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심리학자들은 보편적 인간 본성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문화적 다양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어떤 사람들은 진화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이런 편향을 보인다고 비판한다. 보편성만 중시하고 다양성은 무시한다는 것이다. 또는 생물학적인 것만 중시하고 문화적인 것은 무시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존재이기도 한데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만 연구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리학자에게 왜 생명 현상을 연구하지 않느냐고, 생명을 무시하느냐고, 왜 인간의 문화적 다양성을 연구하지 않느냐고, 문화를 무시하느냐고 시비를 걸어 보자. 물리학자가 얼마나 황당해 하겠는가? 물리학자는 단지 물리 현상을 연구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알기로는 어떤 물리학자도 생명 현상이나 문화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할 가치도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상대적으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문화 연구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진화 심리학자들은 보편성을 연구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알기로는 어떤 진화 심리학자도 역사나 문화가 연구할 가치도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한 명이 온갖 분야를 연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학문 분과가 세분화해서 학자들은 보통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지금까지 쌓인 엄청난 지식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 이제는 한 사람이 모든 분야의 기존 지식을 익히는 것 자체도 불가능해졌다.

 

보편적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것은 진화 심리학자의 일이고,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일이고, 문화적 다양성을 연구하는 것은 인류학자나 사회학자의 일이다. 진화 심리학자는 왜 역사 연구에 집중하느냐고 역사학자에게 시비를 걸지도 않고, 왜 문화 연구에 집중하느냐고 인류학자에게 시비를 걸지도 않는다.

 

 

 

학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에 대해서 소홀한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연구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거나 다른 분야의 연구를 전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다.

 

예컨대 생물학자가 물리학이나 화학에 대해 물리학자나 화학자보다 잘 모른다고 해서 창피해할 것은 전혀 없다. 이것은 물리학자가 생명에 대해 생물학자보다 잘 모른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물학자가 물리학이나 화학이 없어도 생물학 연구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큰 문제다. 삼투압이나 경원의 작동을 포함하여 온갖 생명 현상에 대한 연구에 물리학이나 화학이 도움이 된다. 만약 생물학자들이 물리학이나 화학의 발견을 무시하고 생명 현상을 연구했다면 지금처럼 생물학이 발전하기는 불가능했다.

 

 

 

20세기의 많은 사회 과학자들이 생물학이나 진화론을 무시해도 사회 과학 연구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인간의 보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려는 성향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회 과학자가 인간의 보편성에 대해 의식적으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점은 바뀌지 않는다. 사회 과학자가 사회화를 연구한다면 사회화와 관련된 인간의 보편성 즉 인간 본성에 대한 가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사회 과학자가 학습을 연구한다면 학습과 관련된 인간 본성에 대한 가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사회 과학자가 질투는 인간 본성이 아니라 사회화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질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인간 본성을 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결국 사회화와 관련된 인간 본성을 가정해야 한다.

 

만약 사회 과학자가 보편성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암묵적으로 가정하게 된다. 그러면 그런 가정이 애매한 상태가 되기 십상이다. 지금까지는 보통 인간 본성에 대해 암묵적으로 애매하게 가정했을 뿐이며 검증할 생각도 못했는데 진화 심리학자들은 그런 가정을 명시적 가설로 정립해서 검증하려고 한다.

 

당연히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한다면 인간 본성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고 출발하는 것보다 사회 과학이 더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엉터리 물리학과 화학에 바탕을 둔 생물학이 엉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 본성에 대해 암묵적으로 애매하게 가정하고 검증할 생각도 하지 않을 때와 인간 본성에 대한 명시적 가설을 세우고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검증할 때를 비교해 보자. 당연히 후자의 경우에 인간 본성에 대해 더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기존 사회 과학자들은 너무나 당연한 이 점을 무시하는 것 같다.

 

 

 

보편적 인간 본성에 대한 가설이 사회 과학자의 가설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회학자가 문화권에 따라 강간률이 어떻게 다른지 연구하려고 한다고 하자. 한 사회학자는 인간 본성에 대해 인간은 처벌을 회피하려는 강력한 성향이 있다고 가정한다고 하자. 그러면 강간을 강력히 처벌하는 문화권에서는 강간률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가설을 유도해낼 가능성이 클 것이다. 다른 사회학자는 인간은 금지된 것을 하고자 하는 강력한 성향이 있다고 가정한다고 하자. 그러면 강간을 강력히 처벌할수록 강간률이 높아질 것이다라는 가설을 유도해낼 가능성이 클 것이다.

 

 

 

남자가 강간을 하는 이유는 성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여자를 지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주의 이론가들이 있다. 남자의 성 충동이 강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리고 여자를 지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강간을 선택하는 것이 바보 같다는 점을 생각할 때 강간의 주된 목적은 여자를 지배하는 것이다라는 가설은 별로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 가설이 얼마나 가망성이 있는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강간의 목적은 여자를 지배하는 것이다라는 가설에는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왜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고 싶어할까? 어쩌면 남자에게는 여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선천적 욕망이 있는지 모른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학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여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은 남자의 본성이다라는 본성 가설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쩌면 해당 문화권에서 여자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남자가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사회화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자신이 사는 문화권의 지배적인 생각을 내면화하도록 사회화되는 것일까? 어쩌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지배적인 생각을 내면화하는 것이 인간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왜 많은 문화권에서 여자는 남자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남자는 여자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일까? 이런 식으로 따지다 보면 여기에서도 결국 인간 본성에 대한 가정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강간의 목적은 성교가 아니라 여자를 지배하는 것이다라는 가설을 제시하는 여성주의자들은 자신이 인간 본성에 대한 어떤 가정에서 출발하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이 제시한 가설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런 태도 자체가 문제다. 인간 본성에 대해 세상에 떠도는 상식, 자신의 직관 등에 암묵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자신이 인간 본성에 대해 어떤 가정을 하는지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인간 본성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에 바탕을 두고 연구할 때 더 정확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런 태도는 재앙적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컨대 임금 인상이나 더 편하고 쾌적한 노동 환경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왜 임금 인상을 원하는가? 소유욕이 인간 본성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는 것이 인간 본성이기 때문에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임금 인상을 하려는 것일까? 임금 인상을 통해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하려는 것일까? 즉 인간에게는 선천적인 소유욕이나 선천적인 지위 욕구는 없으며 단지 식욕 등을 채우려고 그러는 것일까? 기본적인 의식주만 어느 정도 해결되면 노동자는 더 이상 임금 인상을 원하지 않을까? 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명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다만 선천적인 소유욕 가설이나 선천적인 지위 욕구 가설은 싫어하는 것 같다. 만약 그런 가설이 싫다면 임금 인상 욕구의 바탕이 되는 어떤 가설을 제시해야 한다. 소유욕 자체가 자본주의 문화의 산물이라서 노동자가 소유욕을 내면화해서 임금 인상을 원하는 것일까? 만약 자본가가 교육만 잘(?) 시키면 노동자가 소유욕이 없도록 만들어서 임금 인상 자체를 원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이덕하

2011-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