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기 글을 쓴다. 요즘 시장선거다 뭐다 해서 세상이 참 시끄러운데 조용히 앉아 음악 들을 마음 여유 갖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음악 듣는 축복의 시간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야 없지 않은가.

 지난 7월초에 나는 러시아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6년만의 러시아행이라 마음이 설레고 기대도 무척 컸었다. 7월은 모스크바 방문하기
에 가장 적합한 계절이다. 우리의 초여름 날씨 비슷해서 유럽이나 미주 여행객들도 7월에 모스크바를 흔히 찾는다.
나는 이 여행에서 몇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선 라쟌주의 기브리노라는 조그만 마을에 찾아가서 나의 러시아 여자친구 니나
의 무덤에 성묘하는 일이다. 가브리노에는 작가 아나톨리 김의 다차도 있는 곳이다. 니나는 전에 그 다차에 머물 때 사귄 러시아 할머니인
데 그때 헤어지면서 나는 반드시 니나를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었다. 니나는 솔제니친의 단편 <마뜨료나의 집>에 등장하는 마뜨료나
를 연상시키는 순박한 러시아 농촌 여성의 전형인데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남동생과 함께 땅을 일구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태전 한국에 온 아나톨리를 통해 니나가 암으로 사망한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래서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한국의 소주
한병을 사들고 가브리노 니나의 유택을 찾아갈려고 했던 것이다.

 두번째 계획은 라쟌주의 중소도시인 카시모프 인근에 거주하는 지방작가 혹은 시인들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6년전 여행 때
사귄 사람들이고 아나톨리 말에 의하면 자주 내 소식을 묻곤 한다는 것이다.
 "그 한국 사람 언제 다시 여기 오나요?" 이렇게 묻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나톨리는 그들이 당신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라고
지난번 방한 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소박하고 다감한 그들 러시아 지방 문인들과 재회하는 것을 나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세번째 계획과 네번째 계획은 좀 우습고 맹랑한 것들이다. 트베르스카야 거리는 모스크바의 명동이라고 흔히 말한다. 레닌 도서관과
도 가깝고 크레물린 궁과도 멀지 않다. 90년대엔 그곳도 건물이 낡아 좀 우중충한 분위기였는데 최근 경제가 호전되면서 건물들이
리모델링 되고 새로 채색되면서 아주 화려하고 화사한 분위기로 면목을 일신했다. 대로에서 잠깐 뒷길로 돌아가면 노천카페들이
한낮에 손님을 맞는데 커피나 음료값이 조금 비싸다. 여행자들, 외국인들이 주로 찾아서 그런가 보다. 전에 한 두번 그곳에서 차를
마셨는데 투명한 햇빛에 반사된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차 마시는 기분이 큰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았다. 거기 앉아 서울에서 여러가지
일로 시달린 머리도 식히고 새로운 계획이라던가 구상도 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다음으로 지난번 석달 머물던 툴스카야 아파트가 있는 마을로 찾아가서 옜 추억을 더듬는 것이다. 내가 매일 가던 피자 가게, 이따금
연어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던 지하의 노동자식당, 그리고 일본여인이 한쪽 구석에서 초밥을 팔던 소규모 마트 등, 들자면 한이 없다.
 그런 곳을 다시 찾아가서 그때 반복했던 생활을 다시 재현해 보는 것이다. 추억에 젖어서. 그리고 그때 저녁나절 산책을 다녔던 거리
와 골목들을 다시 거닐어 보는 것이다. 피자가게에는 그때 프런트를 지키던 그 아가씨가 아직 있을까? 연어 스테이크 식당에서 독일
어 교사 출신이라던 그 여인은 아직도 홀을 부지런히 오갈까? 이런 기대감과 상상을 하면서.

 아 참 또 하나, 아나톨리 김은 페레델키노 작가촌에 자기 집을 갖고 있는데 그곳에 와서 며칠 묵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곳에는 파스테
르나크가 <지바고>원고를 마무리지었던 파스테르나크 기념관도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차로 한시간 거리다.

대충 이런 프로그램들을 마련해놓고 나는 온갖 여행 준비를 했다. 바지도 사고 양말도 사고 손가방도 하나 새로 마련하고. 마치
소풍 떠나는 초등학생 마냥 들뜬 기분으로. 물론 항공티켙도 어렵사리 구입했다. 여름 러시아 행 티켙구입이 쉽지 않았고 가격도
많이 뛰었다. 6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2.5배는 뛴 것 같다. 페테르부르그에 현대차 공장이 생긴 뒤로 티켙 구입이 어려워졌다는
말도 있었다. 비자 피를 주고 비자수속도 물론 마쳤다. 이제 떠날 차례였다.
 
  떠나기 며칠 전 내가 서울을 떠나면 안된다는 연락이 왔다. 이 사연은 여기에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다. 뒤에 그 판단이
누군가의 착오에 의해 그렇게 된 걸 알았지만 이미 때는 지나갔다. 이 얘기는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나 상술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서울을 7월에도 8월에도 떠나서는 안되는 상황에 갑자기 직면했다. 눈물을 머금고 티켙을 적지 않은 페널티까지
물어가며 환불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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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의 피아노 변주곡 <Souvenir de Paganini>는 여행계획이 좌절된 내가 컴퓨터 앞에서 u tube 를 통해 마음을 달래며 들었
던 곡이다. 겨우 5~6분에 지나지 않은 음악이지만  여기서도 쇼팽의 진면목을 느껴볼 수 있는 절묘한 선율이라고 생각된다. 아마
최근 서른번도 더 들었을 것 같다. 본래 파가니니의 <베니스의 카니발>이라는 바이올린 곡을 쇼팽이 피아노 변주로 재생시킨
곡인데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원곡도 물론 훌륭한 걸작이지만 그것을 바탕 삼아 독특하고 감칠맛 나는 피아노곡으로 변형시킨
이 작품이 도리어 원곡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아쉬케나지와 터어키 여인 이딜 비레가 잇달아 연주를 들려주는데
서로 대조적인 기풍을 보여줘서 흥미를 돋구기도 한다. 물론 이들 외에도 이름있는 피아니스트라면 이 곡을 그냥 지나친 경
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베니스의 카니발이 나의 러시아 여행 계획과 무슨 관련이 있어서 여행이 좌절된 기분을 위안받았다고 하는가?
여기에 명확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다. 음악은 논리 이전이고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일면이 있다. 그러나 간명하게 개인적
견해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카니발은 축제이다. 인생에는 여러 차례, 아니, 아무리 불행한 인간에게도 몇 차례의 축제는 있
다. 불꽃이 튀는 것 같은 황홀한 축제의 순간을 누구나 꿈꾼다. 나의 러시아 여행 계획 같은 것이, 이를테면 나에게는 의미심
장한 축제의 기간에 해당된다. 현장에 찾아가서 지나간 시간을 음미하며 기억을 되살리며 추억에 젖어보는 것은 삶의 되새김질
같은 것이다. 그것은 처음 경험 보다 더욱 농도 짙은 체험일 수도 있다. 처음과 두번째 사이에 마음 속에 새겨진 여러가지 잔상
들이 쌓여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증폭되는 것이다. 음악이 거기에 배경으로 크게 작용한다.

 여행은 축제이며 나는 언제나 여행할 때 그 여행에 걸맞는 음악을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번 러시아 여행의
노래는 <베니스의 카니발>을 번안한 <파가니니의 추억>이 되었다. 가령 화사한 색상으로 단장된 트베르스카야 거리 한 모통
이에 앉아 음료를 즐기며 명상에 잠겨있는 여행자의 모습 같은 것은 이 피아노 변주곡의 선율과도 잘 어울린다. 그러나 이것
은 실현되지 않은, 다만 꿈으로 끝나버린 여행의 추모곡 비슷한 경우가 되고 말았다. 나는 이 짧은 소품을 듣고 또 듣는다.
최근 한달 사이에 아마 서른번, 마흔번도 더 들은 것 같다. 이제 곡 전체를 다 외울 지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