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보통 체외 수정을 한다. 암컷이 낳은 알에 수컷이 정자를 뿌리는 식이다. 이미 암컷의 몸 밖에 있는 알을 암컷이 생리적으로 통제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수컷이 몰래 와서 정자를 뿌리려고 할 때 정자를 뿌리기 전에 막지 못한다면 그 다음은 속수무책이다.

 

반면 조류와 포유류는 체내 수정을 한다. 수정이 암컷의 몸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수컷이 몰래 또는 강제로 암컷의 몸 속에 정자를 주입했다고 하더라도 그 정자가 자신의 난자와 만나서 수정이 되는 것을 생리적으로 막는 것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강간을 당했을 때 길을 막아서 정자가 난자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있고, 정자를 죽이는 방법도 있고, 수정란을 낙태시키는 방법도 있다. 수정란을 낙태시키면 다시 배란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이 더 경제적인 것 같다.

 

여왕 개미는 일단 교미를 해서 엄청난 양의 정자들을 몸 안에 저장한 이후로는 다시는 교미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저장된 정자들을 조금씩 꺼내서 자신의 난자와 만나게 한다. 이런 식으로 암컷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정자를 생리적으로 잘 통제하도록 진화한 종이 매우 많다. 개미를 포함한 온갖 곤충들이 그런 식으로 진화할 수 있다면 조류나 포유류가 그런 능력을 진화시키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만약 암컷이 그런 능력을 진화시킨다면 수컷은 강간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임신도 못 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암컷에게는 매우 유리하다. 왜냐하면 강간으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수컷의 유전자 즉 대체로 나쁜 유전자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꽤 많은 종의 암컷들이 강간을 당하면서 산다. 왜 강간을 당하는 종의 암컷들은 정자-죽이기나 정자의--막기와 같은 확실한 강간 방어 기제를 진화시키지 못한 것일까? 나는 이것이 매우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읽은 어떤 글에서도 이 질문에 대한 그럴 듯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어쩌면 똥파리(dung fly)의 경우에는 암컷이 “일부러강간을 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 속의 아탈란타(Atalanta)는 독특한 방법으로 남편을 고른다. 아탈란타는 달리기 시합을 해서 자신을 이기면 결혼을 해 주겠다고 공언한다. 아탈란타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달리기를 무척 잘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이런 식으로 고르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어떤 측면에서는 일리가 있다. 달리기를 잘하는 남자라면 그만큼 건강하고 체력이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몸이 부실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보다는 건강하고 체력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번식에 유리할 것이다.

 

똥 파리의 경우 암컷이 의도적으로강간을 당한다는 가설이 있다. 아탈란타가 달리기 시합에서 자신을 이기는 사람을 고르려고 했듯이 똥파리 암컷은 강간을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자신을 이기는 수컷을 고른다는 것이다. 자신을 힘으로 또는 기술로 또는 끈기로 누르고 강간에 성공한 수컷이라면 그렇지 못한 수컷에 비해 더 좋은 유전자(good gene) 즉 번식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똥 파리 암컷은 항상 수컷과의 성교를 거부한다. 결국 수컷은 암컷을 강간할 수밖에 없으며 강간에 성공한 수컷이 수정에 성공하는 것이다. 나는 똥 파리 전문가가 아니며 이 가설이 얼마나 입증/반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이 살고 있으며 정말 희한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종도 많다. 따라서 똥 파리 암컷이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

 

 

 

온갖 예민한 감각이 있고 지능이 뛰어난 인간은 누가 우월한 남자이고 누가 열등한 남자인지를 알아볼 만한 방법이 “강간하는 능력 측정”이라는 희한한 방법 말고도 아주 많다. 인간보다는 여러 면에서 그리 똑똑하지는 않지만 오랑우탄 암컷에게도 우월한 수컷을 알아보는 온갖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랑우탄과 인간 암컷이 정자-죽이기 또는 정자의--막기와 같은 확실한 강간 방어 기제를 진화시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종에서는 강간이라는 현상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강간이 일어나지 않는 종의 수컷들이 마냥 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도 음식을 빼앗아 먹는 등 온갖 방면으로 남을 착취하기도 한다. 다만 강간은 하지 않는다. 내 추측으로는 체내 수정을 하는 암컷이 확실한 강간 방어 기제를 진화시켰기 때문인 것 같다.

 

이미 정자가 자신의 몸에 들어왔을 때에도 정자-죽이기나 정자의--막기와 같은 방법이 있으며 아예 자신이 원하지 않을 때에는 생식기를 닫아 버림으로써 성교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많은 종에서 생식기-닫기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 같다.

 

만약 대다수 종의 암컷들이 확실한 강간 방어 기제를 진화시켰다면 왜 오랑우탄, 인간, 청둥 오리 같은 종들은 그것을 진화시키지 못했을까?

 

 

 

이덕하

2011-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