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전히 세일러님이 무얼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복잡한 경제 모형의 전개 과정중 세일러 님이 헷갈리고 있는  그 지점에서 같은 방식으로 헷갈리지 않고서는 그 분이 주장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만)대부분의 주장 내용및 파생된 논쟁은 포기하고 최초의 글중에 인용된 부분에 관해서만 거칠게 접근해보았네요.



“은행이 당신에게 담보대출로 10만 달러를 빌려주었다면 거기서는 원금만 발행한다. 그 돈을 당신이 소비하면 사회 안에서 유통된다. 은행은 당신에게 앞으로 20년에 걸쳐 20만 달러를 갚으라고 한다. 그러나 나머지 10만 달러, 즉 이자 부분은 은행이 발행하지 않았다. 대신 은행은 당신을 각박한 세상으로 내보내 다른 모든 사람과 싸우라고 한다. 나머지 10만 달러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

탐욕과 경쟁은 변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결과물이 아니다. …탐욕과 결핍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 우리가 이런 돈을 사용하는 데 따른 직접적인 결과로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증폭되어 왔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이 세상에는 분명히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일거리가 있다. 그러나 빚을 모두 갚을 만큼 충분한 돈은 없다. 결핍은 우리 통화 속에 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 싸워야 하는 것이다.”


-베르나르 리에테르(Bernard Lietaer)



 
우선 인용된 첫번째 단락은 발권 은행이 화폐 발행을 통해서 무이자의 화폐를 유이자의 금융자산으로 대체함으로서 획득하는 이익 즉 화폐 시뇨리지에 관한 내용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리에테르 교수의 애초의 주장에 살을 덧붙여 내맘대로 해석해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 파운드화를 발행하는 RBS(Royal Bank of Scotland)는 지급준비율만 준수하면 담보에 따라 통화 발권이 가능하죠. 그리고 대출에 대한 이자를 부과합니다. 자 10만파운드를 우리가 빌렸다면 20년에 걸쳐 우리는 20만 파운드를 은행에 갚아야 합니다(?).  은행이 추가적으로 발권하지 않고 수출입을 통한 국제 통화 이동이 없다면 우리는 국내에 있는 누군가의 손에 있는 10만 파운드를 빼앗아서 (혹은 용역 및 재화를 제공하고) 은행에 상환해야 합니다. 즉 은행은 발권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찍어낸 돈의 2배를 벌 수 있는 것이죠. 과거에는 금태환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은행은 예금에 준하는 금을 보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폐지되고 국가가 지급권을 보장하게 되면서 은행은 단지 발권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앉아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발권력을 무기로한 은행의 탐욕은 사람들로 하여금 빚을 지게 만들고 이 빚으로 인한 화폐의 수요 증가는 경쟁을 야기하게 되었단 뜻으로 읽힙니다.


두번째 단락은 전통적인 문제의식의 문학적 수사일 따름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본성이 불변하는 것이냐,  사회의 영향을 받는냐,  받는다면 얼마나 받느냐, 사회란 과연 개인의 단순합이냐 등의 문제는 전통적인 인문학의 질문에 속하며, 저자는 자신의 세계관을 피력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저자의 논지는 케인즈의 화폐이론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케인즈는 화폐경제의 심리적 측면, 행동적 측면을 부각했다고 이해하고 있는데, 저자의 입장은 마르크스경제학에 입각한 원론적인 문제의식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제가 그쪽으로 지식이 거의 없어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결국 화폐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는 아니고,  비생산적인 금융자본의 이윤착취가 문제라는 뉘앙스 같네요.


숫자 그대로 "10을 빌려줘놓고 20을 달라네"식으로 해석한 세일러님의 경우  발권 은행의 화폐시스템에 대해 비판하면서 정작 '화폐' 그 자체에 대한 이해도는 현저히 떨어지는것 같네요. 화폐라는 것은 그 자체로 어떤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교환을 통해서 가치를 대표하죠. 그 교환의 정도가 얼마나 이루어지느냐가 곧 물가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 정말로 100억원만 주고는 110억원을 돌려내라고 한다면 그저 물가만 10% 오를뿐 실물적으로 부담이 10%만큼 더 오른다고 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죠. 사실 경제 모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건 이자율 그 자체가 아니라, "실질이자율 - 실질성장률" 이기 때문입니다.  이론상으로 이것이 0이 아니라 양수로 계속 유지가 된다면, 원글의 논리가 적용될 여지가 있을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실질이자율 - 실질성장률 이 양수로 유지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네요

굳이 따지자면 발권은행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하여 물가가 상승한 것에 대한 사회의 비효율 발생으로 돌아오는 몫이 그만큼이다 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작위적이고 해석의 비약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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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글을 다 쓰고 혹시나 해서 "베르나르 리에테르" 교수를 검색어로 돌려봤는데 대안화폐 혹은 공동체 화폐를 연구하고있는 분이었네요. 너무 길어서 저는 읽지 못했는데 혹시 관심있으신 분은 아래 첨부 자료를 읽어보시길요.
 

m_free20060524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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