다릅니다. 다른 만큼 그 이해관계와 욕망도 다릅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거칠고 조금은 단정적으로 제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백낙청 선생이 주목했던 70년대와 달리 이제 한국에서 시민이란 계층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강남북 단결하여 한나라당 물리치자,란 구호 생각해보세요. 웃기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80년대 '서울 시민 단결하여 군부독재 물리치자'란 구호는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시민이란 말에 종종 도시민과 다른 의미를 부여합니다. 언어의 뉘앙스나 내포는 그리 쉽게 사라지는게 아니니까요. 그외에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습니다. 정치적 구호로서, 또 다른 도시나 농촌과 다른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등등.

그렇지만 정치적 이념의 담지자로서 시민을 상정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왜냐면 더이상 단일한 정체성을 담보한 시민 계층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엔 우리 사회는 너무나 빨리 발전했고 변화했고 복잡해졌습니다. 아니 당장 시민이 너무 많아요. 이제 한국 사회의 문제는 사실상 시민들이 처한 문제입니다. 그 문제가 복잡한 만큼 시민들이 느끼는 이해관계도 복잡합니다. 당장 70년대엔 '저 막걸리 한병 얻어 먹거나 고무신 한짝에 여당에 표주는 촌것들'이라 비웃었지만 요즘은 제일 잘 살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여당을 지지합니다. 70년대의 서울 시민은 이제 역사가 되었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민이란 계층에 집착하는 부류가 있을까요?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의 기억과 경험은 아직도 시민들이 전면에 나섰던 87년 6월에 머물러 있습니다. 시민 강조하는 정치 집단들이 대체로 노동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또한 '시민'은 그 실체가 모호하므로 그들의 시민론은 왜곡되고 형이상화 됩니다. 당장 '깨어있는 시민'이란 표현을 생각해봅시다. 장담컨대 서울 시민 누구도 '난 잠자는 시민'이라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 미몽 속에 헤매고 있고 저쪽이 보면 이쪽이 그렇죠. 그런데 진짜 시민들은 자신이 깨든 자든 상관없이 자신의 이해를 쫓을 뿐입니다. 

결국 실체가 모호한  '깨어난 '시민'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지지로 귀결됩니다. 또 그렇기에 그외의 '시민'들은 동의할 수 없는 표현이죠. 시민론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조중동에 세뇌된' '노예'  등등의 표현은 결국 자신의 이념이나 정책보다는 상대를 부정적으로 규정하여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부여하려는 방편이 아닐까요?

전 시민 좋아하는 이들이 더 이상 실체없는 시민 찾아 삼만리 헤매지 말고 세분화된 욕망들부터 헤아리기를 바랍니다. 양당을 거부하는 시민이 있다면 그는 시민이라서 거부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계층입니다. 단언컨대 형이상학적, 혹은 당위론적 가치를 내세워 시민들을 가르치려 든다면 그들은 계속 배신당할 겁니다. 그럴 수 밖에요. 그들은 자신을 선도자라 착각할 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남들은 차치하고- 자신의 이해와 욕망조차 모르고 있는- 혹은 숨기고 있는- '잉여'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