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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ever Happened to the American Left? (By Michael Kazin)

미국 좌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마이클 카진)

 

* 출처: <뉴욕 타임즈 선데이 리뷰 여론란> 2011924

http://www.nytimes.com/2011/09/25/opinion/sunday/whatever-happened-to-the-american-lef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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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Kazin is a professor of history at Georgetown, a co-editor of Dissent and the author of “American Dreamers: How the Left Changed a Nation.”

 

마이클 카진은 조지타운 대학의 역사 교수, <디센트>의 공동편집자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꾸었던 이들: 어떻게 좌파가 국민을 변화시켰나>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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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IMES, attention should be paid to the absence of news. America’s economic miseries continue, with unemployment still high and home sales stagnant or dropping. The gap between the wealthiest Americans and their fellow citizens is wider than it has been since the 1920s.

 

때때로 뉴스의 부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제적 곤궁은 계속되고 있다.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주택 판매는 정체되어있거나 하락하고 있다. 가장 부유한 미국인들과 동료 시민들 사이의 격차는 1920년대 이후보다 더 크다.

 

And yet, except for the demonstrations and energetic recall campaigns that roiled Wisconsin this year, unionists and other stern critics of corporate power and government cutbacks have failed to organize a serious movement against the people and policies that bungled the United States into recession.

 

그러나 올해 위스콘신을 소란하게 했던 시위들과 강력한 해임 캠페인들을 제외하면 노동조합원들과 기업권력 및 정부예산 삭감에 대한 다른 단호한 비판자들은 미국을 불황으로 몰아넣은 사람들 및 정책들에 맞서는 진중한 운동을 조직하지 못했다.

 

Instead, the Tea Party rebellion led by veteran conservative activists and bankrolled by billionaires has compelled politicians from both parties to slash federal spending and defeat proposals to tax the rich and hold financiers accountable for their misdeeds. Partly as a consequence, Barack Obama’s tenure is starting to look less like the second coming of F.D.R. and more like a re-run of Jimmy Carter although last week the president did sound a bit Rooseveltian when he proposed that millionaires should “pay their fair share in taxes, or we’re going to have to ask seniors to pay more for Medicare.”

 

대신, 베테랑 보수주의 활동가들이 이끌고 억만장자들의 자금지원을 받는 티 파티 반란이 연방지출을 삭감하도록, 그리고 부자들에게 과세하고 급융업자들에게 그들의 비행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안을 파기하도록 양당의 정치인들을 강제했다. 부분적으로 그 귀결로, 바락 오바마의 대통령직 수행은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재림보다는 지미 카터의 재임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 비록 지난 주 대통령이 백만장자들이 그들의 공평한 세금 몫을 지불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고령자들한테 의료보험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하라고 요구해야만 될 것이다라고 제의했을 때 약간 루스벨트적인 어조로 말하긴 했지만 말이다.

 

How do we account for the relative silence of the left? Perhaps what really matters about a movement’s strength is the years of building that came before it. In the 1930s, the growth of unions and the popularity of demands to share the wealth and establish “industrial democracy” were not simply responses to the economic debacle. In fact, unions bloomed only in the middle of the decade, when a modest recovery was under way. The liberal triumph of the 1930s was in fact rooted in decades of eloquent oratory and patient organizing by a variety of reformers and radicals against the evils of “monopoly” and “big money.”

 

좌파의 상대적 침묵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한 운동의 힘에서 정말 중요한 지점은 그 운동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형성기간일 것이다. 1930년대, 노동조합들의 성장, 그리고 부를 공유하고 산업민주주의를 확립하라는 요구들의 대중적 인기는 단순히 경제붕괴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사실, 노동조합들은 적절한 경기회복이 진행 중이었을 때인 그 10년의 중반에서야 개화했다. 1930년대의 자유주의적 승리는 사실 독점큰 돈의 악에 맞서 다양한 개혁가들과 급진주의자들이 유창한 웅변들과 끈질긴 조직활동을 행한 수십 년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Similarly, the current populist right originated among the articulate spokespeople and well-funded institutions that emerged in the 1970s, long before the current crisis began. The two movements would have disagreed about nearly everything, but each had aggressive proponents who, backed up by powerful social forces, established their views as the conventional wisdom of an era.

 

유사하게, 현재의 포퓰리즘적 우파는 현재의 위기가 시작되기 훨씬 전인 1970년대에 출현했던 논리정연한 대변인들과 충분한 자금 지원을 받는 기관들에 기원을 둔 것이다. 그 두 운동들은 거의 모든 것들에 관해서 의견불일치를 보였지만 각각은 강력한 사회세력의 뒷받침을 받아 자신들의 견해를 당대의 관습적 지혜로 확립했던 공세적인 지지자들을 가졌다.

 

THE seeds of the 1930s left were planted back in the Gilded Age by figures like the journalist Henry George. In 1886, George, the author of a best-selling book that condemned land speculation, ran for mayor of New York City as the nominee of the new Union Labor Party. He attracted a huge following with speeches indicting the officeholders of the Tammany Hall machine for engorging themselves on bribes and special privileges while “we have hordes of citizens living in want and in vice born of want, existing under conditions that would appall a heathen.”

 

1930년대 좌파의 씨앗은 금박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저널리스트 헨리 조지같은 인물들에 의해 파종되었던 것이다. 1886년에, 토지 투기를 비난하는 베스트셀러 책의 저자인 조지는 신 통일노동당 후보로 뉴욕시장에 출마했다. 그는 궁핍과 타고난 궁핍이라는 악덕 속에서 살고 있는, 이교도를 섬뜩하게 할 만한 처지에 있는 일단의 시민들저편에서 뇌물과 특권을 포식하고 있는 타마니 홀 조직의 관공리들을 고발하는 연설들로 수많은 청중을 매혹시켰다.

 

* 금박 시대 (the Gilded Age) - 미국사에서 남북전쟁 후 급속하게 경제와 인구가 성장했던 시대를 가리킨다.

* 태머니(Tammany) - 1789년에 조직된 New York 시의 Tammany Hall을 본거로 한 민주당의 일파. 종종 정치적 부패·추문을 암시한다.

 

George also brought his audiences a message of hope: “We are building a movement for the abolition of industrial slavery, and what we do on this side of the water will send its impulse across the land and over the sea, and give courage to all men to think and act.” Running against candidates from both major parties and the opposition of nearly every local employer and church, George would probably have been elected, if the 28-year-old Theodore Roosevelt, the Republican who finished third, had not split the anti-Tammany vote.

 

조지는 또한 그의 청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는 사역 노예의 폐지를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서양 이편에서 하는 일은 대륙을 가로지르고 바다를 넘어서까지 충격을 미칠 것이며 사유하고 행동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용기를 줄 것입니다.” 양대 정당들의 후보들과 거의 모든 지역 고용주들과 교회의 방해에 맞서 출마했던 조지는 28살의 공화당원인 테어도르 루즈벨트가 3등을 해서 반 태마니 표들을 분산시키지 않았다면 당선되었을 지도 모른다.

 

Despite George’s defeat, the pro-labor, anti-corporate movement that coalesced around him and others kept growing. As the turn of the century neared, wage earners mounted huge strikes for union recognition on the nation’s railroads and inside its coal mines and textile mills. In the 1890s, a mostly rural insurgency spawned the People’s Party, also known as the Populists, which quickly won control of several states and elected 22 congressmen. The party soon expired, but not before the Democrats, under William Jennings Bryan, had adopted important parts of its platform the progressive income tax, a flexible currency and support for labor organizing.

 

조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와 다른 이들을 중심으로 뭉쳤던 친노동, 반기업 운동은 계속 성장했다. 세기 전환이 가까워질 무렵, 임금소득자들은 국영 철도회사와 그것의 석탄광산들 및 방직공장들 내에서의 노조 인정을 위해 대규모 파업들을 벌였다. 1890년대에, 대다수의 농촌 소요는 민중주의자들로도 알려진 민중의 당 창당으로 이어졌는데 그 당은 신속하게 몇몇 주의 통제권을 획득했고 22명을 의회에 진출시켰다. 당은 곧 해체되었는데,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이끄는 민주당이 그것의 플랫폼의 주요 부분들 - 누진소득세, 변동환율 그리고 노동조직화에 대한 지원 - 을 채택하고 나서야 일어난 일이었다.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a broader progressive coalition, including immigrant workers, middle-class urban reformers, muckraking journalists and Social Gospelers established a new common sense about the need for a government that would rein in corporate power and establish a limited welfare state. The unbridled free market and the ethic of individualism, they argued, had left too many Americans at the mercy of what Theodore Roosevelt called “malefactors of great wealth.” As Jane Addams put it, “the good we secure for ourselves is precarious and uncertain, is floating in mid-air, until it is secured for all of us and incorporated into our common life.”

 

20세기 초에는 이민 노동자들, 중간계급 도시 개혁론자들, 추문을 폭로하는 저널리스트들 그리고 사회복음주의자들을 포함하는 광범한 진보연합이 기업권력을 억제하고 제한된 수준이나마 복지국가를 확립할 정부의 필요성에 관한 새로운 상식을 확립했다. 그들은 고삐 풀린 자유시장과 개인주의 윤리가 너무 많은 미국인들을 테오도르 루즈벨트가 막대한 부를 거머쥔 악인들이라 불렀던 이들의 손아귀에 던져 넣었다고 주장했다. 제인 아담스가 말한 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확보하는 선은 우리 모두에게 확보되어 우리의 공동체적 생활에 합체되기 전까지는, 불안전하고 불확실하며 대기 한 가운데를 부유할 것이다.”

 

Amid the boom years of the 1920s, conservatives rebutted this wisdom and won control of the federal government. “The chief business of the American people is business,” intoned President Calvin Coolidge. But their triumph was brief, both ideologically and electorally. When Franklin D. Roosevelt swept into the White House in 1932, most Americans were already primed to accept the economic and moral argument progressives had been making since the heyday of Henry George.

 

1920년대의 호황기 중에, 보수주의자들은 이 지혜를 거부했고 연방정부의 통제권을 획득했다.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미국인들의 주요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이다라고 목소리 높여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승리는 이데올로기와 선거 양면 모두에서 일시적이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1932년에 백악관에 들어갔을 때,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헨리 조지의 전성기 이래 진보주의자들이 해왔던 경제적 및 도덕적 논변을 받아들일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Will Rogers, the popular humorist and a loyal Democrat, put it in comfortably agrarian terms, “All the feed is going into one manger and the stock on the other side of the stall ain’t getting a thing. We got it, but we don’t know how to split it up.” The unionists of the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 echoed his argument, as did soak-the-rich demagogues like Huey Long and Father Charles Coughlin. The architects of Social Security, the minimum wage and other landmark New Deal policies did so as well.

 

인기 있는 유머가이자 민주당 충성당원인 윌 로저스가 편하게 농민들의 표현들을 써서 말한 대로, “사료 전부를 한 여물통에 담으면 외양간의 저편에 있는 가축들은 먹지를 못할 것이다. 우리는 사료를 구했지만 그것을 나누어 담을 줄을 모른다.” 산업별 회의의 조합원들은 휴이 롱과 파더 찰스 쿠글린같은 부유한 선동정치가들을 혼내주었을 때 그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사회안전망, 최저임금제 그리고 다른 획기적인 뉴딜 정책들의 입안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했다.

 

After years of preparation, welfare-state liberalism had finally become a mainstream faith. In 1939, John L. Lewis, the pugnacious labor leader, declared, “The millions of organized workers banded together in the C.I.O. are the main driving force of the progressive movement of workers, farmers, professional and small business people and of all other liberal elements in the community.” With such forces on his side, the politically adept F.D.R. became a great president.

 

몇 년간의 준비기간이 지난 후 복지국가 자유주의가 드디어 하나의 주류 신조가 되었다. 1939년에 호전적인 노동운동 지도자인 존 L.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산업별 회의로 함께 뭉친 수백만의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노동자들, 농민들, 전문직업인들 그리고 소사업자들 및 공동체의 모든 다른 자유주의적 요소들의 진보적 운동의 주요 추동력이다.” 그러한 세력을 자기편으로 한 채 정치적으로 능숙한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But the meaning of liberalism gradually changed. The quarter century of growth and low unemployment that followed World War II understandably muted appeals for class justice on the left. Liberals focused on rights for minority groups and women more than addressing continuing inequalities of wealth. Meanwhile, conservatives began to build their own movement based on a loathing of “creeping socialism” and a growing perception that the federal government was oblivious or hostile to the interests and values of middle-class whites.

 

그러나 자유주의의 의미는 점차 변했다. 이차대전을 뒤따랐던 성장과 낮은 실업률의 4반세기가 이해될만하게도 계급정의가 좌파에게 행사했던 매력을 약화시켰다. 자유주의자들은 계속되는 부의 불평등들과 대결하는 데보다는 소수집단들과 여성들의 권리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그 사이, 보수주의자들은 살며시 다가오는 사회주의에 대한 혐오와 연방정부가 중간계급 백인들의 이해관심들 및 가치들에 맹목이거나 적대적이라는 지각에 바탕을 둔 그들 자신의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IN the late 1970s, the grass-roots right was personified by a feisty, cigar-chomping businessman-activist named Howard Jarvis. Having toiled for conservative causes since Herbert Hoover’s campaign in 1932, Jarvis had run for office on several occasions in the past, but, like Henry George, he had never been elected. Blocked at the ballot box, he became an anti-tax organizer, working on the belief that the best way to fight big government was “not to give them the money in the first place.”

 

1970년대 말, 풀뿌리 권리들은 하워드 자비스라 불렸던, 활기가 넘치고 시가를 즐겼던 사업가-활동가에 의해 상징되었다. 1932년의 허버트 후버의 캠페인 이래 보수주의적 대의들을 위해 분투하면서 자비스는 과거 몇 차례 공직에 출마했지만 헨리 조지처럼 결코 당선되지는 못했다. 투표에서 승리하지 못하자 그는 큰 정부와 싸우는 최선의 방도는 애초 그것에게 돈을 주지 않는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뛰어다니면서 세금 반대 조직가가 되었다.

 

In 1978 he spearheaded the Proposition 13 campaign in California to roll back property taxes and make it exceedingly hard to raise them again. That fall, Proposition 13 won almost two-thirds of the vote, and conservatives have been vigorously echoing its anti-tax argument ever since. Just as the left was once able to pin the nation’s troubles on heartless big businessmen, the right honed a straightforward critique of a big government that took Americans’ money and gave them little or nothing useful in return.

 

1978년 그는 재산세를 되돌리고 재산세를 다시 올리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제안 13 캠페인의 선봉에 섰다. 그 해 가을, 제안 13은 전체 표의 3분지 2를 획득했고 그때 이래 죽 보수주의자들은 정력적으로 세금반대론을 되풀이해 주장 해왔다. 좌파가 한 때 국민의 골칫거리가 비정한 대사업가들임을 가리켜 보일 수 있었던 것처럼 우파는 미국인들의 돈을 가져가놓고는 그 대가로 그들에게 유용한 아무것도 주지 않거나 거의 주지 않았던 큰 정부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을 퍼부었다.

 

One reason for the growth of the right was that most of those in charge of the government from the mid-1960s through the 2000s whether Democrats or Republicans failed to carry out their biggest promises. Lyndon Johnson failed to defeat the Viet Cong or abolish poverty; Jimmy Carter was unable to tame inflation or free the hostages in Iran; George W. Bush neither accomplished his mission in Iraq nor controlled the deficit.

 

우파의 성장의 한 가지 이유는 196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까지 정부를 책임졌던 이들 대다수가 - 민주당원이건 공화당원이건 - 그들의 가장 큰 약속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린든 존슨은 베트콩을 패퇴시키지 못했거나 빈곤을 제거하지 못했다; 지미 카터는 인플레이션을 억누르지 못했거나 이란의 [미국인] 인질들을 구해내지 못했다; 조지 W. 부시는 이라크에서의 그의 사명을 성취하지도 못했고 적자를 통제하지도 못했다.

 

Like the left in the early 20th century, conservatives built an impressive set of institutions to develop and disseminate their ideas. Their think tanks, legal societies, lobbyists, talk radio and best-selling manifestos have trained, educated and financed two generations of writers and organizers. Conservative Christian colleges, both Protestant and Catholic, provide students with a more coherent worldview than do the more prestigious schools led by liberals. More recently, conservatives marshaled media outlets like Fox News and the editorial pages of The Wall Street Journal to their cause.

 

20세기 초의 좌파처럼,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의 이념들을 개발하고 전파하기 위해 일단의 인상적인 기관들을 설립했다. 그들의 싱크 탱크들, 변호사 단체들, 로비스트들, 로크 라디오 그리고 베스트 셀러 선언문들은 두 세대에 걸쳐 저자들과 조직가들을 훈련시키고 교육시키고 재정지원 해왔다. 자유주의자들이 이끄는 더 유명한 학교들보다는 개신교와 카톨릭 양편 모두의 보수주의적 기독교 컬리지들이 학생들에게 더 일관된 세계관을 제공한다. 더 최근에는, 보수주의자들은 <폭스 뉴스><월 스트리트 저널>의 사설란같은 매체들을 그들의 대의의 대변자로 확보했다.

 

The Tea Party is thus just the latest version of a movement that has been evolving for over half a century, longer than any comparable effort on the liberal or radical left. Conservatives have rarely celebrated a landslide win on the scale of Proposition 13, but their argument about the evils of big government has, by and large, carried the day. President Obama’s inability to solve the nation’s economic woes has only reinforced the right’s ideological advantage.

 

<티 파티>는 자유주의적 좌파나 급진적 좌파 편에서의 어떤 비견될 만한 노력보다도 더 오래, 반세기 이상 동안 전개되어 왔던 운동의 가장 최근 판본일 뿐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드믈게만 제안 13 규모의 압도적 승리를 거두지만 큰 정부의 악에 관한 그들의 주장은 대체로 먹혀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국민의 경제적 고난을 해소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우파의 이데올로기적 이점을 강화시켜주었을 뿐이다.

 

If activists on the left want to alter this reality, they will have to figure out how to redefine the old ideal of economic justice for the age of the Internet and relentless geographic mobility. During the last election, many hoped that the organizing around Barack Obama’s presidential campaign would do just that. Yet, since taking office, Mr. Obama has only rarely made an effort to move the public conversation in that direction.

 

이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좌파 활동가들은 경제정의라는 오랜 이상을 인터넷과 가차 없는 지리적 유동성의 시대에 걸맞게 재정의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지난 선거 동안 많은 이들이 바락 오바마의 대통령 출마 캠페인 조직이 바로 그것을 하기를 희망했었다. 하지만 취임 이래 오바마씨는 오직 드믈게만 그 방향으로 공적 화제를 이동시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Instead, the left must realize that when progressives achieved success in the past, whether at organizing unions or fighting for equal rights, they seldom bet their future on politicians. They fashioned their own institutions unions, women’s groups, community and immigrant centers and a witty, anti-authoritarian press in which they spoke up for themselves and for the interests of wage-earning Americans.

 

좌파는 진보주의자들이 과거에 노조들의 조직 면에서든 평등한 권리들을 위한 투쟁에서든 성공을 성취했을 때 그들이 좀처럼 정치가들에게 그들의 미래를 걸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기관들 - 노동조합들, 여성 모임들, 공동체 및 이주민 센터들 그리고 재치 있는 반권위주의적 언론들 -을 만들어 냈다. 그 기관들은 진보주의자들과 미국의 임금 소득자들의 이해관심을 대변했다.

 

Today, such institutions are either absent or reeling. With unions embattled and on the decline, working people of all races lack a sturdy vehicle to articulate and fight for the vision of a more egalitarian society. Liberal universities, Web sites and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cater mostly to a professional middle class and are more skillful at promoting social causes like legalizing same-sex marriage and protecting the environment than demanding millions of new jobs that pay a living wage.

 

오늘날, 그러한 기관들은 존재하지 않거나 휘청거리고 있다. 노동조합들이 궁지에 몰려 쇠약해지자 모든 인종의 노동자들이 [그 위에 올라 타] 더 평등주의적인 사회의 비전을 위해 투쟁하고 그 비전을 표현할 강고한 매개체가 사라졌다. 자유주의적 대학들, 웹사이트들 그리고 비정부기구들은 거의 전적으로 전문직 중간계급에만 영합하며 생활임금을 지불하는 수 백 만개의 새 일자리들을 요구하는데 보다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 같은 사회적 대의들의 실현을 촉진한느데 더 능숙하다.

 

A reconnection with ordinary Americans is vital not just to defeating conservatives in 2012 and in elections to come. Without it, the left will remain unable to state clearly and passionately what a better country would look like and what it will take to get there. To paraphrase the labor martyr Joe Hill, the left should stop mourning its recent past and start organizing to change the future.

 

보통 미국인들과의 재결연은 2012년과 다가올 선거들에서 보수주의자들을 패퇴시키는데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 없이는, 좌파는 더 좋은 나라가 어떤 모습을 한 나라이며 그 나라를 이루는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분명하고도 열정적으로 진술할 수 없는 채 남아있게 될 것이다. 노동운동 순교자 조 힐이 한 말을 풀어 얘기해보자면, 좌파는 그것의 최근 과거를 애통해 하는 것을 멈추고 미래를 변화시키기 위한 조직화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