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아이폰이라는 21세기형 종이와 붓을 창조한 스티브 잡스의 삶과 죽음은 나에게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조직, 시스템, 제도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핵심은 사람이다. 창조와 혁신의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의 위대한 창조물인 아이폰의 팟캐스트는 내가 즐겨 사용하는 '방송콘텐츠 플랫폼'이다. 팟캐스트를 이용해서 나는 주로 CNN뉴스와 CNBC에서 하는 마리아 바티로모(Maria Bartiromo)의  'The Wall Street Journal Report'를 본다. 우리나라 국제뉴스는 대부분 미국 언론사 것을 베껴다 만드는 것 같아서 영어공부도 겸해서 '공짜로' 통학할 때 지하철에서 본다. 

The Wall Street Journal Report는  마리아 바티로모가 간략하게 미국, 세계 경제 상황을 보도한 다음 에릭 슈미트(구글 회장), 앨런 그린스펀(전 FRB의장), 크리스틴 리가르드(IMF 총재), 빌 클린턴 같은 거물들과 미국, 세계 경제에 대해 인터뷰하는 방송이다. 

이번 주에 업데이트된 팟캐스트 방송의 게스트 중 한명은 토마스 프리드먼이었다. 프리드먼은 요즘 미국 경제위기와 재정위기의 해법으로 'Grand Bargain'을 제안하고 자신의 칼럼, 강연, 인터뷰에서 계속 이를 홍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방송도 그런 내용이었다. 프리드먼은 미국의 위기 상황 속에서 정치적 이전투구에만 신경쓰는 민주, 공화 양 당을 모두 비판하면서 오바마, 민주당과 공화당의 Grand Bargain을 촉구했다. 

프리드먼이 말하는 Grand Bargain은 '장기의 정부재정지원을 줄이는 대신, 세입을 확충해서 그걸로 미국의 기초체력인 education, infrastructure, immigration, investment, R&D에 대한 투자를 당장부터 늘리자'다. 프리드먼은 공공보험에 들어가는 정부지원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걸로 알고 있어서 오바마의 경제위기해법과 약간 다르지만 교육, 인프라 따위에 대한 투자와 그 비용 마련 방안으로 (부자)증세를 통한 세수확보의 점에선 거의 같다.


신자유주의자인 프리드먼도 증세를 통한 세수확보와 정부의 기초 인프라 구축투자를 제안할만큼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한 일시적, 중장기적 해법들은 (자본주의 철폐가 아니면) 자잘한 차이를 빼면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대동소이한 해법들이 공유하는 건 재원확보책으로서 '증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미국같은 경제위기, 재정위기의 상태에 빠지지 않아서인지 아직까지 급변하고 흔들리는 세계경제질서 속에서의 한국의 나아갈 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거 같다.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복지국가담론이 유행했지만 진지한 사회적, 정치적 토론이 이어지고 있지 못한 거 같다. 분명히 복지철학과 복지의 범위를 가지고 수도 서울의 시장과 시의회가 정치적 대결을 주민투표라는 민주정치수단을 사용해서 하였는데도 그렇다. 

아마 그 이유는 현 정권이 워낙 짜증나게 굴기 때문에 일단 이 정권부터 끌어 내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새로운 정치 플랫폼, 경제 생태계의 구축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안철수 현상'으로 표출됐다는 시각에 의하면 정권교체의 열망도 크지만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논의도 대중의 중요한 관심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신드롬'적인 안철수 현상으로 '바람'이 세게 분 이후 의미있는 논의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돈의 마련책인 '증세'가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서 이유를 찾는다. 미국에서도 공화당과 보수세력은 class warfare를 대통령이 조장한다고 색깔론을 펼치는데도 오바마는 앞장서서 부자증세를 내세웠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관성적으로 증세를 주장한 진보를 빼면 진지하게 증세를 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심지어는 진보라는 사람 중에서도 선거공학적 이유를 내세우며 증세를 적극적으로 논하진 말자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정치인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증세를 주장하는 사람은 정동영이다. 
 이제 부자 증세는 거스를 수 없는 전세계적 화두이자 시대적 대세가 되고 있다. 이는 과도한 국가 채무와 낮은 경제성장률로 정부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복지 확대와 재정 적자 완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정동영이 주장하기 때문일까? 프리드먼같은 신자유주의자도 세입확충을 위해 증세를 제안하는데 왜 우리나라 진보라는 사람들은 증세를 쉽게 입에 담지 않을까. 대중적 관심이 덜하기 때문이라면 언론에서라도 적극적으로 증세, 복지확대, 인프라 투자를 내용으로 하는 정책과 정책을 내놓는 정치세력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진보의 가장 큰 관심사는 말만 좋은 세상 만들기이지 실제론 오직 '선거승리'에만 있는 거 같다. 증세, 세금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당장의 표에 이익이 생기지 않기 때문인지 그런 문제는 최대한 감추는 대신 추상적인 '시민참여', '심판', '혁신' 따위의 단어를 내세워서 단일화를 제일 먼저 다룬다. 이래선지 몰라도 이제 야권의 정체성, 정책, 지향점 하면 '단일화'가 제일 먼저 생각나고 다른 거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 앞으로 직면할 문제의 해법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그 해법을 직접 다루지 않으면 그 해법은 나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