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뭐 순전히 내 개인적인 소회이고, 별로 객관화할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생각은 합니다.

그래도 이 문제에 대해서 한번 정도는 언급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한마디 합니다.

원래 영화를 보러 가면서도(누군가 표를 끊어놔서 부득이하게 봤습니다. 사실 웬만하면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 몇 가지 우려하는 점이 있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우려는 정확하게 현실화하더군요.

영화 도입부에서 공유가 탄 차가 고장이 나는 정황, 그걸 고치러 간 카센터에서 겪는 일 게다가 시민운동단체 실무자라는 여자 주인공의 태도까지... 모두가 있을만한 일이고 그다지 드물지 않은 정황인데도 그게 이상하게 그 지역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중요한 소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저의 자격지심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느끼는 사람들(적어도 난닝구 또는 난닝구를 싫어하는 무쟈게 많은 사람들)이 아마 그리 적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은 감독의 무신경함 또는 아예 노골적인 의도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공지영을 졸라 허접한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쟤의 작품을 단 하나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우연히 어떤 작품을 좀 읽어보다가 그 허접한 문장(비문에다가 말도 안되는 묘사 투성이더군요)에 질려서 두번 다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가니>의 남자 주인공(공유가 연기한)의 실제 인적사항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공유가 경상도 출신인 걸로 나오더군요. 공유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는 않지만 공유의 어머니가 아주 듣기 좋은(?)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합디다. 그게 TK인지 PK인지 구분할 능력은 제게 없습니다만.

이 어머니, 공유의 정의로운 투쟁에 대해서 "니 생각, 딸네미 생각부터 해라"고 딴지를 거시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되자 역시 정의로운 그 지방의 기질을 발휘, 공유의 투쟁을 지지해주시더군요. 그 멋진 경상도 사투리로 "어린 아아들 갖고 어른들이 뭐하는 짓꺼리고?" 이러면서 말입니다. 저 정말 감동 먹었습니다. 야, 역시 경상도 사람들'은' 타고난 정의감이란 게 있어. 이러면서 말입니다. 이거 진심입니다.

왜 이 영화에서 사건이 일어난 무진시의 그 뻔뻔하고 야비하고 잔인한 사람들(자애학원의 그 사건 당사자들과 그들을 옹호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구청 직원, 경찰 등)에 대비되는 캐릭터가 꼭 경상도 출신인지, 팩트가 정말 경상도 출신이라 해도 왜 영화에서 그러한 정황을 꼭 드러내야 하는지, 저는 솔직히 불쾌하더군요.

이 영화의 주무대인 무진시의 사람들은 호남 사투리를 쓰지 않더군요. 다만, 범죄 당사자를 지능적으로 옹호하는 그 형사는 알게 모르게(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호남 사투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말투를 사용하더군요. 참, 지능적이고 야비한 영화적 장치라고 느꼈습니다. 노골적으로 호남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은 피해서 분란을 일으킬 소지는 줄이되, 누구나 무진시가 호남의 광주라는 것, 야비한 경찰이 실은 호남 사투리를 사용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치를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이해할 수 없는(실은 너무나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적 문법은 이 영화의 서술에서 '무진시'라는 특정 지역의 상황을 끊임없이, 알게 모르게,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제기한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이 영화의 서술에서, 원래 소재가 되었던 그 사건에서 특정 지역의 배경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 사건은 '무진시'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나요? 다른 도시나 다른 지방에서는 저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거나 또는 드물기라도 한 것인가요? 아니면, 무진시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저 사건의 전개에서 무슨 중요한 특징이 만들어지기라도 한 건가요?

아마 모르기는 해도 상당수 사람들, 홍어 드립을 만들고 즐겨 감상하는 매우 많은 이 나라의 백성들이 저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고 대답하고픈 유혹을 느낄 겁니다. 지켜보는 시선만 없다면, 자신의 인적사항이 드러나지만 않으면 당장이라도 "그렇고 말고"라고 대답할 것이구요. 실은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을 거구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의 스토리, 문법은 도무지 지역이라는 배경과 무관하게 전개되지 않습니다. 무진고(아마 광주일고겠지요) 출신 엘리트들이 얼마나 파렴치하게 불의와 부패를 감싸고 돌면서 이익을 챙기는지를 고발하는 부분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런 일들이 무진 지역에서만 일어납니까? 아니, 서울에서는 학연 지연 혈연이 작용하지 않나요? 대한민국에서 학연 혈연 지연으로 온갖 단물을 빨아온 톱클래스들이 과연 무진고 출신들입니까?

긴가민가 하던 감독의 의도가 가장 분명하게, 도저히 변명할 수 없게 드러나는 부분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로 싸운 것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여주인공의 감동적인 편지 멘트가 흘러나오면서 공유는 지하도를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어떤 광고판을 들여다 봅니다.

그 광고판은 바로 무진시의 홍보 광고입니다. 무진시로 오세요, 맑고 깨끗한 도시... 어쩌구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영화가 소개한 그 사건, 스토리, 내용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사기 문구라고 봐야죠. 이 마지막 장면은(원래 마지막 장면은 그런 역할을 합니다만), 감독이 이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로 무진시가 문제고, 무진시가 이 모든 추악한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이죠. 바로, 호남이 우리나라의 모든 추악한 사건의 근원이라는 주장입니다. 감독은 아마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할 것 같습니다만.

'무진시'라는 작명도 야비하기 짝이 없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무진'은 60년대를 풍미했던 천재작가 김승옥의 유명한 작품 <무진기행>에서 따온 것입니다. 안개로 유명한 도시, 실은 순천을 가리키는 지명이죠. 이 영화에서도 '무진'이라는 지명에 대해 무진 출신의 입을 빌어 '안개로 유명한 도시, 안개가 덮이면 아무것도 안보여'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쉐리프도 감독의 의도를 드러냅니다. 한마디로 마음에 들지 않는 도시, 뭔가 불순한 것으로 뿌옇게 가득찬 도시라는 규정을 내리는 겁니다.

우연인지 의도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횟집이 나오는 장면에서도 '여수횟집'이라는 간판이 슬쩍 나타나더군요. 저 가게이름을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람이라 해도 그 지명이 무의식에는 뚜렷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 분명합니다. 무진, 더러운 도시, 더러운 인간들이 사는 곳 그런데 거기 횟집에 걸려있는 '여수횟집'이라는 간판.

공유란 배우는 얼굴만 보고도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알고 봤더니 부산 출신이더군요. 이 영화를 만드는 데 공유가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강한 발언을 했다고 하던데, 그래서 공유가 개념 배우로 등장하는 분위기던데, 대한민국에 온갖 비리와 추잡한 사건이 많고도 많은데 왜 무진시에서, 호남의 한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을 그리도 강하게 영화화하고 싶어했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게시판에 밀양 청소년 집단 성폭행 사건 글도 올라왔던데, 엽기성으로 말하자면 광주 인화학원 사건 못지 않을 텐데 이 사건은 영화로 안 만드나요? 하긴, 영화판에도 난닝구들은 쪽수나 실력 모든 것에서 밀릴 테니 뭐 언감생심이겠네요. 이창동이라는 노빠 영화감독은 <밀양>이라는 예술영화 찍으면서 그 밀양에서 일어난 멋진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나 봅니다.

아무튼 이 영화 보면서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하나 배운 게 있습니다.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더럽게 미련하고 멍청한 년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요년이 알고보니 완전 노빠에 난닝구 혐오주의자이라는 것. 기억해두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