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행위는 전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인 행위의 진정한 정치성은 그것이 온전히 정치적인 행위로 미쳐 인식되지 못할 때, 아직 다른 삶의 형태로만 보여질 때 생겨난다. 전자는 정치의 외양을 걸치고 나타나는 비정치이고, 후자는 비정치의 형식 속에 숨겨져 있는 정치이다. 삶의 정치성은 삶의 전환을 예감케 하는 어떤 힘에 근거한다. 정치는 곧 삶이다. 삶의 형식을 바꾸는 것이 곧 정치다. 

 2. 정치 속에서 살아가는 대중들은 자신의 삶 안에 놓여진 삶의 형식이 자신을 옥죄는 것을 본다. 자신의 옥죄진 삶을 보는 방식, 이것이 자신의 고유한 정치성을 규정한다. 인간이 자신을 옥죄는 악마와 자신을 해방시키는 신을 동시에 보지 못한다면, 정치는 영원히 어두운 것으로 남을 것이다. 

3. 정치는 구조가 매개하는 인간 대 인간들 간의 투쟁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삶은 자신의 적과 싸우며 동시에 자신이 처한 구조를 재창조할 것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러나 이 요구와 가장 첨예하게 맞부닥치는 자들은 역설적으로 구조 밖 어두운 곳에 있는 군중들이다. 

4. 그러므로 구조 안의 어떤 정치적인 행위에 군중이 침묵하는 것은 전혀 비정치적인 거나 무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구조 밖에서 진군하는 군중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함일 뿐이다.  

5. 정당 구조 밖에서 진군하고 있는 군중들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정치다. 

6. 군중은 개인적 삶과 정치적 삶이 가장 밀접하게 결합된 사람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개인적 삶과 정치적 삶이 동일한 구조 속에서 만들어 져 온 자들에게, 이 두 삶이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두 삶이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은, 곧 그 삶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삶은 구조 안에 머무르는 형태로는 결코 군중 앞에 만들어 세워지지 않는다.<전문 정치인> 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허구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것은 정치의 외양을 걸치고 나타나는 비정치일 뿐이다. 정치적 삶은 그것이 실제로 어떤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군중은 유리한 조건에서 태어나는 모든 것들을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유리한 것들은 언제나 구조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자기 삶의 유불리를 가리는 사유 방식은 언제나 그 사람이 구조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만을 증명해 줄 뿐이다. 정치는 오로지 삶의 형식을 바꾸는 것일 뿐이다. 

7. 지금 현재, 정치는 살았는가 죽었는가? 

8. 왜 군중들이 안철수에, 노무현에 그리고 김대중에 열광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