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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씨가 돌아가셨더군요.
제 입에는 아직까지도 '최동원 선수'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지만, 이제 최동원 씨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최동원 씨, 당신은 제가 지금까지 본 야구선수 가운데서 가장 막강한 포스를 뿜어내던 분이었습니다.
당신의 다이나믹한 투구와 자신감,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의 승부근성 등.
결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해태를 응원하던 나에게 당신은 응원 대상이라기보다 적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특히 선동열이라는 불세출의 투수와 비교하면서 열을 올리기도 했지만,
순수하게 투수라는 그 자체를 놓고 평가하자면, 투구의 위력과도 또 다른, 그냥 투수 그 자체를 놓고 보자면
최동원 씨 당신에게 좀더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심정입니다.
내가 당신을 굳이 최동원 선수가 아닌 최동원 씨라고 부르는 이유는,
선수생활 외에 당신의 행보를 제대로 평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선수협 당시의 역할도 그렇고,
이후 민주당 후보로 지방선거에 나와서 낙선한 것도 그렇고,
당신은 결코 비굴하게 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흔해빠진(?) 프로야구 감독 한번 못했지만,
당신은 진정한 프로야구의 레전드입니다. 아니 감독이나 하기에는 당신은 너무나 강력한 레전드였습니다.
당신의 영광에 비해 당신의 말년은 너무 초라했습니다만,
그거야말로 레전드에게 진정으로 어울리는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편히 쉬소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최동원 선수를 기억하는 사람이 이제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리를 높이 쳐들어 시원하게 뿌려대는 직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군요.
미투라고라님, 추석은 잘 쇠셨습니까?
쏘련기행 올려 주신 것 재밌게 읽고 있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여일(如一)하신 모습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쏘련기행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데, 너무 오래 끄는 느낌이군요. 죄송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이제 최동원 선수 기억하는 사람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군요.
ㅎㅎㅎ
그럼에도 최동원 선수에 대한 추모열기가 대단한 걸 보니 그가 짧은 프로야구 선수 시절에 남긴 인상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저는 85년이던가,
선동열과 최동원이 선발로 맞붙은 경기(사직이었을 겁니다)가 기억나는데
정말 불후의 명승부였다는 기억입니다.
흔히 호쾌한 타격전이 더 재미있고 투수전이 지루하다고 하지만,
그날 경기를 보면서 정말 진정한 투수전이 얼마나 긴박감 넘치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
long, long time ago네요... ㅎㅎㅎ
와러데이님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잊고 있었어요. 최동원 선수. 야구선수 중 기억에 남는 미남 중 하나인데..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었군요..
검색해보니 아래 글이 나오네요.. 선수회 조직한 경력이 있군요. 강병규도 선수회 비슷한 사건으로 언론에 노출된 적이 있는걸로 아는데..
" 최동원의 행적에는 야당으로서 탐낼 만한 구석이 있다. 비록 불발탄으로 끝나긴 했지만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구단주들의 횡포에 맞설 ‘선수회’를 조직한 바 있다. 88년 <부산일보>의 파업농성 당시에는 유니폼을 입은 채 농성장을 방문해 1백만원의 격려금을 선뜻 내놓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87년 대통령선거 때 김영삼 후보의 선거사무실을 열심히 드나들었을 정도로 ‘공인된 김영삼맨’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공천에 열을 올리는 것은 이런 최동원을 김대표의 아성인 부산서구에 내보내 ‘반김영삼’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계산이 깔린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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