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선데이에서 시리즈물로 연재하는 '김대중 집권 비화?'이거 재미있네요. 김대중과 그 참모진들이 집권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했는지 민주당이나 야당들, 진보개혁 지식인들이 보고 배웠으면 합니다. 글을 읽다보면 90년대 김대중과 당시 김대중당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세력이었는지, 여야의 힘의 불균형이 얼마나 극심했었는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그런 험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김대중이 가지고 있던 확고한 정치관, 국가관과 같은 비전과 그걸 구체화 할 수 있는 개인의 정책역량과 (보수에 비해 수는 적었지만) 신념있는 정책집단, 참모진, 그리고 김대중과 그 정치세력을 단단하게 지지해주는 유권자 집단이 존재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군요.

오늘 올라온 내용을 보면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당시 후보의 슬로건인 '준비된 대통령'의 탄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참...지금 민주당, 손학규, 문재인, 정동영, 유시민, 민노당, 이정희, 노회찬, 심상정 등 이런 분들이나 저들을 뒷받침 해주는 싱크탱크들의 역량이 과연 97년 야권의 수준에 비하면 어느정도나 될지 의심스러워 집니다.

'준비된 대통령', '경제 대통령'이란 구호를 민주당이 써먹었고 그게 잘 먹혀들어갔다는 역사적 사실이 지금의 민주당과 그 외 야당들의 지리멸렬한 상황때문에 더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얼마 전 손학규가 '저녁있는 삶'이라는 근사한 슬로건을 내놨던데 계속 더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대한민국에서는 10대부터 저녁을 잃어버리죠. 저녁에 가족끼리 집에서 또는 외식까지 하는 그런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집으로 향하고는 있는 그런 정도의 삶이 가능한 사회로 차차 변해가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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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3164&cat_code=01&start_year=2011&start_month=06&end_year=2011&end_month=09&press_no=&page=1
1997년 4월19일, 남산 힐튼호텔에서 뉴욕 타임스 자회사인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와의 인터뷰를 마친 DJ는 서둘러 마포 ‘밤섬 아지트’로 돌아왔다. 제15대 대선 전략을 보고받기 위해서였다. 보고서 명칭은 ‘전당대회를 통한 두 마리 토끼 잡기’. DJ에게 우호적인 교수 55명의 의견을 모으고 그중 11명이 종합해 작성한 것이었다. 해당 교수의 이름은 지금도 공개할 수 없지만 당시 서울대·고려대·서강대·중앙대·연세대·국민대·한림대에 있던 젊은 교수들이었다. 미국 하버드·스탠퍼드·시카고·듀크·텍사스오스틴·버클리대학과 캐나다의 맥길대학 등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는 소장파들이었다.

이날 보고된 내용은 그 후 15대 대선에서 DJ 전략의 핵심을 구성하기 때문에 자세히 소개하겠다.
①5월 19일 치러질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 선출과 총재 경선=승리하는 건 뻔하다. 문제는 어느 정도 차이로 이기느냐다. 큰 표 차이로 이기지 못하면 당장 “DJ에 대한 충성도가 옛날만 못 하다”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호남의 DJ 지지가 절대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자민련의 요구사항도 더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일방적으로 이겨도 문제다. DJ의 사당(私黨)이고 호남당이라는 이미지가 부각된다. 따라서 3대 1 정도로 이기는 게 좋다. 그 정도면 경쟁자들 체면도 서고, DJ의 영향력도 확인된다.

②경선의 성격=DJ의 대권 후보 이미지를 높이는 데 당내 경선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4월 24일 당내 경선 후보 등록과 동시에 사실상의 대선 선거운동에 착수해야 한다. 신한국당 경선은 7월 21일이다. 따라서 최소한 석 달 먼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밤섬팀이 DJ에게 제출한 보고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며 토끼 그림을 그려 놓았다. 장성민 제공
③나이=이번 선거에서 DJ의 가장 큰 단점이다. 그동안은 빨갱이 논란이 문제였는데 올해는 황장엽 망명사건 때 이미 한 차례 예방백신을 맞았다. JP(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단일화도 시간 문제에 불과할 것이다. (당시 동교동의 내부 전략은 대통령 자리만 빼놓고는 자민련이 장관을 몇 석을 요구하든 다 들어준다는 것이었다.) 국민적 관심이 경제에 집중되고 있는데 DJ가 이미 주도권을 잡아 유리한 국면이다. 하지만 74세라는 나이만큼은 어쩔 수 없다.

④건강=건강 문제도 부각될 것이다. 특히 다리가 불편한 모습이 TV에 나오면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다.
이번에 처음 공개하지만 당시 밤섬팀 교수들은 신한국당 후보 가운데서는 이인제 전 경기지사가 DJ에게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라고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젊었다. 이인제 후보가 TV에 나오면 나올수록 DJ의 약점인 나이와 건강 문제가 유권자들의 마음속에 저절로 부각되는 역(逆)의 함수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자민련 JP총재와의 후보 단일화도 효과가 미미할 게 뻔했다. 오히려 노인 둘이 연합해 젊은 후보와 싸우는 듯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노노(老-老) 연합’이란 단어는 어감상 영어의 ‘no-no’를 연상시켰다. 정치선전과 선동의 최종 형태는 결국 슬로건인데 만일 ‘DJP 노노’ 같은 구호가 유권자들 사이에서 퍼져 나간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YS가 “깜짝 놀랄 만한 후보”를 언급하면서 세대 교체와 변혁을 앞세우려고 했던 건 그래야 DJ를 깰 수 있다는 직감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DJ에겐 다행스럽게도 대통령 YS는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었다. 임기 말인 97년, YS는 부패 스캔들과 추락하는 경제 때문에 이미 코너에 몰려 있었다. 당시 YS가 머릿속에 뭘 구상하고 있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그걸 밀어붙일 힘도 의지도 상실한 상태였다.

이날 보고서에서 밤섬팀 교수들은 해법도 제시했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자’는 거였다. 나이가 많은 건 약점이다. 그러나 그걸 경륜이란 단어로 치환하면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밤섬팀에선 여러 나라 정치 지도자들의 사례를 들었다.

우선 나이 문제와 관련해선 서독 기민당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제시됐다. 아데나워 총리는 49년 74세의 나이에 총리가 된 뒤 독일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 내며 14년간 집권했다. 그는 원수였던 프랑스와 우호조약을 맺었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하고, 서유럽 연합을 결성하는 등 전후 독일의 번영을 불러왔다. 프랑스 드골과 함께 유럽공동체(EC)의 초석을 다진 것도 그였다. DJ로선 정말 배울 게 많았다. 같은 분단국가라는 면에서도 정책적 시사점이 많았다. 한강의 기적, 다자간 안보체제 구축, 한·일 우호협력, 대미 협력 강화 등 대선 당시 DJ가 제시했던 적지 않은 정책이 바로 독일의 아데나워로부터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건강 문제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좋은 사례였다. 루스벨트는 소아마비로 인해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그래도 대공황을 극복하고 미국 대통령 사상 처음으로 네 번 대통령에 당선된 미국의 영웅이 됐다(미국은 그 뒤 대통령은 재선까지만 당선되게 헌법을 수정했다). DJ로선 앞으로 나는 한국의 루스벨트가 되겠다고 외치면 되는 거였다.

밤섬팀에선 심지어 종교 문제도 검토했다. DJ는 가톨릭인데 아무래도 개신교나 불교에 비해선 신도 숫자가 훨씬 적었다. 한데 미국 케네디 대통령도 가톨릭이었고 선거 때는 개신교 쪽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경쟁자들은 “케네디가 결국 교황청의 지시를 받을 것”이라고 공격했다. 케네디 선거캠프에선 이걸 거꾸로 이용했다. 가톨릭이냐 뭐냐가 아니라 ‘개방성과 종교적 관용’의 문제로 몰아간 것이다. 케네디의 종교를 문제 삼는 사람은 편협하고, 폐쇄적이고, 너그럽지 못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DJ도 만일 종교가 문제로 등장하면 같은 논리로 대응할 방침이었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밤섬팀에서 만들어 낸 슬로건이 ‘든든한 정치 지도자, 준비된 대통령 DJ’였다. 건강을 연상시키는 ‘튼튼한’ 대신 ‘든든한’이란 형용사를 쓴 건 DJ의 노령을 덮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국민 정서를 어떻게든 반영해야 했다. 이런 정서를 달래기 위해 나온 구호가 ‘새로운 정권, 새로운 리더십, 새로운 국가’였다. 네 번째 출마하는 DJ를 놓고 새로운 인물 어쩌고 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인물은 그대로여도 정권·리더십·국가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국민의 마음속에 각인시켜야 했다.

DJ는 이 보고서를 읽고 또 읽었다. 이제 전략은 선 것이다. 4월 24일, DJ는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와 총재 후보로 동시에 등록했다. 그리고 밤섬팀의 조언대로 이때부터 대선 후보의 행보를 시작했다. 그건 당시 DJ의 일정을 며칠만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4월 25일 국민회의 당사에서 경제대책 특별회의 참석/대구방송 인터뷰/종로성당에서 ‘여성과 아동 의료보장 방안 공개토론회’ 참석/초선 의원들과 만찬
▶4월 29일 충남 예산 충의사에서 매헌 윤봉길 의사 65주기 기념식 참석/충남지구당 위원장들과 오찬 후 귀경
▶4월 30일 경남 부곡 하와이호텔에서 부산·경남·제주도 지역 당직자 연수 특강/조계사 대웅전 불탄 봉축기념법회 참석/일산 자택에서 주한 중국대사 장팅옌과 정무공사·경제공사 내외 초청 만찬
▶5월 3일 일산 호수공원 ‘세계 꽃박람회’ 개막식 참가/연강홀에서 시민영화 축제 참석 ‘초록물고기’ 관람’/호프집에서 ‘DJ총재와의 만남’ 행사/종교인 만찬
일일이 열거할 순 없지만 후보 등록일부터 단 하루도 휴식을 취한 날이 없었다. 불교계를 찾아갔으면 며칠 뒤엔 목사님들을 초청하고, 미국·중국 등 주요국 외교관들을 만나고, 문화계 인사들과 접촉하고, 의원·기자·대의원·직능단체 인사들과 식사하고, 신문·TV와 인터뷰를 하고…. 새파랗게 젊은 내가 숨을 헐떡이며 쫓아다녀야 할 정도였다.
DJ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에는 아무런 운동도 할 수 없었다. TV 카메라가 있을 땐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다. 나중에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운동이라곤 어쩌다 수영을 조금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늘 놀랄 만큼 건강했다. DJ는 그 비결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선천적인 건강 유전자. 대개의 경우 체질이나 체력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그런 점에서 DJ는 축복을 받았다. 평생 잔병치레가 거의 없었다. 둘째는 음식. DJ는 대식가였다. 뭐든 잘 먹었는데 특히 제철 생선과 과일을 좋아했다. 바닷가 출신인지라 생선은 워낙 잘 알았다. 봄엔 세발낙지, 여름 민어, 가을엔 전어 식이다. “바로 잡은 홍어는 담담한 맛이 있어 된장에 찍어 먹으면 좋다. 하지만 삭힌 홍어의 쏘고 찌르는 깊은 맛은 못 따라간다”고 말하는 등 나름의 음식철학이 있었다. 과일은 석류를 특히 좋아했다. 승용차 안에서는 호두과자와 마른 오징어를 즐겼다. 건강 비결 셋째는 그 유명한 ‘토막 잠’. DJ는 눈을 감으면 1분 이내에 곯아떨어졌다. 신기한 건 깨는 것도 잠드는 것만큼이나 금방이라는 점이다. 승용차 안에서 “나 15분쯤 잘 테니 깨워”라고 말하고 잠이 드는데, 좀 더 쉬시라는 생각에 한 20분쯤 지나서 돌아보면 이미 일어나 뭔가를 읽고 있는 식이다.
5월 19일,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총 4360명의 대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회의 전당대회가 열렸다. 먼저 대통령 후보 경선이 치러졌다. 유효투표 4157표 가운데 3223표를 얻은 DJ가 77.5%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경쟁자였던 정대철 후보는 907표였다. 이어진 총재 경선에서는 DJ가 3057표를 얻었다. 김상현 지도위의장은 1072표였다. 밤섬팀의 구상대로 둘 다 대충 3대 1 정도로 이겼다.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었다. 진짜 승부는 7개월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모든 걸 다 거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