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상식
 

사랑, 질투, 결혼, 가족 문제를 다룬 이론들을 특별히 배우지 않은 대중에게 통하는 상식이 있다. 그 상식에 따르면 사람은 원래 사춘기가 되면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거나 성교를 하게 되면 질투를 하게 마련이다. 결혼은 원래 인간이 태고 적부터 해왔던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을 몹시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사람은 원래 의붓자식을 별로 사랑하지 않고 구박한다.

 

대중은 위에서 나열한 것들에 대해 “사람은 원래 그렇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학자들이 쓰는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타고난 인간 본성”이다. 개가 멍멍하고 고양이가 야옹야옹하는 것이 그들의 본성이듯이 사랑하고, 질투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문화 결정론자들의 상식
 

문화 결정론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대중의 상식을 경멸한다. 그것은 그 시대의 편견에 노출된 무식한 대중의 상식일 뿐이지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천동설과 왕정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도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지구다. 그리고 태고 적부터 지속되었다고 여겨졌던 왕정은 사실 몇 천 년 밖에 안 되었으며 많은 나라에서 붕괴했다. 천동설과 왕정에 대한 상식처럼 사랑, 질투, 결혼, 가족에 대한 대중의 상식은 어떤 시대의 편견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 문화 결정론자들의 생각이다.

 

문화 결정론자들도 여러 유파가 있어서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 여기에서 그것들을 모두 다룰 수도 없으며 내가 온갖 유파에 대해 상세히 아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는 몇 가지 인기 있는 명제에 대해서만 다루도록 하겠다.

 

첫째, 문화 결정론자들에 따르면 결혼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은 문명의 산물이다. 원시 시대에 사람들은 침팬지처럼 난교를 했다. 그러다가 사유 재산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소유라는 개념이 생겼고 남자가 여자를 소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그것이 일부다처제든 일부일처제든 결혼은 남자가 여자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둘째, 문화 결정론자들에 따르면 자식 사랑이라는 것도 최근의 발명품이다. 물론 의붓자식보다 친자식을 더 사랑하는 이유도 친자식 사랑 이데올로기가 퍼진 결과다. 원래 원시 시대에는 자신의 유전적 자식인지 여부와 상관 없이 같은 부족의 어린이라면 똑 같은 애정으로 돌봤다. 사유 재산과 함께 출현한 소유욕이 자식을 소유하는 것과 가족 이기주의로 이어진 것이다.

 

셋째, 문화 결정론자들에 따르면 질투도 최근에 생긴 것이다. 사유 재산과 함께 출현한 결혼 제도 때문에 질투가 생겼다. 인간은 질투 없는 사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유 재산 제도, 결혼 제도 등이 소유를 부추기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려고 하는 습성이 생겼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이나 성교를 나눌 때 화가 나게 된 것이다.

 

넷째, 문화 결정론자들에 따르면 낭만적 사랑은 근대 서양에서 몇 백 년 전에 생겼다. 그 이전에는 결혼 제도가 있긴 했지만 사랑과는 별로 상관 없었다. 부모가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위해 정략 결혼으로 짝을 맺어 주기도 했다. 그렇게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재산, 지위와 같은 문제가 중요했지 당사자의 사랑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연인간의 사랑이라는 것도 그 이전에는 없었다.

 

 

 

 

 

진화 심리학자들의 반론 – 질투
 

진화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대중의 상식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복권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 질투, 결혼, 가족에 대한 온갖 이론들이 탄생하기 전에 대중이 믿었던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들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대중의 믿음이 몽땅 옳다고 보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대중의 지혜에 일리가 있는 측면이 많다는 쪽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우선 질투 문제부터 살펴보자.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애인이나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거나 성교를 할 때 또는 친밀하게 무언가를 같이 할 때 질투를 느낀다. 이것은 과연 문명의 산물일까? 그렇지 않음을 시사하는 온갖 증거들이 있다.

 

첫째, 현존하는 사냥-채집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질투를 한다. 만약 질투가 문명의 산물이라면 문명으로부터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왔던 오지의 사냥-채집 사회 사람들이 질투를 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둘째, 온갖 동물들이 질투를 한다. 침팬지를 비롯한 온갖 종의 수컷이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수컷이 어떤 암컷과 성교를 하는 것을 목격하면 가만 두지 않는다. 많은 조류의 경우 인간의 결혼과 비슷하게 짝을 이루고 사는데 암컷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목격한 수컷은 가만 있지 않는다.

 

침팬지와 인간의 공동 조상의 경우에도 질투가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리 큰 논리 비약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문화 결정론자들은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이 질투를 더 이상 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가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문명이 생기면서 다시 질투가 되살아난 것이다. 질투 메커니즘이 퇴화했다가 우연히도 비슷한 형태로 문명 때문에 살아났다는 설명은 상당히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냥 계속 질투 메커니즘이 비슷하게 유지되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그럴 듯하다.

 

셋째, 인간의 질투는 이기적 유전자의 이해 관계에 잘 부합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남자는 상대적으로 배우자가 남과 성교를 했을 때 더 질투하고, 여자는 상대적으로 배우자가 남과 사랑에 빠졌을 때 질투를 한다. 이것은 아내가 남과 성교를 했을 때 남편이 다른 남자의 유전적 자식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적응적인 반응이다. 남편이 아무리 다른 여자와 자도 아내는 자신의 뱃속에서 태어난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임을 “확신”할 수 있다.

 

질투에 불타고 있는 남편이 아내에 대한 성욕에 불타서 성교를 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보통 화가 나면 성교를 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행동은 상당히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정자 경쟁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질투하는 남자가 성욕이 불타는 행태는 상당히 적응적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만약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면 한시라도 빨리 성교를 해서 자신의 정자로 임신시킬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적응적이다.

 

이 이외에도 질투가 적응임을 암시하는 증거가 상당히 많다. 자세한 것은 『욕망의 진화』를 참조하라.

 

 

 

 

 

진화 심리학자들의 반론 – 자식 사랑
 

온갖 동물들이 자식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점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물론 아무 자식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식을 사랑한다. 남의 자식이 젖을 먹으려고 달려들 때 매정하게 몰아내는 암컷을 보여주는 장면을 담은 동물 다큐멘터리를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인간의 먼 조상들도 자신의 자식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 결정론자들은 자식 사랑 메커니즘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인간 진화 과정에서 퇴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 생물학적 상식에 비추어 볼 때 거의 가망성이 없는 명제다. 남의 자식이 아니라 자신의 자식을 돌보는 경향은 매우 적응적이다. 그런 적응적인 행태가 퇴화했다면 매우 특수한 요인이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특수한 요인이 작동했을지 나는 도저히 상상도 못하겠다.

 

문화 결정론자들에 따르면 퇴화했던 자식 사랑 메커니즘과 매우 닮은 자식 사랑이 사유 재산의 출현과 함께 뿅 하고 생겼다. 그냥 계속 있어왔다고 보는 것이 더 그럴 듯하다.

 

그리고 사유 재산의 출현 때문에 소유욕이 생겼고 그 때문에 자신의 자식만 유독 사랑하게 되었다는 설명은 그 자체로도 납득하기 힘들다. 예컨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식의 설명은 순환 논법이다. 만약 자신의 자식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초기 상태였다면 죽으면서 재산을 그냥 날려버려도 아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의 반론 – 사랑과 결혼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 결혼의 역사가 수백만 년 전부터, 적어도 수십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암수가 짝을 이루어서, 성적으로 어느 정도 서로를 독점하고, 자식을 공동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결혼을 온갖 종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조류에서 많이 발견된다.

 

문화 결정론자들은 연인 간의 사랑 또는 낭만적 사랑이 몇 백 년 전에 서양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사랑은 온갖 문화권에서 그 보다 훨씬 이전 시대부터 기록되었다. 예컨대, 사랑과 질투에 대한 이야기를 빼면 그리스 신화는 상당히 빈약해질 것이다. 또한 현존하는 사냥-채집 사회에서도 사랑과 결혼이 있다.

 

인간의 고환의 크기도 결혼이 오래 전에 진화했을 것임은 암시한다. 만약 인간이 원시 시대에 난교를 했다면 침팬지처럼 고환이 매우 컸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자 경쟁이 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환은 침팬지보다 훨씬 작으며 이것은 인간이 결혼을 해서 정자 경쟁이 상당히 약화되었음을 암시한다.

 


2009-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