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이 2억원을 박명기에게 지급한 것을 두고, 진보진영은 사퇴의 댓가가 아니라 선의로 준 것임으로 공직자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았는데도 검찰이 정치적 표적수사를 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종전에도 이런 진보진영의 태도에 대해 비판의 글을 올렸지만, 최근에는 진보진영 내에서도 곽노현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마치 인간의 선의를 믿지 못하는 세속적이고 영혼도 감정도 없는 메마른 인간으로 매도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없어 또 이렇게 글을 쓰게 됩니다. 

서영석 전 서프라이즈 대표, 박동천 전북대 교수, 박재동 화백, 최재천 의원, 김진애 의원, 나꼼수의 김어준, 정청래 전의원  등 소위 진보민주진영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연일 곽노현의 선의를 내세우면서 곽노현 감싸기에 열심입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곽노현의 됨됨이를 높이 평가하고 박명기에게 2억을 준 것을 선의로 믿어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개인의 믿음을 법의 영역에서도 관철시키려 합니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개신교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개신교 신자들이나 개신교 사회(교회)가 야훼가 유일한 신이며 구원받는 길은 예수를 통해야만 한다는 종교관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고 그들끼리 그런 믿음으로 의지하고 평안을 얻는다면 그것을 제3자가 상관할 이유도 없으며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자기들의 종교관을 공적인 영역에서 관철하려 할 경우, 과연 이것을 우리 사회가 수용해야 할까요? 내가 믿는 종교가 진리이니 우리 사회도 이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운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용납할 수 있습니까?  지금 곽노현 사태를 바라보는 진보진영의 태도가 딱 우리나라의 근본주의적, 문자주의적 보수적 개신교의 이런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자기의 믿음만이 진리이며,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과 종교관은 악하고 영혼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독선과 오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법은 합리적 의심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집니다. 각 개인의 사상과 양심, 청렴도를 평가해서 만들 수가 없습니다. 법이 개인의 개별 상황을 고려하여 적용된다면 형평성과 공정성을 상실하게 되고 법의 안정성은 위협받게 됩니다. 개인의 사상과 양심은 누구도 재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그토록 외쳤던 진보진영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번 곽노현 사건에서는 이것을 주관적으로 재단하여 공직자선거법을 피해 가려 합니다. 매번 법이 개인의 사상과 양심, 청렴도를 고려하여 적용된다면 결국 각 개인의 사상과 양심이 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일방의 주장과 선언으로 양심과 청렴도를 인정할 수 없음으로 객관화를 위해 재단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정녕 원하십니까? 이런 식으로 진보진영이 곽노현을 감싸고 돌면 나중에 이에 의한 역작용은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지 참 난감합니다.


이러한 진보진영의 태도는 19세기의 공산주의, 20세기 북한의 주체사상이 왜 성공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는지 모르는데 기인한 것 같습니다.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이 인간의 선의와 자발성을 기초해 사회의 운용원리를 만들었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우월의식을 간과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인간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공산주의 이론 그 자체가 이상적이었던 것도 실패의 원인이지만, 공산주의가 사회발전단계의 마지막이라 단정 짓고, 주체사상은 무오류라는 오만과 독선에 찬 것이 실패의 더 큰 원인이었죠. 자본주의가 자기의 불완전성과 오류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수정, 보완하면서 변화된 현실에 대응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세계 각국의 사회운용원리로 살아남은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은 19세기와 20세기의 세계관에 갇힌 퇴행적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합리적 의심 대신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을 공적인 시스템(법)에서 주관적으로 적용하려 하고, 포괄적이고 일관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법을 개별적 특수성으로 돌파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지요. 그 돌파가 성공했을 때 앞으로 다가올 악용으로 인한 엄청난 부작용과 그에 따라  대중들, 특히 약자의 피해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합니다.


곽노현 사태는 어렵게 볼 것이 없습니다. 곽노현의 자리에 이원희를 대입해서 넣어 보고, 그래도 이원희를 옹호할 수 있고 무죄를 주장할 수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면 됩니다. 이 질문을 저는 수없이 했지만 이에 대해 명확히 답을 주는 곽노현을 옹호하는 진보진영의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곽노현이 무죄라고 주장하는 진보진영 여러분! 이에 대해 답 좀 주세요.

우리는 선한 사람이라 곽노현의 선의를 믿는 것이고 악하고 세속적인 사람 눈에는 곽노현의 선의가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독선과 오만은 이제 거두십시오. 법은 "나는 나를 믿는데 너는 왜 나를 못믿느냐"는 곽노현의 말이 아니라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는 김국환의 말에 기초해서 만들어졌고, 또 그렇게 만들어져야 법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자기 안정성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진보진영은 하루 빨리 형평성과 일관성을 되찾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