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호랑이님의 글에 덧글로 쓰려 했는데, 글이 길어져서 별도로 올립니다.


빨강호랑이님이 덕담을 많이 해주셨으니, 저는 쓴소리를 좀 하겠습니다.

1.
서울시장 경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손 놓고 있었던 민주당 지도부의 무능함과 안일함은 대단히 실망스러웠다는 점을 다시 한번 지적해야겠습니다. 후보들의 자질은 훌륭함에도 선거의 준비부족, 특히 정책 관련 준비부족이 눈에 띄게 드러났습니다.

안철수 태풍이 불었음에도 이렇게 안일할 수 있다는 점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군요. 지난 김해을 선거 후에, 민주당은 내년 총선 준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만... 정말 한심할 따름입니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에도, 각 후보에게만 선거준비를 맡겨둘 게 아니라, 중앙당 차원에서 서울시정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집을 만들어 놓았어야 하고, 서울시 전체의 현안들과 각 지역현안들을 정리해 놓았어야 하고, 오세훈 시장의 시정 문제점들과 민주당의 대안들을 마련해 두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료를 모든 후보에게 전달해야 했고, 후보들을 모아놓고 설명회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지난 번 합동연설회에서 신계륜이 한 말을 들어보니, 합동토론회 전날 정책공약집을 만들라 하고 홍보 영상을 만들라 했다더군요. 대체 이게 제대로 된 정당인지 구멍가게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일을 이따위로 합니까.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정당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겁니까. 민주당 정치인들은 민주당을 살리고 부흥시키겠다는 의지는 있는 것입니까? 어찌된 일인지 다들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 같습니다. 대체 뭐하자는 짓입니까. 이래가지고, 이런 정신상태로 내년 총선과 대선은 제대로 치뤄볼 수나 있겠습니까. 어떻게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겠습니까.

2.
빨강호랑이님이 천정배를 칭찬하신 이유... 저는 그 이유들을 정반대로 보았습니다. 그건 천정배의 장점이 아니라 단점입니다. 서울시장 선거는 운동권 인사를 뽑는 선거가 아닙니다. "이명박 정권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이명박, 오세훈 시정을 철저히 감사하여 처벌하겠다"는 등의 과격한 발언은 일부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호응을 얻을지 몰라도 대다수 서울시민들에게는 반감과 우려만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뭐랄까요, 천정배는 시대가 한참 변했는데도 아직도 80년대 마인드로 살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시대가 변했습니다. 그런 시대가 아니에요. 천정배는 오히려 민주당의 이미지를 버려놓은 것 같습니다. 민주당에 대해 갖고 있던 중도층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 강화시킨 것 같다는 말입니다.

인권 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세부공약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메인으로 내세울 수 있는 공약은 아닙니다. 서울시민들의 관심 밖에 있는 주제라는 겁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천정배는 좀 구시대 인물 같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정당인으로는 훌륭한 역할을 계속 해나갈 수 있겠지만, 서울시장이나 대통령 후보가 되기에는 시대에 뒤처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천정배가 직접 지시한 것인지, 아니면 캠프 관계자가 한 것인지는 몰라도, 홍보 문구에 노무현의 이름을 넣으려고 애썼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것도 역시 한심한 일입니다. 지금 나이가 몇인데, 그리고 그 정도 연륜과 경력이라면 이젠 당당히 홀로 서려고 해야지, 노무현의 이름에 기대려고 해요? 그러면 노유빠들이 천정배를 지지해 줄까요?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3.
박영선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습니다. 지난 번 합동연설회에서도 앵커로서의 발성이나 화법 등을 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이번 토론회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만만찮은 내공과 화법, 표정으로 안정감을 주면서 차분히 말을 이어간 추미애와 상당히 비교가 되었습니다. 안정감을 주지 못했고 조금 불안해 보였습니다. 지난 번 서울시장 토론회 때의 한명숙보다도 안정감이 약해 보였는데, 박영선은 이런 점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듯 싶습니다. 이대로 나경원과 토론에서 맞붙는다면 이미지 면에서 밀릴 것 같습니다.   

'엄마 서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일견 괜찮아 보일 수 있지만, 이건 지난 대선 때 정동영 캐치프레이즈와 판박이입니다. 정동영의 캐치프레이즈와 공약이 그랬습니다. 아주 괜찮아 보이고 좋은 말들이지만, 사람들을 확 끌어당기거나 주목하게 만들거나 설렘을 주는 요소는 없었습니다. 확 기억에 남는 캐치프레이즈와 공약이 필요합니다.

"좋은 공약"이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안이한 것이고 무지한 것입니다. 그런 마인드로 장사를 하면 필패입니다. 선거는 장사와 비슷하고 광고와도 비슷합니다. 고만고만한, 좋은, 그럴 듯한 캐치프레이즈 정도로는 어렵습니다. 스티브 잡스에게 배우고 광고의 기술을 배워 보세요. 그런 면에서 (토건 쪽에 치우치긴 했지만)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이명박과 오세훈, 대선에서의 이명박은 민주당에 비해 뭔가를 더 잘 아는 겁니다.

전라도의 밥상은 주로 확실한 메인 디쉬로 승부하기보다는 맛있는 반찬이 많은 밥상입니다. 반대로, 확실한 메인 디쉬가 있고 몇 가지 반찬이 곁들여지는 밥상이 있습니다. 선거는 전라도식 밥상으로는 안 됩니다. 후자의 밥상이어야 합니다. 먹어보면 맛있는 반찬들을 차릴 것이 아니라, 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고 설레게 하는 그런 "메인 디쉬"가 필요합니다. 희망을 품게 하고, 기대되게 하고, 상상해보게 하고, 꿈까지 꾸게 할 수 있는 그런 매력적인 캐치프레이즈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좀 과장되어도 괜찮습니다. 거짓말만 아니면 됩니다. "필요한 것"만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걸로는 부족해요. 선거를 잘 치르려면 유능한 광고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4.
신계륜도 마찬가지입니다. 막판에 공약을 많이 개발했고 준비했다면서 몇 개를 읽었는데, 그런 건 아무 쓸모 없습니다. 확실한 메인 디쉬, 그걸 제시하기 바랍니다.

추미애는 서울시정에 대해 아직 파악이 덜 되어 있고 정책 개발도 덜 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캠프를 꾸릴 형편도 안 되고 주위에서 돕는 인사들도 없나 보던데, 안타깝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점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네 명 중에 가장 좋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잘했고, 가장 안정적이었고, 가장 따뜻했고,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부드러움과 강함이 가장 잘 조화로웠던 후보였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지만, 확실한 메인 디쉬를 개발하고, 시정 연구와 정책 개발에 박차를 가해주길 바랍니다.

쓴소리를 많이 하긴 했지만, 네 후보 모두 훌륭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남은 기간 열심히 준비하여 꼭 서울시장이 되길 바랍니다. 민주당에서 10년 가까이 서울시장을 배출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서울시장, 경기지사를 다 되찾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민주당은 네 후보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중앙당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돕기 바랍니다. 제발 안이하고 무능한 태도는 버리고 반드시 승리해야겠다는 각오로 총력을 다해 분발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