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은 인간의 보편적이고 선천적인 측면이다. 반면 문화적 다양성은 보편적이지 않고 선천적이지 않은 측면이다. 누군가 나는 인간의 보편성에 초점을 맞추어서 연구하고 싶다라고 할 때 왜 당신은 다양성은 깊이 연구하지 않으려고 합니까?라고 시비를 거는 것이 옳지 않듯이 나는 인간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어서 연구하고 싶다라고 할 때 왜 당신은 보편성은 깊이 연구하지 않으려고 합니까?라고 시비를 거는 것 역시 옳지 않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보편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고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인류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가 인간 본성에 대한 진화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무시하려고 할 때 일어난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 본성만 연구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누가 인간 본성만 연구하면 된다고 했나? 어떤 진화 심리학자도 인간 본성만 연구하면 되니까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따위는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논란의 초점은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별도의 연구가 필요한지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런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성에 대한 연구에 보편성에 대한 연구 즉 생물학적 차원이나 진화론적 차원의 연구가 필요한지 여부가 논란의 초점이다. 많은 사회 과학자들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보편적 측면에 대한 생물학적, 진화론적 연구가 문화적 다양성을 연구하는 데 거의 쓸모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 또는 인간에 대한 진화론적 연구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연구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몇 가지 예를 들어서 왜 그런지 살펴보겠다.

 

 

 

문화권에 따라 인간이 입는 옷은 매우 다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종잡을 수 없이 다양하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패턴이 보인다. 적도 지방으로 갈수록 옷을 안 입거나 얇게 입고 극지방으로 갈수록 두텁게 입는다.

 

왜 그런가? 그 답은 한편으로 지구 과학에서 나온다. 극지방으로 갈수록 춥고 적도 지방으로 갈수록 덥기 때문이다. 이 답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완전한 답은 아니다. 매우 추운 지방에서 사는 북극곰은 옷을 입지 않는다.

 

인간이 추운 지방에서 옷을 입는 이유를 우리의 직계 조상이 몇 만 년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을 빼고는 해명할 수 없다. 인간은 더운 지방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인간은 상당히 빠른 기간 안에 극지방까지 영역을 넓혔다. 수 만 년이라는 기간은 북극곰처럼 극지방에 맞도록 두꺼운 지방층과 긴 털을 진화시키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다.

 

 

 

문화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된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서 온갖 방면으로 영향을 받는 존재다. 이 때 아무렇게나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런 영향은 인간 본성에 의해 어느 정도 규정된다. 인간은 어떤 때에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따라 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따라 하지 않으려고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무작정 따라 하는 인간은 제대로 번식하기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모방과 관련하여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가 일어났을 것 같다. 남의 실수까지 모방하는 사람은 다치거나 죽기 십상이다.

 

모방과 관련하여 온갖 진화 심리학 가설들이 있다.

 

인간은 지위가 높은 사람을 모방하도록 진화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지위가 높은 사람은 대체로 똑똑하고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지위가 낮은 사람에 비해 어떤 일을 효과적으로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위가 높은 사람을 모방하면 그 사람과 친해지기 쉽다. 지위가 높은 사람과 친해지면 여러 가지 떡고물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의도를 고려하여 모방하도록 진화했을지 모른다. 만약 남이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을 모방하고 자신의 의도와 무관한 결과로 이어지게 행동한다면 그것을 모방하지 않는 것이 적응적이다. 예컨대 아빠가 못을 박으려는 의도로 망치로 못을 제대로 내리치는 장면을 본 딸은 그것을 모방한다. 반면 아빠가 못을 박으려는 의도로 망치를 내리쳤는데 대신 자신의 손가락을 때려서 다치는 장면을 본 딸은 그것을 모방하지 않는다.

 

인간은 다수가 하는 것을 모방하도록 진화했을지 모른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다수가 소수보다 옳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다수를 모방하면 왕따를 당할 가능성도 작다.

 

문화 전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모방 본능이 있다라는 소박한 명제로는 부족하다. 모방과 관련된 심리 기제들이 자연 선택에 의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를 자세히 밝혀내야 문화 전달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의 방법론을 무시한다면 모방과 관련된 심리 기제들의 생김새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다.

 

 

 

인간이 아무 것이나 모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아무 것이나 믿지 않는다. 믿음과 관련된 심리 기제들 역시 자연 선택에 의해 주조되었을 것이다. 믿음에 대해서도 온갖 진화 심리학 가설들이 있다.

 

여전히 진화 심리학자들은 모방에 대해서든 믿음에 대해서든 관련된 심리 기제들의 생김새를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가망성 있어 보이는 가설들이 여러 가지 제시되었다. 그리고 그런 가설들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어느 정도 모았다.

 

예컨대 종교는 믿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종교를 연구할 때 믿음과 관련된 심리 기제들에 대한 진화 심리학자들의 가설들을 고려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설사 당장은 진화 심리학자들의 가설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아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믿음과 관련된 인간 본성에 대한 가설을 최대한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검증해야 종교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모방에 대한 것이든 믿음에 대한 것이든 그것과 관련된 인간 본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 문화적 다양성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결혼 제도는 다양하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제이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관습적으로 또는 법적으로 허용된다. 어떤 문화권은 일처다부제다.

 

하지만 이런 다양성에도 패턴이 있다. 일부다처제는 상당히 널리 퍼져 있는 반면 일처다부제는 극히 드물다. 왜 이런 편향이 나타나는 것일까? 또한 법적으로 일부일처제인 문화권에서도 사실상 일부다처제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남자가 몰래 두 집 살림을 차리는 경우는 꽤 있지만 여자가 몰래 두 집 살림을 차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남자가 나이 든 아내와 이혼한 후 더 젊은 여자와 재혼하는 경우에 비해 여자가 그렇게 하는 경우는 적다. 왜 이런 편향이 나타나는 것일까?

 

진화 심리학은 이런 편향을 설명하는데 긴요해 보이는 통찰을 제공한다. 남자는 여러 여자와 짝짓기하면 번식적 측면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여자가 여러 남자와 짝짓기한다고 해도 그렇게 큰 이득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여자가 일처다부를 추구하는 것에 비해 남자가 일부다처를 추구하는 경향이 훨씬 크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친족 간 결혼 금지는 문화권마다 다르다. 이전에 한국에서는 지극히 먼 부계 친족인 경우에도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금지했다. 반면 어떤 문화권에서는 사촌끼리도 흔히 결혼을 한다. 하지만 남매끼리 또는 엄마-아들이 또는 아빠-딸이 결혼을 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다.

 

다른 동물도 남매끼리 또는 엄마-아들이 짝짓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그 이유가 이제는 해명되었다. 가까운 친족끼리 결혼하면 유해 열성 유전자로 인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래서 근친상간 회피를 위해 기제들이 진화한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이처럼 인간 본성은 문화적 다양성에 어느 정도 한계를 설정할 때가 있다.

 

 

 

이덕하

2011-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