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는 적응적 형질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용불용 이론(theory of use and disuse)을 제시했다. 다윈(Charles Darwin)과 월리스(Alfred Wallace)는 적응적 형질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자연 선택 이론(theory of natural selection)을 제시했다. 다윈은 자연 선택 이론을 제시한 다음에도 용불용 이론을 어느 정도 계속 받아들였다. 어쨌든 결국 진화 생물학계에서 용불용 이론을 사실상 폐기되었다.

 

용불용 이론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근육을 많이 쓰면 특히 남자의 경우 근육이 커진다. 근육이 커지면 더 큰 힘을 쓸 수 있다. 손바닥에 마찰을 계속 가하면 굳은살이 박인다. 굳은살은 큰 마찰을 견딜 수 있도록 한다. 큰 근육과 굳은살은 어떤 면에서 보면 적응적 형질이다. 많이 사용하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적응적인 형질이 생긴 것이다. 라마르크는 이렇게 경험을 통해 생긴 적응적 형질이 후세로 유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어떤 기관을 많이 사용할수록 그 기관이 적응적으로 변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변한 형질이 후세로 유전될 수 있다면 세대가 거듭될수록 그 기관이 점점 더 적응적인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용불용 이론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첫째, 라마르크는 많이 사용하기만 하면 어떤 형질이 적응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막연히 가정했다. 사실 이것은 이상한 가정이다. 기계의 경우에는 사용할수록 마모되어 망가지기 마련이다.

 

근육의 예를 살펴보자. 만약 큰 근육이 작은 근육에 비해 힘을 더 많이 쓸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더 적응적이라면, 그리고 용불용 이론이 옳다면 아예 사람이 운동을 열심히 안 해도 큰 근육이 발생(development, 발달)하도록 진화했을 것 같다.

 

큰 근육에는 더 큰 힘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큰 근육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근육이 더 큰 사람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살을 빼고 싶어하는 현대인에게 이런 현상은 기쁜 소식이겠지만 굶주림의 위협이 상당했던 원시시대에는 커다란 문제였을 것이다. 인간은 큰 힘이 많이 필요할 때에는 즉 근육을 많이 쓸 때에는 근육이 커지게 만들어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큰 힘이 덜 필요할 때에는 즉 근육을 많이 쓰지 않을 때에는 근육이 작아지게 만들어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도록 하는 기제를 진화시킨 것 같다.

 

큰 근육이 항상 적응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근육을 많이 쓰면 근육이 커지는 이유는 어떤 신비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그런 식으로 근육량을 조절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굳은살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굳은살은 큰 마찰을 견딜 수 있게 하지만 피부의 감각을 무디게 한다. 따라서 큰 마찰을 견딜 필요가 있을 때에는 굳은살을 만들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굳은살을 없애는 것이 적응적일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식으로 굳은살을 조절하도록 진화한 것 같다.

 

둘째, 획득 형질은 보통 유전되지 않는다. 특히 유전자는 근육 운동 등을 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유전자는 돌연변이나 재조합(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생기는 유전자의 재조합) 등으로 바뀔 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세대에 걸쳐 근육 운동을 한다고 해도 근육 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근육이 점점 더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하지는 않는다.

 

유전자(gene)가 유전(inheritance, 대물림)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획득 형질은 절대로 유전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용불용 이론과 관련해서는 획득 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이야기해도 거의 무방한 것 같다.

 

 

 

이제는 진화 생물학을 깊이 배우지 않는 일반인도 용불용 이론이 폐기되었으며 자연 선택 이론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은 보통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 약간은 헷갈리는 것 같다. 진화 심리학에서 다루는 예를 들어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여자는 남자에 비해 아기의 표정을 더 잘 알아본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우리 조상들이 진화할 때 여자가 남자에 비해 아기를 더 많이 돌보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것은 용불용 이론을 끌어들인 설명인 것 같다. 아기를 돌본 경험 때문에 여자의 아기 표정 읽기 능력이 더 발달하고 그것이 후세로 유전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용불용 이론은 잘못된 이론이며 용불용 이론을 끌어들인 이런 식의 설명은 잘못된 설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과거에 여자가 아기를 더 많이 돌보았다는 사실에서 현재 여자의 아기 표정 읽기 능력이 남자보다 낫다는 사실이 도출될 수 있단 말인가? 여자가 남자에 비해 아기를 많이 돌보아서 그런 경험을 통해서 아기의 표정을 더 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획득된 형질은 후대에 유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여자는 남자에 비해 아기의 표정을 더 잘 읽을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용불용 이론은 폐기되었다. 그렇다면 자연 선택 이론으로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논의의 편의상 남자와 여자의 아기 표정 읽기 능력이 평균적으로 똑같은 상태라고 하자. 이 때 어떤 돌연변이 A가 생겼다고 하자. A는 여자의 아기 표정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도록 영향을 끼치지만 남자의 아기 표정 읽기 능력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자. 이 때 A는 개체군 내에서 퍼질 수 있을까?

 

표정을 더 잘 읽을 수 있으려면 표정 읽기와 관련된 뇌 회로가 더 정교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통 뇌 세포도 더 많이 필요하다. 더 많은 뇌 세포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돌연변이 유전자 A 덕분에 여자는 아기의 표정을 더 잘 읽을 수 있게 된 반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비용도 치르게 된다. 이것은 더 큰 근육 때문에 힘을 더 잘 쓸 수 있지만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아기를 더 많이 돌본다. 따라서 더 많은 에너지의 소모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번식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돌연변이 유전자 A는 개체군 내에서 퍼질 수 있다.

 

 

 

이번에도 논의의 편의상 남자와 여자의 아기 표정 읽기 능력이 평균적으로 똑같은 상태라고 하자. 이 때 어떤 돌연변이 B가 생겼다고 하자. B는 남자의 아기 표정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도록 영향을 끼치지만 여자의 아기 표정 읽기 능력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자.

 

B 때문에 남자는 아기의 표정을 더 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별로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남자는 여자에 비해 아기를 적게 돌보기 때문이다. 별로 쓸모도 없는 능력의 향상을 위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것은 낭비다. 따라서 B는 개체군 내에서 퍼질 수 없다.

 

 

 

위에서는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무리하게 단순화했다.

 

첫째, 남자와 여자의 아기 표정 읽기 능력이 평균적으로 똑같은 상태라고 가정한 것은 순전히 설명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 실제 진화 역사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진화는 그 반대 방향으로 일어난 것 같다. 먼 옛날에는 우리 조상들 중 암컷만 자식을 돌보았는데 결혼의 진화 때문에 수컷도 자식을 어느 정도 돌보게 되었다. 그래서 남자의 아기 표정 읽기 능력이 향상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 것 같다.

 

둘째, 남자도 아기를 어느 정도 돌본다. 따라서 B가 번식 이득을 어느 정도는 준다. 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여자가 아기를 돌보는 정도와 남자가 아기를 돌보는 정도에 대한 정량 분석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정량 분석을 바탕으로 A가 여자에게 주는 번식 이득과 B가 남자에게 주는 번식 이득을 정량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AB가 에너지 소모를 어느 정도 더 하도록 영향을 끼치는지 따져야 하며 이것을 남녀가 얻는 번식 이득과 비교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자면 초보자가 거의 이해하기 힘든 골 때리는 수학적 모형(model)이 필요하다.

 

하지만 원리는 단순하다. 여자에 비해 남자가 아기를 덜 돌보았기 때문에 아기 표정 읽기 능력이 남자에게는 쓸모가 덜했다. 따라서 남자가 여자에 비해 아기 표정 읽기 능력을 위해 에너지를 적게 투자하는 것이 최적 전략에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에 비해 아기 표정을 더 잘 읽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자연 선택 이론을 적용한 설명이다.

 

 

 

“남자에 비해 여자에게 아기 표정 읽기 능력이 더 쓸모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가 선천적으로 아기 표정을 더 읽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났다”는 진화 심리학 가설을 검증하는 것은 이 가설이 어떤 식으로 자연 선택 이론을 적용했는지를 살펴보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여기에서는 용불용 이론과 자연 선택 이론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이덕하

2011-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