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B612 님이 올리신 글 중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한 번 차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 공감하며, 제가 최근에 읽은 글 하나를 퍼옵니다. 참여정부 시절 사실상 정책 사령탑 역할을 했던 김병준 참여정부 정책실장의 글입니다. 이 글은 말하자면...참여정부의 정책집행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핵심인사의 공적인 비망록입니다. 대연정을 제안했을 당시의 정황들이 내부자의 관점에서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출처는 http://socialdesign.kr/news/articleView.html?idxno=6390 이며 그 중 관련된 부분 몇 개를 추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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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제로 누가 봐도 해야 할 일을,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을 정부부처나 기관이 하지 않고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점심을 하거나 차를 하면서 그 이유를 알아보면 결국 책임문제입니다. 전화를 하건 아니면 문서를 보내건, 청와대에서 확실히 지시를 해 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 옵니다. 결국 그렇게 하지요. 전화를 하건, 회의를 하건, 아니면 문서를 보내건 하지요. 아마 모두 기록해 둘 겁니다. 몇 월 며칠날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화........ 뭐 이런 식이겠지요. 나중에 사고가 나면 훌륭한 보험이 되는 거죠.


부동산정책 다룰 때의 기억은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종합부동산세를 만드는데 곳곳에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심지어 당도 반대했고요. 당까지 반대하니 정부부처는 더욱 불안해졌고요. 특히 과세대상을 9억 원에서 6억 원으로 낮출 때 더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청와대에서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이건 청와대에서 밀어붙였다 하세요. 회의기록도 그렇게 남겨도 좋습니다. 내각은 다 반대했다고 하세요.”.......

무슨 일이었는지 밝히지는 않겠습니다만 심지어 15분이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있었습니다. 이해관계도 다 드러나 있고 각 부처의 입장도 대체로 다 정리되어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결국 청와대에서 관계 부처 장ㆍ차관들을 모아 회의를 했죠. “자, 이렇게 갑니다” 라고 결론 내리는데 15분 이상 안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건이 1~2년 동안 꼼짝을 않고 있었던 겁니다. 모두 책임의 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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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도 문제입니다. 집권 초기에는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힘이 실리죠. 그러나 임기 중간에 선거가 실시되면서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중간선거는 대체로 집권여당이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요구나 기대가 실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기 때문에 대통령은 집권과 동시에 지지도가 하락하게 되어 있죠. 당연히 중간선거는 힘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특히 진보ㆍ개혁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경우죠. 대부분의 중간선거에서 집권여당이 패배합니다. 탄핵반대 바람이 불었던 17대 국회의원 선거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100% 지죠. 개혁에 대한 기대심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언론환경과 관료문화 등 실제 그러한 개혁과제를 실행하기 위한 환경은 오히려 더 나쁘기 때문이지요. 지지자들이 더 쉽게 실망할 수 있고, 그런 만큼 선거도 더 힘들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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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제지요. 여기다 정당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정당들이 정책정당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야 할 것 없이 정책적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습니다. 정책정당이면 대통령의 인기가 조금 떨어져도 뜻을 같이 해서 가게 되죠. 그런데 그렇지를 못하니까 대통령 인기가 조금만 떨어져도 정책적인 방향을 확 바꾸어 버립니다. 대통령이나 정부와 정책정향을 달리하는 국회의원들이 ‘신주류’니 뭐니 해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또 힘들어지는 겁니다. 당정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상황이라 더욱 그러합니다.


결정의 속도: 법안처리


이러다 보니 대 국회관계가 무척 힘들어집니다. 법안이 통과되어야 일을 하는데, 법안 하나 통과시키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어지는 거죠. 재미있는 자료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정책문제가 행정부 정책의제로 채택되어 행정부 안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국회로 가서 심의ㆍ의결되어 법률로 만들어지고, 이것이 다시 행정부로 와서 집행되기 시작하는데 얼마가 걸릴까요?

참여정부 시절, 하도 답답하니까 이걸 한 번 분석해 봤습니다(그림 4). 1988년부터 2006년까지 분석한 데이터입니다. 모두 3,131건의 법안처리를 분석한 건데 행정부 정책의제로 채택되어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하는데 까지 평균 14.5개월입니다. 시민사회 의견 조회하고 부처 간 이해관계 조정하며 해 나가는 거죠. 그 다음에 여러 대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결정행위를 하는 데에 7개월, 그리고 이것이 국회를 통과하는데 7개월 걸립니다. 마지막 시행에 들어가기 까지가 또 5.9개월. 도합 약 35개월입니다. 3년이 걸리는 겁니다. 문제가 인지되고, 이 문제가 의제로 채택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넣지도 않았죠. 물론 이것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죠. 예컨대 대학등록금 문제가 언제부터 시끄러웠습니까? 언제부터 시끄러웠는데 지금에서야 의제로 채택이 되는 겁니까?

국회를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만 해도 적지 않게 걸리죠. 당정협의다 뭐다 하여 정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절차를 다 거치고도 말이지요. 참여정부 때도 국회 통과하는 데만도 법안에 따라서 4.5개월 5.2개월 4.5개월 이렇게 걸렸습니다. 평균 그렇다는 겁니다. 중요한 개혁과제는 이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걸리지요. 왜 그러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소야대 정국입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적지 않은 문제가 될 겁니다. 중간선거가 집권여당에 불리한 구도이기 때문에 여소야대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봐야 되겠지요.

한 예로, 참여정부 때 중요한 개혁과제 중의 하나로 EITC제도 도입 문제가 있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워킹 푸어(working poors)들, 즉 일하는 저소득층 근로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서 만든 근로장려세제였습니다. 생산적 복지와 관련이 되어 있는 겁니다만........ 이 EITC는 인수위 때부터 거론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언제 통과되었는가 하면 참여정부 거의 마지막인 5년차에 통과가 되었습니다. 시행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되었죠. 결과적으로 이명박정부가 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5년, 6년의 세월이 걸린 겁니다.

이것뿐이겠습니까?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인수위에서부터 인적자원육성을 위한 정책마련에 신경을 썼습니다. 대학 개혁을 포함하여 인적자원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따라 인적자원육성기본법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죠. 이렇게 시작한 일이 언제 국회를 통과했느냐? 4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대통령과 정부로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인데도 말이죠. 국회로 간 다음에는 계속 사립학교법 문제 등과 패키지로 얽혀 한동안 상임위 자체를 열 수도 없었습니다.

오죽 했으면 대통령께서 사립학교법의 일부 조항을 양보하고서라도 다른 중요한 인적자원 관련 법안들을 처리해 줬으면 했을까요. 개방형이사 등의 문제에 있어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가 죽으라고 양보를 안 하고, 그로 인해 국회 전체가 움직이지 않으니 답답해서 한 말씀이죠. 한나라당이나 박근혜 대표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런데 이런 입장이 또 논란이 되었죠. 진보ㆍ개혁 진영이 발끈하며 대통령을 공격하고 나섰고요. 말하자면 ‘집토끼’까지 놓치게 된 거죠.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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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인데도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Imperial presidency,’ 즉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환상이 있는 거죠. 이러한 환상은 쉽게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집니다. 문제가 얽히면 대통령의 리더십이나 정치력이 문제라고 합니다. 잘 살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주머니에 돈은 들어오지 않지, 세상이 확 바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게다가 ‘사립학교법 법안에 양보하자’는 소리나 해 대고......... 마음에 들 리가 있겠습니까? 지지도가 뚝 떨어지고, 정치력과 행정력은 더욱 떨어지게 되지요. 특히 보수편향의 언론환경이 존재하고 보수인사들의 여론점유율이 높은 상황에서 진보ㆍ개혁 성격의 정권에 대한 지지도는 취임과 동시에 급전직하로 떨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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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입니다만 실제로 여권은 야권보다 지지기반이 단단합니다. 기본적인 지지율이 한 30%는 되죠. 진보나 야권 쪽은 분열이 심하고, 또 잘 삐칩니다. 같은 편에 몽둥이를 들이대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보수나 여권 쪽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위기에 빠졌다 싶으면 다시 뭉치는 그런 기류가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 자리가 일종의 역삼각형과 같다고 봅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실제로 대통령이 처리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죠. 말하자면 역삼각형의 윗변처럼 넓습니다. 그러나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혹은 권력적 기반은 역삼각형의 아래 꼭지점처럼 좁은 거죠. 당연히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한 번 흔들리면 그 다음부터는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고, 그래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지를 점점 잃게 되는 악순환 구도에 들어서게 됩니다.


대연정 제안: 오죽했으면.......


대통령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든 이러한 구도를 벗어나고 싶어 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께서 크게 욕을 먹었던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먼저 하나는 대연정 제안이었습니다. 다들 기억하시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셨던 것......... 욕 많이 먹었습니다. 지지세력도 크게 잃었었죠. 또 하나가 원-포인트 개헌 제안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논란이 심했죠. 욕도 많이 먹었고요. 왜 이런 제안을 하셨는지 설명을 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대통령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면 참여정부가 겪었던 어려움을 똑같이 다시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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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부시대통령 만나고 귀국을 하셨죠. 출국 때의 표정과는 180도 다른 표정이었습니다. 기내 영접을 하면서 “고생하셨습니다. 큰일 하셨습니다” 했더니, “그렇죠 큰일 했지요? 큰 일 했습니다” 하시더군요. 당신이 하신 일을 정말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죠. 관저에 도착해서도 여직원이 꽃다발을 건네자 두 손을 높이 들며 ‘와!’ 하고 좋아하셨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출국 전 3일간의 두문불출이 모두 미국 가시는 문제 때문이었다고 말이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제가 틀렸더군요. 두문불출의 이유는 대연정 구상 때문이었습니다. 글을 쓰시면서 구상을 다듬으신 거죠. 왜 대연정이었을까요?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죠? 대통령과 정부가 일을 해야 하는데 여소야대 정국 속에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여당의 일부가 벌써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꼼짝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유일한 돌파구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중요한 개혁과제 몇 가지 풀어주고 나머지는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라.” 이것 아니겠습니까?

이 구상을 총리 이하 주요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 하셨습니다. 당정청, 그러니까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정부, 그리고 청와대의 주요 인사들이 매주 한 번 총리공간에 모여 간담회를 가지곤 했었는데 그 자리에 오셔서 이야기 하신 거죠. 미국 가시기전 이 문제에 골몰했노라 하시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한 가지 여운은 남기셨죠. “글로 논리를 풀어 나가고 있는데, 글이 잘 안되네요.”

반응이 어떠했겠습니까?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예상을 못했던 내용이었죠. 하나 같이 반대했죠. 저도 물론 반대했죠. “아까 글이 잘 안 된다고 말씀 하셨는데, 글이 잘 안 될 때는 내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당시 제가 드린 이야기 중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모두들 반대하는 상황 속에서도 대통령께서는 왜 해야 하는지를 계속 설명하셨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계속 강력히 반대했고요.

결국 대통령께서 물러서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안 꺼내겠습니다. 나는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계신 분들이 이렇게 반대하시니 다시는 안 꺼내겠습니다. 그리고 부탁컨대 이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머릿속에 있으면 반드시 입으로 나가게 돼 있습니다. 머릿속에서도 지워주십시오.” 표현 그대로를 기억합니다. “머릿속에서도 지워 주십시오.”

대통령께서 먼저 자리를 뜨시고 난 뒤, 곧 나머지 분들도 자리를 일어났죠. 문 입구에서 이해찬 총리께서 다시 한 번 당부를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하면서 말이죠. “대통령 말씀처럼 머릿속에서도 지웁시다.”

그런데 며칠 뒤 이게 신문에 나버린 겁니다. 누가 발설했느냐를 굳이 따져 뭐하겠습니까? 처음엔 작은 기사였죠. 이어 메이저 언론들이 크게 받았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결국, 이왕 세상에 알려졌으니 제대로 한 번 논의해 보자라고 된 거죠. 이렇게 시작된 것이 대연정 논의입니다. 시작이 어떻게 되었건, 현실성이 어떠했건, 그 안에는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비판과 비난에 앞서 대통령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나 국정운영 메커니즘 상의 문제점을 좀 더 이해하는 차원에서 접근해 줄 수는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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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되기 전의 노무현과 된 후의 노무현이 너무 다르다고 비난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지요. 이 글은 그 두 노무현간의 차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아이들 눈치 안 보고 밥 먹게 하자는 문제 그거 하나 때문에 서울 시정 전체를 내팽개쳐 버린 전 서울시장 오모씨... 그 사람이랑 좀 비교가 되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