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번 선거는 유권자들이 어떤 틀을 정해 놓지 않고 정치판 전체를 시험하는 분위기 같습니다.
아직 정답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딱히 정답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유권자들도, 물론 저도 그런 편이지만, 정답을 정해 놓고 주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 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아요.

한 가지 틀림 없는 사실은 2MB 정권 들어서서 3년이 넘게 지나오는 동안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는 겁니다.
기본적인 바탕은 전세계적인 경제 불안으로 인해 사람들의 심리적인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건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게 정치판에 변화를 요구하는 근본적인 에너지가 되고 있고, 한나라당의 친이/친박 분열 양상도 공고했던 한나라당의 아성을 조금씩 허물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 분열 양상이 한나라당이라는 '묻지마 지지 30%'에 빛나는 정당의 문제점을 외부로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고, 어려운 삶에 지친 사람들의 불만이 이 문제점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친 사람들은 조그만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이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저는 민주당이 지난 3년 반 동안 딱히 큰 변화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 이유가 뭐든 간에 민주당이 한 일로 지지율이 대폭 오르거나 대폭 줄거나 혹은 큰 이슈를 만들어 내거나 한 적이 별로 없죠. 손학규의 분당 당선도 민주당으로선 빅이슈라 하겠지만 그다지 임팩트가 크지 않았습니다.
즉, 사회 전반에서는 동적 에너지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정적인 상태를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주당 자체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경멸에 가까운 비판이나 비난을 보내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겁니다. 아전인수 격으로 표현한다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나 할까요?

요즘 사람들 만나면 골수 한나라당 지지자라도 감히 한나라당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전혀 하지 못 합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세훈 이야기는 대단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제가 강남 주민이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강남 살며 한나라당 지지자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만나서 도무지 정치 관련 이야기를,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나눈 적이 없습니다. 정말 전과는 많이 틀립니다.

사회적으로 동적인 에너지가 쌓이는데 이것이 분출될 곳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경제 불안은 단기간 내에 해결될 기미는 전혀 없고, 우리나라 역시 혼자 독야청청은 불가능합니다. 지금도 전혀 그렇지 않긴 하지만.

어떤 분들은 김어준이 전형적인 노빠라서 '나꼼수'에 대해 매우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사실 나꼼수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심지어 며칠 전에 갔던 술집의 아가씨들도 나꼼수를 열심히 듣고 있더군요. 이거 정말 대단한 겁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나꼼수도 쌓인 에너지의 분출구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듣다 보면 통쾌하거든요. 그리고 그래서 사회적 영향력이 발생합니다.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정치 가십 정도가 아닙니다.

이번 안철수/박원순의 인기가 거품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꽤 많은데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 에너지 분출구로 작동하고 있고, 선거는 얼마 안 남았습니다. 한 번 열린 구멍이 선거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간 안에 닫힐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박원순이 시장이 되건 아니건(저는 될 것으로 봅니다만.) 민주당이 이 상황을 잘 활용하기를 기대합니다.
아무리 봐도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에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손학규의 대표직 사퇴와 그 번복은 명분과 손익 계산을 떠나 일단 적극적 움직임이라는 것만으로도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만일 제가 민주당의 책사라면, 향후 전략은 어떻게 해서라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활력이 나타나는, 실수를 해도 좋고 욕을 좀 먹어도 상관 없습니다. 박원순을 영입하려는 노력을 해도 좋고, 입당을 안 해도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해도 좋습니다만, 무조건 움직여야 합니다.
민주당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고, 사람들에게 쌓인 에너지에 감응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면 설사 갈 짓자 행보를 한다 해도 그 결과는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잘한 행동 하나 하나의 유불리를 계산할 때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