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진리이고 객관적 사실인가. 우리는 과학의 분야에서는 보다 객관적인 사실을 알고 싶어하고, 종교나 철학에서는 진리, 진실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진리와 사실을 발견하고 찾을 것인가?

 

 

이것은 순전히 비유의 그림이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서 중간적인 입장(중도)을 취했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중도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라고 가정을 하자.  위의 그림에서 x y축이 교차하는 점을 중간이라고 하고, 그 곳을 취했다고 하자. 여기에서 작은 원은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세계의 범위이다. 실제로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세계는 분명 오늘날 과학적인 측정기구를 갖고 하는 것보다는 작은 세계를 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이제 우리가 파악한 세계가 더 큰 원처럼 넓어졌다고 하자. 그 동안 우리가 그렇게 확고부동하게 믿고 있던 점 a는 더 이상 중도로서의 자리를 점하고 있지 못하고 치우친 관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기준점 a를 버리고 b를 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파악하는 세계 혹은 관점이 넓어질수록 믿고 있던 진리 혹은 진실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큰 시각, 보다 넓은 관점에서 이야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다.

 

 

 

 

, 이제 우리의 관점, 시각, 의식이 화살표와 같은 방향으로 무한히 확장되어 왔다고 하자. 그렇다면 기존에 완전한 진리라고 인식되어 왔던 것들도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찌 해야하는가? 아직도 작은 원의 중심점을 고수하며 서로 자기의 위치가 맞다고 주장하고 다투어야 하겠는가? 아니다. 즉시 옛 것을 폐하고 새로운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관찰할 수가 있다. 각각의 중심 좌표는 나름대로 시대적 상황과 기존의 지식을 근거로 했을 때는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졌지만 기준이 바뀌는 순간 진실에 더 가까운 지식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보다 거시적인 관점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완전하게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고 겸손 되이 현재로서는 가장 넓은 기준점이라고 단서를 달아야 좋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더 이상 넓은 범위의 시각을 고려할 수가 없다고 가정을 하자. 즉 가장 큰 범위의 세계를 찾았다고 하면, 이제 우리는 비로소 기준점 c라는 중도를 정해 놓고 도를 이야기할 수 있고 깨달음을 논할 수 있고, 사랑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시사하는 것은 우리가 의식의 확장이든 생각의 범위이든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가장 넓고  큰 것을 상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다 큰 생각을 가질 수 있기 전까지는 우리는 의식의 성장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런 준비 없이, 자기 나름대로의 사상을 펼친다면 그것은 과거의 오류를 답습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은 많은 사람들을 새로운 관념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양보해서, 부처나 예수도 이런 오류에 빠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종교를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다만 우리의 인식론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어쩔 수 없이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을 펼치고 싶은 생각도 없으며, 또한 책으로 쓰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다. 다만 다만 이곳은 그래도 어느 정도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고 생각하여, 같이 공부를 하자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설명을 하여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면, 나는 아마 욕을 먹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하지 않음이 차라리 모두에게 편한 것이리라. 그러나 혹여라도 알아챌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2009. 9. 13.     10:08

 

 

 

2003년도에 써놓은 글의 그림을 교정해 올리는

선욱

(덧글) 종교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