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5%도 안되던 '듣보잡' 수준의 박원순이 현재 서울시장 보궐선거 잠재후보 중 지지율 1위로 올라선 결정적인 계기가 뭔가요?

바로 안철수와의 단일화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박원순은 부동의 1위 후보로 올라서죠.

그렇다면 안철수가 박원순 후보를 인증해준 셈이죠. 게다가 단일화 직후 박경철이던가가 "(박원순 변호사가) 그렇게 서울 시정에 대해 좋은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있는줄 몰랐다" 등등 엄청나게 치켜세워주더군요. 안철수 역시 선거운도이 시작되면 박원순 캠프를 지원할 의사를 비치기도 했습니다.

이건 내용상으로나 형식상으로나 안철수가 박원순의 후보 자질을 인증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김어준 요색휘는(미안합니다만 이 자식 얘기 할 때는 도저히 욕을 빼놓을 수가 없네요) 이번 안철수-박원순의 단일화 합의를 "기존의 틀을 깨는, 2012년 대선과 총선에서 적용돼야 할 최고의 단일화 모델"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더군요. 이런 식으로 민주당이 (양보)하지 않으면 "한방에 훅 간다" 어쩌구 하는 개소리 짖어대면서요.

자, 안철수-박원순 단일화의 핵심이 뭘까요? 간단히 말해 (공식/비공식, 정당/언론 등 모든 차원의) 검증 생략, 밀실 타협(실제론 야합이죠), 이미지 정치 등입니다.

그런데 김어준의 말을 빌리자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이런 식의 단일화 룰이 적용돼야 한다는 겁니다. 모든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의 검증 따위는 생략하고, 알아서(서로의 눈짓만으로도 통하는), 최대한 짧은 시간과 절차를 통해(딱 5분 만나서 대화해보는 식으로), 이미지 좋은(상업방송이 주로 만들어준) 후보에게 밀어주자는 거죠.

이런 식의 단일화나 후보 지지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선 후보의 자질에 대해서 제대로 검증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런 후보는 경선 과정 또는 선거 과정에서 상대방의 공격에 의해 약점이 노출되면서 이쪽 진영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가령 박원순이 이런 식으로 민주당 후보의 양보까지 얻어낸다면 이건 한나라당이 가장 기뻐할 결과라고 봐야죠. 그나마 경선이나 선거 과정에서 이런저런 검증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서울시민 등 유권자 전체가 피해를 보는 결과가 되니까요.

정말 심각한 문제는 저런 식의 단일화를 만들어낸 또다른 당사자 즉 이번 안철수-박원순 단일화 합의의 또 다른 당사자인 안철수 역시 어떤 검증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애초에 무슨 절차나 원칙도 없이 그냥 만나서 5분 얘기하고 "이 분이 좋은 분 같아요"이렇게 양보했는데, 나중에 박원순이 완전 무자격자로 드러나도 어떻게 안철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니가 박원순 좋은 사람이라고 했잖아?" 이렇게 따질 겁니까?

어떤 일에 원칙과 절차가 없으면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원칙과 절차가 중요한 겁니다. 안철수-박원순 단일화 뿐만 아니라 안철수 현상 정치 자체가 바로 우리나라 정치에서 이러한 원칙과 절차의 실종을 상징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 굉장히 무책임한 정치가 시작되고 있고, 앞으로 점점 더 확대될 조짐이 보입니다. 안철수는 그러한 현상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을 끝으로 군부독재가 끝났지만 민주화와 함께 군부독재 시절 단순한 보조역할에 머무르던 테크노크라트(조중동 언론, 검찰, 전문가 집단 등)가 군부독재의 위상을 대신하는 느낌입니다. 이들의 권력은 특징이 있습니다. 비판과 권력은 마음껏 휘두르면서도 전혀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군발이 정권도 자신들의 정책 실패나 심각한 부조리에 대해서는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책임을 졌던 것과 다릅니다. 이번 안철수 현상은 그러한'무책임 정치'의 연장선에 있다고 봅니다.

안철수가 PK 출신이란 것 때문에 제가 안철수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학을 떼시는 것 같습니다. 그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 발언에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근거가 있습니다. PK 출신은 결코, never, 기존 영남패권과의 연결, 인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영남패권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좀더 유연하고 젊고 첨단화된 이미지를 활용하는 데 PK 출신이야말로 최적의 후보입니다. 안철수는 그 완벽한 샘플이죠.

이걸 음모론으로 받아들이시면 곤란합니다. 음모가 있다 해도 그 비중은 1% 미만일 겁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영남패권은 음모 따위에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걸 갖고 있는데 왜 음모 따위를 동원합니까?

박원순 얘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데, 제가 보기에도 박원순은 문제가 많군요.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박원순을 여기까지 끌어올린 그 커다란 힘, 배경이라고 봅니다. 거기에는 안철수가 있고 보다 근본적으로 '안철수 현상'이 있습니다. 새로운 트렌드죠.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하면 이걸 잘 활용하면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훌륭한 재능이죠. 하지만 그건 장사꾼의 재능입니다. 정치를, 정치 비판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죠.

이 모든 현상의 근원과 타겟은 딱 하나입니다. 민주당 약화, 호남의 상징자본 훼손 및 등기이전... 노무현의 목표와 딱 일치합니다. 이거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