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련을 떠나기 전에 가졌던 두 개의 대화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싶다.

그 하나는 전에도 얘기한 적 있었던 디알로그의 젊은 이사 M 그리고 그의 동료인 여성 Y(그 역시 상당히 높은 직급이었던 것 같다)와 함께 한 대화였다.

M 그리고 Y와는 모스크바를 떠나기 이삼 일 전 디알로그의 한 사무실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모스크바를 떠날 날짜가 다가오니 이 친구들이 나와 뭔가 개인적인 대화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날의 대화는 이들이 일부러 시간과 장소를 정해둔 것 같고 나에게 먼저 "얘기 좀 하자"는 제안을 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기억이 분명치 않은 것은 이 대화가 통역 최노인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그냥 영어로 이루어졌는지 하는 것이다. M, Y와 나눈 대화의 내용을 떠올려보면 분명히 내가 영어로 전하기에는 무리가 많은 수준인데, 또 내가 분명히 영어로 묻고 대답했던 내용도 떠오른다. 대충 짐작하기로는 최노인이 그 대화의 많은 내용을 통역해주고, 다만 그 가운데 일부는 내가 직접 영어로 묻고 대답했던 것 아닌가싶다. 당시의 대화는 전문적인 IT에 관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최노인도 그렇고 나 역시 의사소통에 별 무리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나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M이사를 포함한 디알로그 관계자들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스스로 '빨갱이'라는 사실을 별로 감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날의 대화는 주로 이 이념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때의 대화 내용을 다 재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기억나는대로 구성해본다. M과 Y는 비슷한 입장에서 얘기를 했고, 둘의 발언 내용을 개인적으로 구분해서 기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M&Y로, 나는 D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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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당시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Y와 M(왼쪽부터). 당시 대화를 마치고 내가 요청해 찍은 사진이다.



M&Y : (당신과 같은)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도대체 뭐가 그리 불만인가? 우리가 보기에 한국은 매우 잘사는 나라다.

D :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완전한 민주주의 둘째 민족통일 셋째 노동해방 등이다.

M&Y : 특히 첫째와 둘째에 대해서는 완전히 공감한다. 셋째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행동들이 왜 과격한 반정부 시위 등으로 나타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D : 이 세가지 모두 군부파쇼 정권과 미국의 강력한 결합에 의해 가로막히고 있다. 광주학살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지금도 군부파쇼와 미국은 형태를 달리해서 민중의 세 가지 요구를 가로막고 있다.

M&Y : 미국이 왜 그런 일을 하겠는가? 미국은 좋은 나라고 풍요로운 나라다. 우리는 미국이 무척 부럽다.

D : 미국이 전세계에서 특히 제3세계 국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당신들이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월남이나 쿠바 등에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현지의 부패한 권력과 결탁해 민중들의 요구를 무력으로 가로막았던 사실을 모르는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풍요로운 나라라고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황은 불가피하게 주기적으로 다가온다. 공황이 닥치면 민중들은 굶주리고 있는데도 한쪽에서는 남아도는 식량을 바다에 던지는 일이 벌어진다.

M&Y : 믿기 어렵다. 그것은 과장이다. 또,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해도 사회주의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에 비해서는 훨씬 양호한 것이다. 당신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보지 못해서 실상을 모르고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D : 내가 하고싶은 얘기다. 당신들은 정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보지 못해서 그 체제가 어떤 것인지 전혀 실감하지 못한다. (다들 웃음)

M&Y : 당신은 불만이 많지만 한국은 쏘련에 비해 훨씬 잘사는 것 같다. 당신이 가진 카메라나 옷차림, 그리고 여러가지 물건들을 봐도 그걸 알 수 있다(실제로 디알로그 사 직원 가운데 나와 함께 다니며 모스크바 시내를 안내하기도 했던 젊은 S도 내 카메라에 무척 부러운 눈길을 던지고 가격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 카메라는 외제가 아닌 국산이었지만 이들의 눈에는 무척 부러운 물건이었던 것 같다).

D : 그거야말로 착각이다. 내가 보기에는 쏘련 사람들이 생활의 질(quality)이라는 점에서는 훨씬 낫다고 본다. 단순 소모품을 보면 한국이 낫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주거나 교통 등은 쏘련이 훨씬 낫다.

M&Y : 주거나 교통이 뭐가 어떤데 그러느냐?

D : 당장 나만 해도 매일 출퇴근에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이 대목에서 M&S 경악). 사는 집만 해도 당신들이 훨씬 여유가 있다.

M&Y :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출퇴근에만 하루에 3시간이 소요된다는 거냐?

D : 사는 집이 직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렇다.

M&Y : 쏘련에서는 그냥 자기가 사는 집에서 가까운 직장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멀리 출퇴근할 필요가 없다(이 부분에서는 내가 경악했다. 직장을 그런 식으로 구하다니...^^).

내가 쏘련의 주거나 교통 사정이 한국보다 낫다고 본 것은 실제로 디알로그 M이사의 아파트에 한번 들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집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30평이 채 못되는 크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지위에 비해 의외로 소박한 규모에 놀랐지만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주거 공간의 크기나 건축 자재, 내부 디자인에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물론 거실에서 차를 대접받고 돌아왔기 때문에 구석구석 살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보고들은 내용이 무척 단편적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M&Y와의 대화는 내가 처음에 얘기했던, 쏘련의 민중은 건강하지만 쏘련의 지도층은 전혀 그들을 지도하고 이끌만한 역량이나 소신, 리더십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내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비록 냉전 분위기는 많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적성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 '좋은 나라'라고 평가할 수 있다니... 게다가 쏘련 공산당원이고 쏘련 최고의 소프트웨어 국영기업의 고위직 인사가 그런 발언을 하다니...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강 해이이자 내부 붕괴의 현상으로 비쳤다. 특히 미국에 대한 호평이 단순히 미국의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인상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미국이 국제정치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대학 신입생만도 못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들은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미국이 당시 수행한(것으로 알려진) 역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풍요에 대해서는 무척 부러워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풍요를 얻기 위해서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이해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모습은 결코 이들 한두 사람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나라의 나름 배웠다는 사람들,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모습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쏘련공산당원이고 사회의 지도층이라면 이런 나라는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이것이 당시 내가 얻은 결론이었다.

내가 이런 결론을 얻은 것이 그들의 정치경제 사회적 인식이 꼭 부정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인식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당시의 내 생각보다 더 객관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혹 그렇다고 해도 쏘련처럼 철저한 이념적 기초 위에 세워진 나라의 지도층이 저렇게 안이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하기도, 용납하기도 어려웠다. 물론 당시의 대화는 무척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내가 기록해야 할 또 하나의 대화, 모스크바의 조선인 시인 리진 선생과의 대화는 아무래도 다음에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