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대단합니다. 또 책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생각하는 강준만의 최고의 저서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의 따끈따끈한 2000년대편이 출간되었습니다. 불과 2년 전이 2009년인데, 이렇게 빨리 2000년대편을 내놔도 되는 것인지 의아했습니다만, 그래도 강준만과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에 대한 신뢰가 크기에 오랜만에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산 책은 전부 강준만 책이긴 하더군요. <강남좌파>, <미국사 산책>이 가장 최근에 산 책이니까...

그런데 이 책 1권부터 4권까지 읽었는데, 사실 저자 자신도 2000년대를 '노무현 시대'라고 명명하긴 했지만,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이라는 제목보다는 <노무현 시대>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의 현대사 산책 시리즈 역시 정치에 관련된 내용이 많았긴 했지만 그밖에 시시콜콜해보이는 이야기들도 많이 실려있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거의 모든' 사건들이 담겨있었다면, 이번 2000년대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무현뿐입니다. 아 물론 간간히 다른 내용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구색 맞추기 같더군요.


지금은 안오시는 바람계곡님이 노빠(권장할 단어는 아니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듯 해서)들과 논쟁한 소회를 밝히며 쓰신 이런 글이 있더군요.
'음... 이 사람들과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by 바람계곡)

사실 굳이 노빠들과 논쟁할 때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논쟁에서, 특히 특정 인물과 관련된 논쟁이 벌어지면, "그 사람이 그런 말이나 행동을 정말 했나요? 증거를 내놓으세요, 팩트를 내놔요 팩트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귀찮은 일 마다하고 찾아주면, 보도한 언론사가 문제라느니, 아니면 '전문'을 내놓으라고 다시 하거나, 팩트에 대한 해석을 놓고 또 싸움이 붙죠.

바람계곡님 이하 논객들을 어여삐 여기신 것일까요. 강준만의 이번 책은 노무현, 유시민,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이해찬, 문재인, 추미애, 386, 구민주당, 열린우리당 등 2000년대 야권을 휘저어 놓은 모든 정치인, 정당의 발언, 정치행위, 그에 관한 각 언론사의 논평이 '그대로' 실려있습니다. 물론 출처도 당연히 함께 실려있죠. 플러스로 강준만의 논평도 있죠.

제가 만약 유시민, 문재인, 현재 참여당에 있는 강경친노라면 저 책 불태우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노무현이라면 강준만한테 "마 머가 그리 맺힌게 많소, 고마 하입시다, 화해합시다" 할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그들'이 자주 쓰는 표현대로 "한번 찾아서 읽어 보시"구요(ㅋㅋ).

강준만 말대로, 한국 사람들은 정말 쉽게 잊고, 쉽게 흥분하고, 쉽게 용서하고 뭐 그러는 것 같습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노무현 정부 집권 기간에 있었던 중요한 거의 모든 사안(정치, 경제, 외교안보통일)이 거의 모든 언론사의 기사와 각종 전문가, 지식인의 코멘트를 통해 다루어졌는데, 정말 이렇게 그 시기를 표현하고 싶어지더군요. "개판"

노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의 충격으로 "이명박 이 개XX"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우리가 너무 쉽게 참여정부 때의 난리법석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솔직히 강준만 책을 보고 정말 놀란게, 정말 참여정부 때 개판이더군요. 몇가지 생각나는 것만 적자면,

2003년부터 물가가 뛴다, 양극화가 심상치않다는 말이 나왔고, 부시정부 들어선 이래로 대북문제, 외교안보문제가 덜컹거린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는데, 참여정부,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그 최측근들의 최대 관심사는...? 네 그렇습니다, 민주당 분당과 신 정당의 창당작업이었습니다. 당시 인용된 언론보도를 보면, 패턴이 이렇습니다. "경제 어렵다, 외교 어렵다, 북한문제 어렵다"라는 기사가 따로 나오고, "민주당 구주류,신주류 갈등, 청와대 배후에?, 노심은 어디에?, 유시민 독설 쫙~, 천신정 광폭행보, 이강철 살생부 정균환,박상천은 제거대상"이 따로 나옵니다. 정치, 경제, 안보, 외교의 어려움과 노무현, 참여정부, 집권당이 전혀 무관하게 따로 놀더군요.

정부 출범 불과 100일만에 지지율이 대폭락하고 살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오는데 장장 1년 넘게 전국정당, 진성당원제, 지역주의타파, 후단협제거, 살생부, 독수리5형제, 김근태 나와라 마라, 추미애가 오해했다,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일로 허송세월한 것이죠. 거기다가 "한나라당에 주는 선물"인 '대북송금특검'에 대한 수용과 남북정상회담의 주역들에 대한 수사가 그와중에 소위 말하는 구주류, 신주류의 갈등에 불을 짚히는 등...한마디로 정말 개판이었더군요. 지금은 완전 태평성대입니다, 이에 비하면. 오세훈이 무상급식 못하겠다, 주민투표 하겠다 이 난리친 것, 솔직히 참여정부 초기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더군요. 오세훈은 (차라리) 깔끔하게, "시장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투표 한방에 결판내자"해서 뚝딱 셀프탄핵하고 나갔잖아요(ㅋㅋ).

그리고 분양원가공개논란...말 그대로 개판입니다. 대연정논란...개판, 한미FTA논란...개판까지는 아닌데, 추진 이후 상승한(30%까지) 지지율에 기분 좋아하는 참여정부의 모습이 좀 그렇더군요. 그리고 2007 대선 직전 열린우리당, 구민주당이 합당하네 마네 이걸로 싸운 것이 개판의 종지부를 찍죠. 쪼개질 때도 개판이었는데 합쳐질 때도 개판이더군요. 쪼개질 때에는 노대통령은 "쪼개라"라고 직접 언질하진 않고 그 밑에 조무래기들과 천신정이 개판쳤는데 합치려고 하니까 이번에는 노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모든 야권 대선주자들 저격하고, 고건, 정운찬 비아냥대고, 심지어 고건이 대선 불출마 선언 하니까 노대통령이 "내가 한거 봤지~?"하면서 기세등등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등...개판 of 개판이더군요.


휴 흥분되네요. 아무튼 저 개판의 와중에 김근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판인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절제와 품위를 보여주더군요. 강준만이 그렇게 보이도록 기사를 취사선택했을 수도 있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정도'를 걸었다고는 안하겠습니다. 뭐가 바른 길이고 뭐가 틀린 길인지에 대한 역사적 가치판단은 제각각일테고, 친노입장에서는 (저 책에 자세히 나와있지만) 김근태는 책임감 없고, 책임질 일 한번도 안해 본 '비겁한' 인간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저 개판 속에서 최대의 이익을 본 곶감은? 네~유시민입니다. 최장집의 논문을 통한 학술적 비판에 대해서도, 정신분열적 태도든가요? 아무튼 좀 모자라 보이는 말 해가면서 싸움질하고, 이랬다 저랬다 말과 행동 바꾸기는 물론이거니와, 유시민이 목소리 높여서 난리칠 때에 정치적 상황은 항상 유시민에게 유리할 때이더군요. 아니면 뒤에서 노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백업해주고 있거나. 그거 이외에 노무현 지지율 폭락하고, 지방선거 완패, 재보선 전패로 당을 또 깨네 마네, 구민주당과 합치네 마네 할 때에는 뒤에서 궁시렁 대거나, 입 싹 닫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 "하.....답답하다" 뭐 이러더군요.


아 책 소개를 하고 싶었는데 좀 이상한 글이 되었군요.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이거였습니다. 자기 성찰 안하고, 무조건 우리 편 이겨라 이런 응원하다보면 우리 편이 또 개판치는 비참한 상황이 온다는 것...잔인하게 말하자면, 1200만표를 몰아주고, 152석을 몰아줬는데도 조중동탓, "21세기 대통령인데 20세기 국민들이 ㅂ ㅅ이다"라는 국민탓, 한나라당탓, 전임정부탓(안한 것 같죠? 경제 관련해서 전임정부탓 꽤 했습니다, 자료 다 있으니 "찾아보시길"), 그래놓고 지지율 개판치고, 여당 개판되고나서 그 여당 정치인들이 그래도 다 죽을 순 없으니까 어떻게든 살 길 모색하는데다가 노무현과 참여정부 사람들은 "우리가 정권 재창출할 이유가 있나?", "정동영 죽이기 TF 구성", "차차기 유시민 대통령 만들자", "영남을 거점으로 영남정치인들이 '우리' 뜻을 이어갈 거다 to 노사모 간부들" 이랬기 때문에 정치적 생명이 아니라 정말 생명으로 그 대가를 치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김근태 정말 아쉽다는 것...



ps) 참고로 노대통령의 수많은 말 중에 가장 야마돌게 한 말은 이거였습니다. 딱 보면 그게 뭐 어때서? 이럴 수 있지만 전 빡돌더군요.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충 쓰자면...
대연정으로 당시 집권여당 열리우리당이 개판됐을 때, "너무 여당이 혼란스럽게 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노대통령 왈, "카오스이론이란 것이 있는데, 이런 카오스 상황에서 질서가 창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