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놓고 며칠간 세상이 들썩였습니다. '안철수 현상'을 두고 각자의 입장에서 말이 많지만, 안철수 현상이 기존 정치구조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생각에 동의합니다.

다만, "기존 정치불신+새 정치 열망"이라는 총론말고, 각론으로 들어가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안철수'를 각기 해석한 주장들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에 이어 나오는 현실정치에 대한 개선방안들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못할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기존 정치 시스템이 민의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선거제도에서 찾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현행 선거제도가 소수정파가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안철수가 신드롬적인 인기를 끈 이유가 선거제도 때문이라는 주장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현행 소선거구 다수대표제 하에서 제대로 대의되지 못하는 소수정파는 장애인, 여성, 파편화된 노동자, 농민이지 안철수에 열광한 대도시(수도권) 지식 노동자들이 아닙니다. 특히 '강남좌파'라고 불리는 다른 많은 명망가, 예를들어 조국, 박원순, 유시민, 문재인 등에게는 관심이 없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안철수에게는 호응한 것을 보면, 현행 선거제도와 안철수의 인기는 큰 상관성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 다음으로는 '강남좌파', '리버태리안'들을 안철수가 대변했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이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아 사실 동의합니다. 강남좌파에 대해서는 그 개념정의부터 의견이 분분하기에 그건 빼고, "정치사회문화적 진보+경제적 보수=수정된 리버태리안"이라는 백수광부님의 리버태리안의 개념정의를 수용하면, 아마도 이들이 안철수를 선택했다고 보는 것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 수정된 리버태리안적인 정치 노선(?)을 민주당 이하 진보개혁세력이 집권 전략으로 채택하여아 한다는 점입니다. 백수광부님의 주장을 다 읽지는 못해서 정확히 백수광부님이 수정된 리버태리안 노선을 진보개혁세력이 채택해야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집권 전략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인지, 리버태리안들을 포용해서 함께 해야한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백수광부님 뿐만 아니라, 안철수에게서 "정치사회문화적 진보+경제적 보수"를 발견한 사람들이 기존 정치구도, 구체적으로는 기존의 진보개혁세력의 '이념적 폐쇄성'을 지적하며 기존의 보수,진보를 '극복'한 제3의 길을 추구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일단 안철수가 정말 '수정된 리버태리안'인지 불명확합니다. 그가 살아온 삶의 이력과 각종 발언, 행위를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략 유추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철수가 어떤 정치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재벌의 횡포, 불공정한 경쟁, 20~30대의 팍팍한 삶에 대해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을 안철수가 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으나, 젊은이들이 블루 오션을 찾아서 자기 삶을 개척해야 하고 그것의 전제로 재벌 등의 기득세력이 방해를 차단하기 위해 공정한 경쟁을 말한다는 것 이상의 것을 그에게서 찾지는 못하겠습니다. 사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떤 정치인, 명망가 개인에 대한 섣부른 지지는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정당에 대한 지지와 정치인 개인에 대한 지지는 그래서 구별되는 것입니다. 정당은 정당의 강령, 정강정책, 그리고 그 정당의 역사, 그 정당이 각종 선거에서 보여준 모습 등을 통해 총체적으로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입장과 사회가 지향해야 할 큰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어떤 개인이 어떤 정당에 입당하면, 그는 많은 설명을 할 필요없이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쉽게 인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무소속'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면 그의 정치적 입장 등에 대해 사람마다 말이 다르고 그 개인의 행동에 대해 각자 입장에서 제 멋대로 해석합니다. 정당에 가입한 정치인에 대해서도 그의 노선 등에 대해 각종 검증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는데, 아무리 일관된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어떤 한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유권자들에게 뚜렷하게 정당만큼 알릴 수 있을까요. 전 회의적입니다.

아무튼 일단 안철수가 수정된 리버태리안이라고 하더라도 문제입니다. 정치사회문화적 진보+경제적 보수가 안철수와 그 지지자들의 정체성이고, 이것이 대세라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이런 방향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정치사회문화적 진보는 곁가지이고 우리 사회의 경제를 어떻게 바라고느냐가 핵심인데, 지금 사회가 안고있는 경제문제를 수정된 리버태리안적인 관점에서 푸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는 "대학진학률 80% but 너무 좁은 '좋은' 취업시장", "일단 직장을 잡았어도 너무 사는 게 빡세다" 이 두가지 점을 파고들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는 안철수만이 아니고 진보든 보수든 모두 예전부터 문제제기를 해왔고, 나름대로 꾸준히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30대가 생존하기 어렵고, 40대 이상도 불안한 삶, 즉 우리 사회의 중추가 살기 어려운 점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 즉 저출산과 고령인구 폭증, 그리고 양극화 역시 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만 이것은 당장 손에 잡히는 문제가 아니죠. 취업이 안되고, 언제 잘릴지 모르고, 잘리면 뭘 해야할 지 모르는 것이 당장의 문제지, 내가 아이를 조금 낳거나 남들이 애를 안낳는 것이나 노인들이 많아지고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일단 당장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안철수가 수정된 리버태리안들은 저출산, 고령인구 폭증, 그리고 양극화에 대해서 별다른 입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수정된 리버태리안의 '경제적 보수'의 입장을 따른다면, 이 문제들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경제적 '보수'라는 단어에 집중한다면 진보개혁진영에서 꾸준히 주장하는 복지확대에 대해서 그리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것 같은데, 사실 뭐 어떤 주장을 그들이 한 적도 없고, 그들을 대표하는 구체적인 정치세력도 없는 마당에, 안철수 개인의 삶의 이력이나 각종 발언, 청춘 콘서트에서의 활동만 놓고서 이래 저래 말하는 것도 우습죠.

어쨌든 안철수는 대기업의 횡포 방지를 통한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그 환경에서 20~30대들이 치열하게 살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쥐어지는 구조를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에 부수해서 경쟁에서 낙오한 자들을 구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사회 안전망에 대한 주장은 당연히 따라오겠죠. 그런데 이런 주장은 어떤 특정한 정치적 노선이라고 할만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 횡포 방지'에서 한나라당이나 재벌은 '좌빨'이라는 소리를 할 수 있지만, 대기업의 일반적 활동이 아니라 '횡포'에 대한 방지이기 때문에 논쟁적이지 않습니다. 어쨌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긍한다면, 공정한 경쟁과 사회 안전망의 확보를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죠.

결론적으로 안철수나 수정된 리버태리안들의 정치적 노선이라는 것은 제가 볼 때에 우리 사회가 당면한 근본문제를 제대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대증적인 대안이든 실질적인 대안이든 어떠한 큰 고민은 없어 보입니다. 특히 안철수 자신의 발언은 아니지만, 그 측근 중 한명의 발언, "좌(민주당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우 모두 아니다"라는 발언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에 호응한 것을 보면 기존 진보개혁진영의 위 문제에 대한 대안, 즉 복지 확대에 대해서 그다지 안철수나 수정된 리버태리안이 적극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죠.


몇가지 더 쓸 게 있는데 일단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