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의 미스터리 – 맹점과 노화
 

인간의 눈과 시각 처리 메커니즘은 놀랍기 짝이 없다. 아직 인간은 인간만큼 볼 수 있는 로봇을 거의 흉내도 못 내고 있다. 시각학자는 연구가 계속될수록 인간의 시각 메커니즘의 정교함에 놀라고 인간의 눈을 흉내 내려고 하는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여전히 좌절을 반복하고 있다. 다윈 이전에는 눈과 같이 정교한 구조의 존재는 오직 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의 눈에는 이런 놀라운 정교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는 맹점이 있다. 이것은 눈에서 뇌로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 다발이 망막을 꿰뚫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신경 다발이 지나가는 곳은 볼 수 없다. 우리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맹점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살아가는 이유는 맹점의 존재를 은폐하도록 설계된 또 다른 놀라운 메커니즘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눈과 매우 흡사한 오징어의 눈에는 맹점이 없다. 맹점이 없도록 눈을 설계하는 것은 매우 쉽다. 신경 배선을 반대 방향으로 뽑으면 되는 것이다. 맹점의 존재는 현대 과학자들이 신보다는 자연 선택을 믿는 이유 중 하나다. 눈과 같은 놀라운 구조를 만들어낸 신이 맹점 같은 바보 같은 실수를 했다는 점은 너무나 이상해 보인다.

 

물론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난점을 해결할 방법들이 많이 있다: “신이 인간보다는 오징어를 더 사랑하사……”, “인간의 오만함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 “그냥 재미로……”, “눈을 만들다가 졸아서……”, “에덴 동산에서 살 때에는 맹점이 없었는데 원죄를 지어서……”, “맹점을 만들고 거기에 맹점 은폐 메커니즘까지 만들어서 재주를 뽐내려고……”.

 

오징어의 눈과 인간의 눈을 비교해보면 (이미 눈이 있다고 가정할 때) 맹점이 없도록 설계를 바꾸는 것이 매우 쉽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노화는 어떤가? 늙지 않는 생물을 만드는 것은 맹점을 없애는 것만큼 쉬어 보이나? 전혀 그렇지 않다. 인간과 같이 엄청나게 복잡한 구조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인간이 늙지 않도록 유지·보수하는 것은 인간이 보았을 때 매우 어려운 일일 뿐이다. 인간의 일생을 살펴보자. 인간은 단 하나의 세포인 수정란에서 출발하여 대략 20세 정도에 젊음의 정점을 이루다가 그 후 조금씩 늙어간다. 수정란에서 20세까지 이어지는 발달 과정과 20세에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노화 과정을 나누어서 생각해 보자. 달랑 하나의 세포에서 20세 성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이나? 아니면 20세의 성인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달랑 하나의 세포에서 20세의 성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인간은 왜 발달이라는 그 엄청나게 어려운 과업은 잘 해내면서 상대적으로 쉬운 유지·보수라는 과업은 못해내는 것일까? 이것은 놀라운 눈을 만들어내면서 맹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노화에는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 그리고 얼핏 생각해보면 노화는 진화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 선택은 번식 경쟁이다. 만약 늙지 않고 불로장생한다면 더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생물이 불로장생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만약 불로장생해서 자식을 더 많이 낳는 것이 번식 경쟁에서 승리하는 길이라면 도대체 왜 생물은 발달이라는 놀라운 과업을 해내면서 이미 발달한 신체를 유지하지 못해서 늙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일까?

 

 

 

 

 

잘못된 설명
 

많은 사람들이 노화라는 현상에 너무 익숙해서 아예 “왜 늙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일부는 이런 질문을 던졌으며 그에 대한 그럴 듯해 보이는 해답을 제시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생물이 불로장생하면 생물이 너무 많아져서 후손들이 살 자리가 없다는 수학적 필연성에 주목했다. 그들은 “후손에게 살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라는 답을 제시하기도 했다.

 

20세기 전반의 진화 생물학자들 중에는 이런 답을 집단 선택이라는 논리로 포장했다. 어떤 집단은 늙지 않고 어떤 집단은 늙는다고 하자. 늙지 않는 집단의 경우에는 개체수가 너무 많아져서 결국 공멸할 것이다. 그래서 늙는 집단이 자연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단 선택론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알기 쉬운 설명으로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있다. 좀 더 깊이 파고 들고 싶은 사람은 조지 윌리엄스의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A Critique of Some Current Evolutionary Thought』과 『Natural Selection: Domains, Levels, and Challenges』을 참조하라. 내가 쓰고 있는 『진화 심리학의 이론적 기초』 중 “31. 집단 선택론”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프로이트는 죽음 욕동(죽음 충동, 죽음 본능)이라는 개념으로 죽음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삶 욕동과 죽음 욕동이 있다. 그리고 죽음 욕동 때문에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린다. 동양의 음양 이론을 닮은 이런 설명은 설명이라기보다는 현상의 재기술(redescription)에 가깝다.

 

 

 

 

 

근접 원인과 관련된 설명
 

많은 생리학자들이 생리적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어서 노화를 연구했다. 여기에서 그런 연구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그런 연구 중에는 일리가 있는 것들도 있고 터무니 없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나이가 들면서 생리적 메커니즘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정확히 알아낸다고 해도 노화의 원인을 모두 해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 생리적 메커니즘들이 그런 식으로 진화했나?”라는 궁극 원인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

 

 

 

 

 

진화 생물학자들이 해답을 발견하다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20세기 후반에 드디어 노화의 수수께끼가 근본적인 수준에서 풀렸다고 믿는다. 나 역시 진화 생물학자들이 내 놓은 설명이 기본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진화 생물학자들은 왜 생물이 늙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원래 불로장생하는 생물은 없었겠지만 논의의 편의상 어떤 생물이 불로장생한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불로장생과 불사는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지적해야겠다. 불로장생은 노화가 일어나지 않음을 뜻한다. 반면 불사는 절대 죽지 않음을 뜻한다. 생물은 늙지 않더라도 죽을 수 있다. 이것은 팔팔한 20세 인간들도 때로는 죽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명백하다. 인간은 사고, 살인, 질병 등으로 죽을 수 있다. 물론 다른 생물들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가정한 불로장생하는 생물의 경우 평균적으로 1년 동안 10%가 여러 가지 이유로 죽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이 50%이든 1%이든 0.000001%이든 아래에서 전개하는 논리는 성립한다. 그리고 논의의 편의상 그 생물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성체가 되며 번식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태어난 지 1년 후에는 90% 정도가 살아남는다. 2년 후에는 80% 정도가 살아남는다. 3년 후에는 73% 정도가 살아남는다. 4년 후에는 66% 정도, 5년 후에는 59% 정도, 6년 후에는 53% 정도, 7년 후에는 48% 정도가 살아남는다. 7년 후에는 절반 미만만 살아 남는 것이다. 14년 후에는 1/4 미만, 21년 후에는 1/8 미만, 28년 후에는 1/16 미만, 35년 후에는 1/32 미만, 42년 후에는 1/64 미만, 49년 후에는 1/124 미만만 살아남는다. 그리하여 100년 후에는 극히 일부만 살아 남을 것이다.

 

이런 생물에 어떤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겼다고 하자. 그 돌연변이는 포식자를 더 잘 피하게 한다든지, 짝에게 더 예뻐 보이게 한다든지, 자식을 더 잘 돌보도록 한다든지, 경쟁자를 더 잘 물리치도록 한다든지 해서 번식에 약간 좋은 영향을 끼치지만 100세 이후에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과연 이 돌연변이는 개체군 내에 퍼질 수 있을까? 퍼질 수 있다. 불로장생한다고 해도 어차피 여러 가지 이유로 죽기 때문에 100세까지 살아남는 개체는 극히 일부이다. 따라서 100세 이후에 발휘되는 표현형은 자연 선택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결국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돌연변이들은 계속 쌓일 것이다. 그러면 결국 나이가 들면서 신체는 점점 허약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화다.

 

이 논리에 따르자면 사고나 질병으로 금방 죽을 확률이 높을수록 더 빨리 늙도록 진화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거북이처럼 딱딱한 껍질이 있어서 포식자에게 잘 잡혀 죽지 않는 종의 경우에는 느리게 늙는다. 반면 쥐처럼 늙지 않더라도 포식자에게 잡혀 먹을 확률이 매우 높은 종의 경우에는 빠르게 늙는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인간은 왜 늙는가 - 진화로 풀어보는 노화의 수수께끼(스티븐 어스태드)』를 참조하라.

 

 

 

 

 

신체의 모든 부분들이 거의 동시에 부실해진다
 

이번에도 논의의 편의상 어떤 생물의 각 기관들의 노화 속도가 매우 다르다고 가정해보자. 예컨대 심장은 50세 정도면 거의 작동하지 못할 정도로 부실해지는 반면 뇌는 1000세가 되어도 팔팔하다고 하자. 이럴 경우 진화는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까?

 

심장이 망가지면 살 수 없다. 따라서 그 생물은 50세 정도 되면 거의 모두 죽는다. 따라서 50세 이후에 뇌가 팔팔하든 부실하든 그것은 자연 선택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돌연변이가 생겼다고 하자. 그 돌연변이는 뇌를 유지·보수하는 데 자원을 덜 투자하도록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그 돌연변이가 있는 개체는 뇌가 1000세까지 팔팔한 것이 아니라 500세까지만 팔팔하다고 하자. 대신 뇌에 자원을 덜 쓰기 때문에 신체의 다른 기능이 좀 더 건강해진다. 그리하여 그 개체는 심장이 50세까지만 팔팔한 것이 아니라 60세까지 팔팔하다고 하자.

 

그 돌연변이는 개체군 내에 퍼질 수 있을까? 그렇다. 왜냐하면 어차피 100세가 되기 전에 사실상 모두 죽기 때문에 뇌가 1000세까지 팔팔하든 500세까지 팔팔하든 상관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심장이 10 년 동안 더 작동할 수 있다면 이것은 번식상 큰 이득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심장과 뇌가 거의 동시에 부실해지는 쪽으로 진화할 것이다. 이 논리는 모든 신체에 적용될 것이며 결국 신체의 모든 부분들이 거의 동시에 부실해지도록 진화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여러 생물들을 관찰해보면 실제로도 그렇다.

 

 

 

 

 

불로장생은 불가능한가?
 

이 질문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이 새로 진화하거나 유전 공학으로 유전자를 바꾸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인간은 불로장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하나의 해석이다. “인간이 불로장생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해석이다.

 

첫 번째 질문이 실용적으로 의미가 있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수억 년 후의 자손들이 불로장생을 하든 말든 그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알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 또는 자신의 가까운 친족이나 친구가 불로장생하길 바란다. 이 질문에 대해 노화를 연구하는 진화 생물학자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답을 내놓는다. 그 이유는 생물의 모든 부분이 거의 동시에 부실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을 고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공 심장처럼 신체의 모든 부분을 인공화하지 않는 이상 불로장생은 불가능해 보인다. 유전자를 바꾸는 일도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모든 유전자들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로장생하는 생물의 진화는 불가능한가? 그것은 가능하다. 노화가 진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연 상태에서 자연 선택이 작동하는 방식에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생물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 작동하는 선택압이 항상 늙은 시절에 작동하는 선택압보다 크기 때문에 노화가 진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위 선택으로 이런 선택압을 역전시킬 수 있다. 이것은 인위 선택으로 야생에서는 살아남을 가망성이 없지만 인간이 보기에는 예쁜 여러 애완 동물이 진화한 것과 마찬가지다.

 

불로장생이 진화하도록 인위 선택하는 방법은 노화의 진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만큼이나 단순하다. 어떤 종의 평균 수명이 50세라고 하자. 자식을 낳는 대로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 기록한다. 부모가 늙기를 기다렸다가 몇 살에 죽는지 기록한다. 만약 양쪽 부모 중 한 마리라도 50세 이하에 죽으면 그 부모의 자식은 죽이거나 불임 수술을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평균 수명이 조금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기준을 51세로 높인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인위 선택을 하면 된다.

 

인간을 대상으로 이런 인위 선택을 하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초파리 같은 만만한 생물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은 어느 정도 허용된다. 게다가 초파리는 번식 주기도 짧아서 인위 선택을 할 때 적어도 처음에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실험을 해서 초파리의 평균 수명을 상당이 늘렸다는 연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이런 실험을 계속한다면 아마 초파리는 불로장생하도록 진화할 것이다.

 

 

2009-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