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들어온 ‘좌파 우파’, ‘진보  보수’라는 이분법을 우리도 당연하게 쓰고 있다. 정말 이 이분법이 우리의 정치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게 정치 수준이 높은 서양에는 맞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보수정당이라 불리는 한나라당에 대해 얘기해보자. 나는 지금까지 민주당, 민노당, 무소속에 투표를 해봤지만 한나라당이나 그 전신 신한국당이나 민정당에는 투표한 적이 없다. 내가 한나라당을 거부하는 이유가 그들이 보수고 우파 때문일까? 전혀 아니다. 나는 한나라당을 보수나 우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이 건전한 보수고 우파면 지금이라도 부패한 진보보다 더 지지할 의향이 있다.


한나라당은 친일파이며 독재자였던 박정희의 공화당 유산을 물려받았고 아직도 박정희를 숭상한다. 게다가 친일과 친미를 하는 사대주의를 보이고 반민주적인 국가보안법을 신봉하며 반공냉전주의에 찌들어 있다. 이것은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고 도덕이냐 부도덕이냐, 더 정확히 말하면 정의냐 불의냐의 문제다. 따라서 내가 한나라당을 보수나 우파 대신 ‘수구반동’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정책에 있어서 우파라는 한나라당과 한나라당이 좌파라고 욕을 하던 노무현 정권과의 차이가 클까?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 파병을 하는 종미였고 한나라당도 종미다. 노무현정권은 평택과 대추리에서 주민들을 때려잡았고 한나라당정권은 제주강정에서 때려잡고 있다. 노동자들 때려잡는 것도 똑 같다. 노무현정권이 이건희라는 재벌에 무릎 굻었고 한나라당 정권도 친재벌적이다. 노무현 정권이 새만금 삽질을 했고 한나라당은 4대강 삽질을 한다.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추진했고 한나라당 정권도 한미 FTA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의석의 과반수가 넘었던 노무현 정권 때 국가보안법이 유지됐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도대체 두 정권 사이에 정책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느냔 말이다. (북한에 대한 입장에 차이가 있으나 이것은 좌파/우파 차이 때문이 아닐 것이다)


최근에 무상급식 문제가 불거지면서 복지정책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타났지만 (민노당은 모르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수준 높게 정책의 차이 때문에 갈라지는 게 아니다. 그럼 뭐 때문일까? ‘공정과 불공정’, ‘정의냐 불의냐’의 문제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한나라당보다 상대적으로 더 정의로와 보이니까 지지하는 거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자기들의 (계급이나 지역에 따른)기득권 때문에, 또는 (쥐뿔도 없는데 한나라당 지지하는 경우) 전통적 세뇌 때문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일 게다.


이처럼 부정확하고 모호한 보수/진보라는 기준보다는 정의/불의라는 기준이 현상을 더 정확히 반영한다. 안철수 현상이 기존의 틀인 ‘진보와 보수’ 구도를 깨며 탈정치화를 촉진했다고 말들 하는데, 사실은 탈정치가 아니라 안철수 현상을 통해 ‘진보와 보수’라는 구도는 허상이었고 ‘정의와 불의’라는 구도가 더 올바른 구도라는 것이 드러났을 뿐이다. 즉, 대중들은 기존 정치꾼들은 불의(또는 부패, 부도덕)고, 때 묻지 않은 장외 인물들은 정의(또는 청렴, 도덕)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실을 왜곡하고 수구반동을 미화하는 ‘진보 對 보수’라는 구도 대신 ‘정의 불의‘라는 구도를 사용하는 것이 현상을 더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