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술을 가지고 밥을 빌어먹고 사는 소셜미디어PR업에 종사하고 있는 입장에서 박원순의 한강르네상스 발언을 계기로 정치인의 어법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일반인의 어법과 다른 걸로 흔히 알려져 있는 게 외교관의 어법인데, 정치인의 어법도 일반인과 많이 다르다. 외교관의 어법은 정치인의 어법은 서로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완전히 다르다.

외교관의 어법은 상대의 질문에 딸려가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 국가의 명분에 이용되지 않는 말을 해야한다. 따라서 어법이 애매할 수 밖에 없다. 외교관의 어법의 전형이 '미끄러운 뱀장어'라는 별명을 가진 반기문 UN총장의 어법이다. 정치인의 어법은 상대가 질문을 하도록 만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과 지지자들의 명분을 천하에 명확히 밝히며 말해야한다. 따라서 정치인의 어법은 분명하긴 하지만 원론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훌륭한 정치인은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다. 

외교관의 어법이나 정치인의 어법에 비해 일반인의 어법, 즉 구체적인 자연인 개개인 사이에서의 어법은 어법 자체로만 따지자면 외교관이나 정치인의 어법보다 훨씬 어렵다. 외교관이나 정치인의 어법은 대화가 어떤 국가, 어떤 집단의 총의(總意), 즉 하나로 모아진 관념적인 집단의 의사를 상정하고 그 총의에 대응하여 대화하기 때문에 어법이 단순하다. 그러나 일반인의 어법은 대화의 상대인 구체적인 자연인들이 모두 저마다의 개성, 이해도, 욕망, 상황 등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게 가변적이고 다양하게 적응해야 한다.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일반인의 어법이 외교관의 어법이나 정치인의 어법보다 어렵다고 해도 일반인이 외교관의 어법이나 정치인의 어법을 행사하는 것은 어법 이상의 문제 때문에 행사하기가 어렵다. 외교관처럼 애매하게 말하면서도 자기가 속한 기구나 국가의 입장과 명분을 항상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보통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정치인의 어법도 마찬가지.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모리배 정치인의 경우라면 뻔뻔한 얼굴을 가지기도 어렵고, 훌륭한 정치인들처럼 원론적인 이야기 속에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는 건 보통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들다. 

어법만으로 따지자면 아마도 재야 운동가나 시민사회단체의 어법이 가장 쉬울 것이다. 이들은 말실수를 할 여지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래서 재야운동권 시민사회단체 출신들이 정치를 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정치인의 어법이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투르게 정치인의 어법을 흉내내다가 애매하게 말하여 그 진의를 추궁당하는 수가 있다. 당황하면서 부연하고, 또 번복하다 보면 정치인으로서의 권위는 추락하고 이는 신뢰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어눌하고, 더듬고, 목소리가 탁하고 하는 것은 어법에서 문제가 안된다. 어법에서 중요한 것은 권위와 신뢰. 외교관은 애매하게 말함으로써 권위와 신뢰를 지키고 정치인은 분명하게 말함으로써 권위와 신뢰를 지킨다.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면 침묵해야 한다. 


그런데... 자연인으로서의 어법... 특히나 여자 앞에서 남자의 어법은 너무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
내가 말하는 것,
그대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듣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이해하는 것,
내 생각과 그대의 이해 사이에 이렇게 열 가지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의 의사 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시도를 해야 한다.
* 출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