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들이 연구한 현존 사냥-채집 사회는 모두 일부다처제다. 나는 예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고릴라의 짝짓기 체제에 비하면 사냥-채집 사회의 결혼 체제는 일부일처제에 상당히 가깝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에 적어도 수십만 년 동안은 우리의 조상들이 일부일처제에 상당히 가까운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살았던 것 같다.

 

침팬지와는 달리 인간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며 여자도 질투를 한다. 이것은 인간 결혼(결혼 개념을 갈매기의 결혼까지 포함하도록 정의한다면)의 역사가 1만 년이 아니라 적어도 수십만 년은 되었음을 암시한다. 아마 수백만 년 전부터 인간은 결혼을 했을 것 같다.

 

고릴라와는 달리 인간 남녀의 몸집 차이는 별로 크지 않다. 이것은 고릴라의 짝짓기 체제보다 인간이 짝짓기 체제가 일부일처제에 가까웠음을 암시한다. 극단적인 일처다부제일 경우 암수의 몸집 차이가 매우 크며 일부일처제에 가까울수록 암수의 몸집 차이가 작다. 극단적인 일부일처제인 종의 경우 암수의 몸집이 거의 비슷하다.

 

 

 

관습적 일부일처제 또는 법적 일부일처제에서는 동시에 한 명 이상의 배우자가 있으면 안 된다. 재혼이 허용되더라도 그것은 이혼을 하거나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일부일처제에 상당히 가까운 일부다처제였다가 농경이 시작되면서 어떤 문화권에서는 불평등이 극단에 달했다. 불평등은 경제적이며 정치적이기도 했지만 짝짓기의 영역에서도 나타났다. 예컨대 고대 로마 시대에 황제와 귀족들은 엄청난 재산과 함께 엄청난 수의 여자들을 거느렸다. 물론 대체로 남녀의 비율이 50:50이기 때문에 누군가 여자들을 독점하면 다른 누군가는 아내 없이 살아야 했다. 당시에 특히 남자 노예들은 결혼이나 성교를 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인간 사회가 불평등해지면서 사냥-채집 사회에 비해 일부다처제적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다가 많은 문화권에서 일부일처제가 정착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일부일처제인 사회에서도 몰래 두 집 살림을 차리는 남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법이었다.

 

최근에는 이혼률이 높아지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일부다처제적 경향이 커졌다. 지위가 높은 남자들이 나이 든 아내와 이혼한 후 젊은 여자와 재혼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그러면서 지위가 낮은 남자들이 결혼할 만한 여자가 줄어들었다. 최근에 지위가 낮은 한국 남자들이 가난한 나라 출신인 외국인 여자와 결혼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이혼률의 증가에 따른 일부다처제적 경향의 증가가 그 원인 중 하나인 것 같다(한 때 한국에서 여아를 주로 낙태하는 일이 많았던 것도 그 원인일 것이다).

 

 

 

관습적 일부일처제 또는 법적 일부일처제가 정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분적으로는 보편적 인간 본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만약 농경이 시작되기 전의 사냥-채집 사회가 고릴라식 일부다처제였거나 침팬지식 난교 체제였다면 인간의 본성도 그런 체제에 부합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일부일처제가 정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인간은 침팬지와 갈라진 이후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하면서 일부일처제에 상당히 가까운 일부다처 사회를 이루면서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녀간에 사랑을 하도록 진화했으며 여자도 질투를 하도록 진화했다. 인간 본성의 이런 측면들이 일부일처제의 정착에 부분적으로 기여했을 것이다.

 

 

 

이런 답변은 잘 봐줘도 부분적인 답변일 뿐이다. 지난 1만 년 동안 인간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짝짓기 체제는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상당히 평등했던 사냥-채집 사회는 일부일처제에 상당히 가까운 일부다처제였다. 그러다가 여러 문화권에서 노예제와 같은 극단적인 경제적, 정치적 불평등이 나타났고 그것은 일부다처제적 경향의 강화로 이어졌다.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독점한 남자들이 여자들도 독점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사냥-채집 사회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불평등하다. 대자본가와 가난한 노동자 사이의 재산 차이는 고대 로마의 귀족과 노예 사이의 재산 차이에 맞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일부다처를 법으로 금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사냥-채집 사회보다 훨씬 불평등한데 짝짓기 체제는 사냥-채집 사회보다 더 평등한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누가 왜 일부일처제를 주창하고 지지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들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었을까?

 

논의의 편의상 지위가 높은 남자, 지위가 낮은 남자, 인기 있는 여자(젊고 예쁜 여자), 인기 없는 여자로 나누어 보자. 그리고 일부일처제가 누구에게 유리한지 따져보자.

 

지위가 높은 남자에게는 일부다처제가 유리하다. 왜냐하면 재산이 많거나 권력을 누리는 남자가 합법적으로 많은 여자를 아내 또는 첩으로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위가 낮은 남자에게는 일부일처제가 유리하다. 왜냐하면 일부다처제에서는 지위가 낮은 남자들과 결혼할만한 여자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여자에게는 일부일처제가 유리하다. 인기 있는 여자는 보통 지위가 높은 남자와 결혼한다. 일부일처제 하에서는 인기 있는 여자가 지위가 높은 남자를 남편으로 독점할 수 있다. 반면 일부다처제 하에서는 인기 있는 여자가 지위가 높은 남자와 결혼을 한 이후에 남편이 또 다른 부인을 얻을 수 있다.

 

인기 없는 여자에게는 일부다처제가 유리한 것 같다. 일부일처제에서는 인기 없는 여자는 보통 지위가 낮은 남자와 결혼할 수밖에 없다. 반면 일부다처제에서 인기 없는 여자는 지위가 낮은 남자를 독점하는 것과 지위가 높은 남자의 두번째 부인(또는 세번째 부인)이 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선택권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

 

 

 

지위가 낮은 남자들이 일부일처제를 위해 싸운 것일까? 인기 있는 여자들이 일부일처제를 위해 싸운 것일까? 지위가 낮은 남자들과 인기 있는 여자들이 일부일처제라는 대의를 위해 동맹을 맺은 것일까?

 

지위가 높은 남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일부다처제를 방어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순순히 여러 명의 아내를 합법적으로 취할 권리를 포기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일부일처제의 정착과 관련된 역사를 깊이 다룬 글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실제로 일부일처제의 정착과 관련하여 어떤 이데올로기 논쟁이 있었고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이덕하

2011-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