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기사가 나와서 하나 올립니다.


기사의 내용은 고대 파피루스 문서가 '고대의 것이 맞지만' '예수 결혼 사실 증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마의 예상 표절일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봅니다.



제가 이 글에서 제기하는 논점은 기록의 후대에의 전승 가능성입니다. 예로, 일제 시대의 단군에 대한 기록 말살입니다. 한 민족학자는 기록말살 건수가 5천여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하나의 미확인된 사실과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는 판단 두가지가 섞여 있죠. 



첫번째는 '5천여점'이라는 건수입니다. 과연 5천점이 될까요? 조선은 문자를 지배층이 독점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기록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필기도구와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니 말입니다. 그러면 5천여점..... 과연 단군이 실재하여 기록들이 계속 후대에 물려지는 과정에서 최소한 일년에 한건은 단군에 대한 기록-짧던 길던-이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과연 그게 가능하겠느냐 말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일에 대한 판단을 할 때 '현재의 시점'에서 판단을 하는 참 우스운 경우를 봅니다. 그 중 극명한 비야냥은 바로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으니 참 나쁜 왕이다'라는 류의 비야냥이죠.



두번째는 단군의 기록들이 사실이던 사실이 아니던 일제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없어졌을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왜 말살을 시켰는지는 이해하실 것으로 믿는데 이런 주장을 하면 '택도 없이' '그럼, 한그루 당신은 환빠냐?'라는 식의 저열한 질문이 되돌아 온다는 것이죠.



두번째의 개연성에서 제가 주장하는 것은 '개연성이 있다, 그리고 나도 모른다, 속단할 수는 없다'입니다.




이 두가지를 가지고 예수에 대한 기록들을 대입해 봅시다. 이단논쟁에서 패배한 패배자들의 기록들이 남아있을까요? 당연히 승자 진영에서 '조직적'으로 없앴을 개연성이 큽니다. 



제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현재 기독교의 교리가 엉터리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majority가 반드시 진리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재미로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부인 언급 파피루스, 고대문서 맞다"


[한겨레]컬럼비아·하버드대 등 분석



"예수 결혼 사실 증명은 아냐"


지난 2012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신학대학 연구진이 발견해 공개한 '예수의 부인'이 언급된 파피루스 조각이 고대에 작성된 문서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뉴욕 타임스>는 10일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의 전기공학·화학·생물학 전공 교수들이 분석작업을 벌인 결과, 문제의 파피루스 조각은 4~8세기 무렵 작성된 파피루스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제임스 야들리 컬럼비아대 교수(전기공학)는 "문서에 사용된 잉크의 화학적 구성을 마이크로-라만 분광기를 이용해 분석한 뒤, 기원전 400년부터 기원후 700~800년 사이에 작성된 35~40건의 문서와 비교했더니 정확히 일치했다"고 말했다.



가로 약 8㎝, 세로 약 4㎝ 크기로 '예수의 부인 복음'으로 알려진 이 파피루스 조각에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부인…'"이란 구절이 적혀 있다. 또 "그녀는 사도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대목도 등장한다. 예수가 결혼을 했고, 여성도 사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최초 공개 당시부터 '위조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뉴욕 타임스>는 "파피루스 분석 결과가 곧바로 예수가 결혼을 했다거나, 여성을 제자도 받아들였다는 점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 다만 고대에 작성된 파피루스의 조각으로, 위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라고 짚었다. 앞서 2012년 9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파피루스 조각을 처음 공개한 캐런 킹 하버드대 교수(신학)도 "이 문서는 예수가 결혼했다는 증거로 볼 게 아니라 초기 기독교인들이 금욕과 성, 결혼과 제자의 본분 등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했다는 방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학자들은 '예수의 신부'란 표현을 '교회'로 해석한다.


반면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역사적 예수'에 관해 연구한 바 있는 김달수 전 강남대 교수는 "이 문서가 쓰인 6~9세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데 기혼자보다는 동정남·동정녀가 더 낫다는 쪽으로 기울 때다. 그런데도 '나의 아내'라는 표현이 있다는 점에서 예수의 결혼 가능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문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조현 종교전문기자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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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