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프리드먼은 그의 대표작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세계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올리브나무에 집착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자로 묘사한다. 그는 냉전 시대의 규칙이라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 갈등, 동서 갈등, 국가주의, 블록 경제 같은 기존의 틀 가지고는 더 이상 지금의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하며 새로운 시대의 질서는 자유시장 자본주의 세계화라고 한다. 프리드먼은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올리브나무'를 지키는데에 매몰되고 이를 위한 논리를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해한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선 세계화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복지국가, 민족주의, 종교 따위에 집착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선택은 알아서 하시길"

우리 진보좌파는 토마스 프리드먼에 대해서 아마도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이데올로그'로 지난 미국 금융위기로 인해 지적 파산 선고를 내렸을 거다. 하지만 여전히 <렉서스와 올리브나무>가 말하는 것들은 지금의 세상을 해석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자유시장 자본주의 세계화를 가능케 한 3가지 민주화, 기술 민주화, 정보 민주화, 금융 민주화는 전 세계적 금융위기로 잠시 그 속도가 느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중에서 금융 민주화는 특히 지체된다고 쳐도 기술과 정보의 민주화의 대세는 막을 수 없다.

http://abcnews.go.com/Technology/apple-ipad-learning-tool-kindergarten-maine-tennessee-south/story?id=14509290
미국의 몇 개 주가 유치원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를 공짜로 배포해서 교육용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종이로 된 그림책을 읽고, 보며 연필, 크레파스로 색칠놀이를 하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거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세상을 보는 틀 자체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도구도 바뀌어 가는 것이다. 아이패드를 어릴 때부터 사용한 어린 아이들은 기성세대의 방식과 다른 정보 접근, 정보 생산의 방식을 익히는 거다. 나도 어린 아이들이 보기엔 기성세대기 때문에 잘 상상이 안간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터넷, SNS,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기술과 정보의 민주화는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도구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이건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직결되는 문제일 거다).


단편적으로 아이패드를 예로 들었지만 세상이 급격하게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디어 질서가 바뀌고 경제 질서가 바뀌면 당연히 정치 질서도 바뀐다. 새로운 세상에도 갈등과 이견은 존재할 것이고 이를 조정하고 타협하는 과정은 없어질 수 없기 때문에 정치는 지속되지만 갈등과 이견의 조정, 타협의 방식은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에 대해 기존 진보좌파는 '워싱턴 컨센서스(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정치를 축소시킨다'고 한다. 좌파가 아닌 민주주의자들도 지금의 세계화 질서가 민주정치의 영역을 협소하게 한다고 한다. 철학자들은 기존에 계량화하지 않았던 것들까지 수량화, 계량화하는 세계화를 폭력적이라고 한다. 이명박은 자기는 정치를 하지 않고 국가경영, 행정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안철수는 서울시장은 행정의 영역이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고 한다.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새로운 세상의 정치 질서가 기존 민주정치의 관점에서는 "정치의 축소"로 규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10914074609&Section=01
손호철의 최근 칼럼도 그런 비슷한 입장에서 안철수를 '기술행정주의적 반정치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냐는 진보좌파의 전형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그런데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안철수의 지금의 이미지와 인기는 무릎팍 도사에 힘입은 연예인스러운 인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안철수를 다룬 엠비시 스페셜 2편과 안철수에 대해 조금 알아보고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는 약간 생각을 다르게 하게 되었다. 프레시안의 기획 <30대, 정치와 놀다>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태권'이라는 분의 견해가 그랬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0911110908&section=01

이태권 : 그게 이른바 '융합'이죠. MBA도 하고, 사업도 하고, 의사도 하고...저는 놀랐던 게 자칭 '진보'라고 하는 분들이 안철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을 넘어서, '기존의 정치구조가 무너지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트위터 같은 데 보면 안철수가 저쪽(보수) 편이냐, 우리 편이냐 하는 논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반한나라당' 입장을 밝힌 인터뷰 기사가 나오니까 '봐라, 이제 우리 편이다'라면서 지지하는 거죠. 별로 좋게 안 보였어요. 어떤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는데, 기존에 가지고 있는 어떤 틀에다가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이 보였거든요.

이태권 : 안철수 캠프. 캠프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 쪽에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해서 서울시장 출마 준비를 했다고 보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그렇게 비판했잖아요. '행정과 정치를 어떻게 분리하느냐', '뭔가 바꾸려면 국회부터 들어가라.' 그런데 바꾸려고 하는 대상 자체가, 안철수랑 김종인 같은 기존 정치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아예 다른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그 쪽(안철수)의 전략이 맞는 것 같아요. 서울시장은 외교, 안보, 국방에서 제외가 되고 거시 경제에서 제외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행정의 관점에서) 시장이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죠.

저도 예전에 IT 기업에서 근무를 했는데, 386세대가 IT기업을 일구는 전략과 전술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작은 성공과 작은 혁신들을 눈덩이처럼 키워나가는 전략이에요. 이것을 (기존 정치권이)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요.

국회에 들어가서 바꾼다? 그것은 결국 정부부처 관료들과의 싸움일 뿐이죠. 뭔가 정책을 추진해도 관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못하잖아요. 제가 하려는 얘기는 여전히 기존 정치 프레임에 갇혀서 바꾸려고 하는 대상도 기존 정치 프레임에서 본다는 거예요. 안철수 주변에 윤여준, 박경철 등 전혀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을 보고도 '아, 이런 형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이태권 : 저는 안철수가 서울시장을 하면서 경험을 쌓아 더 큰 쪽으로 나가려는 시나리오 같은 것은 있었다고 봐요. 정치나 시정이 '플랫폼'이 되고 시민들이 직접 '플레이어'가 되는 것을 꿈꿔서 나온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박원순에게 양보한 것이 안타까워요.

이태권 : 탈정치를 구분해야 할 것 같아요. '탈여의도 정치', '탈정치공학적 정치'와 진정하고 본질적인 의미의 정치를 구분해야 할 것 같아요. 안철수도 사람들이 '탈정치'라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정치를 버리겠다는 것은 아니거든요.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뭉뚱그려서 '탈정치'라고 표현하는 것은 '수구'들도 공격할 수 있는 부분이 될 것 같아요.

이태권 : 저는 문국현이랑은 다르다고 봐요. 문국현은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장 출신이에요. 그런데 안철수는 정말 새로 일궈낸 것이거든요. 예를 들면 문국현은 중소기업청이나 신용보증기금에서 하는 보증보험증권 같은 것 한 번도 끊어본 적이 없을 거예요. 월급쟁이 사장과 안철수 같은 CEO는 차이가 있죠.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서도 훨씬 많이 알고 있을 것이고, 바꾸고 싶은 게 분명 있을 것이라는 말이죠. 청춘콘서트를 오래 하면서 자신이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만났을 거라고 봐요. 그러면서 자신의 비전이 영글었겠죠. 박경철도 역할을 했을 거고, 윤여준도 나름대로 역할을 했을 거라고 봅니다.
 

기술, 정보, 금융(이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이 민주화(3대 민주화) 된 자유시장 자본주의 질서로서 새로운 세상의 정치의 역할은 사회의 개별 주체인 시민들이 직접 플레이어로 활동할 플랫폼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든다. 기존 정치의 관점은 이를 두고 '정치 영역의 축소를 지향하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라 비판할 수 있다. 기존 정당정치 관점에선 정당의 역할이 축소된 이러한 새로운 정치의 역할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포스트 모던 철학적 입장에선 정치도 소비의 영역이 되었다고, 모두가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경제적 관점에서 일원화 됐다고 이해할 수 있다.

기존 정치적 관점은 정당과 정치인에게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진보좌파, 민주주의자들은 이러한 과제를 정치가 달성하지 못하면 '정치 허무주의'때문에 정치의 위기가 닥치고 신자유주의 흐름을 억제할 수 없을 거라 경고한다. 정치를 정당과 정치인이 구체적 주체가 되어 추상적 주체인 국민들의 갈등을 입법이라는 과정을 통해 조정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전통적 관점으로 변화된 새로운 세상에서의 정치의 역할을 말하는 거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기술, 정보, 금융의 민주화와 자유시장 자본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개별 주체로서 시민들이 '각성'되었고 각자의 이해관계가 파편화, 개별화되어서 지금의 정당들 중심의 대의정치질서가 시민들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에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거대 집단 사이의 갈등에서 갈등의 다원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갈등은 갈등의 개별 주체들이 직접 당사자가 되어서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 효율적이다(물론 private sector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는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뒷 말이 나올 여지가 제일 적고 종국에는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해서 기술,정보,금융의 민주화는 산업의 관점에서  IT와 서비스 산업위주로의 재편을 뜻하는데, 여기에 필드 플레이어가 아닌 타자인 정치인, 정당의 역할은 (기존 정치의 관점에선) 축소되거나, 변화될 수밖에 없다. 초 단위로 바뀌는 사업 환경의 당사자가 아니면 그 생태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세상의 정치는 개별 주체인 시민들이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플랫폼을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구축을 추구하는 쪽으로 그 역할을 맡게 될 것 이란 생각이 든다. 20~30대, 수도권 고학력 화이트 칼라의 안철수에 대한 집중적 지지의 이면엔 이러한 새로운 정치 질서 구축의 열망이 담긴 거 같다. 백수광부님의 안철수는 지우라는 말씀이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안철수 개인의 인기, 안철수의 고향 따위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안철수가 보수냐 진보냐, 정치 허무주의에 의한 반짝 인기 아니냐, 안철수의 부상은 영남패권주의의 증거다 등의 주장은 '올리브나무'에 함몰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렉서스가 눈 앞에 있는데 올리브나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