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바마 역시 지난 미국 민주당 경선 국면에서 힐러리가 후보를 사퇴하면서 지게된 선거 빛을 대신 값아주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중도 사퇴할 경우 지게 될 선거 비용을 보전해 줄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선거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통로는 매우 제한적인 반면,  레이스 과정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사퇴를 하게 되는 후보에 관해서는 아무런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다. 이 경우에 후보 단일화 협상에 나서는 당사자들이 선거 비용 보전이라는 이유 때문에라도 후보 단일화에 망설이게 될 것이라는 점은 현실적으로 불보듯 뻔한 것이다. 이것은 <협상을 통한 상호 합리적 이해 관계의 창출>이라는 정치의 이념에도 크게 반하는 것이다. 

2. 선거 국면에서 동원되는 정치 자금의 현실적인 규모와 현행 선거법이 규정하고 있는 법정 선거 비용 한도간의 괴리는 하루 빨리 수정되어야 한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이명박, 정동영 측에서 각각 신고했다고 하는 350억을 넘어가지 않는 규모의 선거 비용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선거 국면에서 큰 규모의 돈이 동원되는 것 자체는 악이 아니다. 본질적인 폐해는 그  돈이 공적인 통로를  통해서 명시적인 방법으로 조달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엽관의 관행처럼 테이블 밑에서 묵시적인 거래를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선거에 수반되는 관련 정보들이 불가피하게 왜곡되거나 이념적인 착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벌들의 중점적인 자금 지원하에 공직에 출마한 사람들이< 중산층과 서민의 이익을 위한다>는 모순적인 레토릭을 내세우더라도 그것이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치적인 토양이 만들어 질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투표를 하는 일반사람들은 내가 찍으려고 하는 정당 혹은 사람이 과연 어떤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임하게 된다. <누가 어떤 집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지> 희미하게 짐작하는 것과,  명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판단 형성에 있어서 현저히 다른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선거 자금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로부터 지원 받고 있는지가  왜곡없이 공개된다면,  유권자들은 그 정당 혹은 선거인이 어떤 집단의 이해 관계를 더 중점적으로 반영하려고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예컨대, A 당의 대선 후보가 거대 재벌 a, b,c로 부터 각각 300, 200, 100억의 선거 자금을, 그리고  B 당의  대선 후보가 거대 재벌 d 와 중소 기업 연합체 e로부터 각각 200억, 100억의 대선 자금을 각각 합법적으로 지원 받았다고 해보자. A 당의 정책은 대기업 이익 우선 정책으로, B 당의 정책은 중소/ 중견 기업 활성화에 좀 더 역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유권자들은 예상해 볼 수 있다. 선거 비용 조달처와 규모가 가감없이 공개가 될 때 유권자들이 받는 불이익은 없으며, 유권자들은 보다 자신의 이해 관계에 맞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3. 결국 선거 재정 입법에서 핵심은 선거비용 규모의 현실을 규범에 반영하면서, 그것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선거를 통해서 형성되는 민의가 정확한 정보에 기초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곽노현을 위기에 몰아넣은 선거 형법 공선법 230조는 정치적으로도 그리 올바르지도, 현명하지도 못한 입법이다. 이 경우 당사자가 곽노현이 아니라 공정택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규모가 <후보 매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들어간 선거비용을 보전해 주기 위한 차원>의 규모를 넘지 않은 것이었다면, 사정은 마찬가지다. 비슷한 공약과 정책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단일화해서 유권자들의 선택지를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 어째서 비난 받을 만한 일인가? 공선법은 <매수>와 <선거 비용 보전>의 정치적인 차이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매우 unwise 한 것이다.

 4. 돈 줄을 죄이는 것이 아니라 돈이 조달될 수 있는 통로를 현실화 시켜주면서 공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 문화 발전에 보다 현실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적어도 그런 제도 하에서 만들어지는 민주주의는 지금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보다 훨씬 더 솔직한 민주주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