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년 전쯤부터 인류 중 일부가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다(개는 훨씬 이전에 길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사냥-채집 사회와는 매우 다른 온갖 양상들이 나타났다. 이것을 신석기 혁명 또는 농업 혁명이라고 부른다. 수백 년 전에는 산업 혁명이 일어나서 인류는 또 다른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인류가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면서 당연히 선택압도 바뀌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인류의 진화를 어느 정도 무시한다. 그보다는 홍적세에 사냥-채집 사회를 이루고 살던 시기에 일어난 진화에 초점을 맞춘다. 홍적세(Pleistocene) 2,588,000 년 전부터 11,700 년 전까지를 말한다(이전에는 180만 년 전부터였는데 2009년에 바뀌었다, http://en.wikipedia.org/wiki/Pleistocene).

 

여러 학자들이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런 지적이 옳다고 생각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학자들은 지난 1만 년 동안 인류가 진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거나 지난 1만 년 동안 인류에게는 자연 선택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동안의 인류 진화는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터무니 없는 생각이다.

 

가나자와 사토시는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에서 지난 1만 년 동안은 그 전에 비해 인간 사회가 급격히 변해왔기 때문에 진화 또는 자연 선택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화 또는 자연 선택이 아주 안정된 환경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매우 불안정해 보이는 환경에도 여러 가지 안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어떤 학자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의료가 발달한 곳에서는 진화 또는 자연 선택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먹을 것이 풍부하고 의료가 발달한 곳에서도 보통 개인들 사이에 번식 차이가 있다. 현대 산업국에서도 모두가 똑 같이 자식을 두 명씩만 낳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 명 넘게 낳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한 명도 안 낳는다. 번식에 차이가 있으면 당연히 자연 선택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가난한 사람에게도 음식과 의료가 어느 정도 풍요로워진 것은 선진 산업국의 기준으로 보아도 백 년 정도 밖에 안 되었다.

 

지난 1만 년 동안에도 인류는 진화와 자연 선택을 겪었다. 따라서 그 동안에 일어난 진화를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왜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심리를 연구할 때 주로 사냥-채집 사회의 환경에 집중하는 것일까?

 

우선 진화에서는 절대적 시간이 아니라 세대 수가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5년을 한 세대라고 본다면 1만 년은 400 세대에 불과하다. 400은 무시할 만한 숫자는 아니지만 그렇게 큰 숫자도 아니다.

 

포유류의 눈과 같이 매우 복잡한 구조가 새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세대 수가 필요하다. 얼마나 많은 세대 수가 필요한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400 세대는 눈과 같은 복잡한 구조가 새로 진화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작아 보인다. 눈처럼 지극히 복잡한 구조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가 새로 진화하기에는 400 세대는 너무 짧아 보인다. 따라서 지난 1만 년 동안 인간의 뇌 속에서 어떤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가 새로 진화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무시해도 무방할 것 같다.

 

새로운 복잡한 구조가 생기는 것은 질적 진화에 속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반면 어떤 구조의 크기가 바뀌는 것을 양적 진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양적 진화는 질적 진화에 비해 훨씬 짧은 기간 안에 일어날 수 있다. 양적 진화의 경우에는 400 세대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질적 진화라 하더라도 복잡하지 않은 어떤 것이 진화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기간이 필요하지 않다. 또한 어떤 복잡한 구조가 퇴화하는 데에는 그 복잡한 구조가 진화하는 것보다 훨씬 짧은 기간만 있어도 된다. 이것은 고도로 정교한 시계를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망치로 몇 번 두들겨도 그것을 망가뜨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면에서도 400 세대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리적인 면에서 인류 중 일부에서 지난 1만 년 동안 의미 있는 진화가 일어났다는 점에는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목축을 많이 해서 동물의 젖을 많이 먹어왔던 사람들의 경우 성인의 젖 소화 능력이 진화했다. 그 전에는 아기일 때만 젖을 잘 소화했는데 그런 개체군에서는 성인도 젖을 잘 소화하는 것이다. 민족마다 성인의 젖 소화 능력이 뚜렷이 다르며 오랜 세월 동안 목축을 해 왔던 민족의 젖 소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이제 잘 입증되었다.

 

어떤 지역 사람들은 낫모양-적혈구 빈혈증(sickle-cell anaemia, 겸형-적혈구 빈혈증)에 잘 걸린다. 이제 그 이유가 밝혀졌다. 그 병은 어떤 유전자 때문인데 그 유전자는 해만 끼치는 것이 아니다. 그 유전자는 한편으로 빈혈증을 일으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력을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유전자가 상당히 많이 있는 개체군에는 말라리아의 위험이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 (yam) 농업이 모기의 서식 환경에 영향을 끼쳐서 말라리아가 더 강력한 위협이 되었으며 이런 환경 변화 때문에 그 유전자가 퍼질 수 있었다고 한다(이 가설이 얼마나 입증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연구하는 많은 특성들은 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양적인 것이다. 예컨대 공격성과 자식 사랑의 남녀 차이의 경우가 그렇다. 이런 양적인 측면의 진화는 복잡한 구조가 새로 진화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양적인 측면의 경우에는 지난 1만 년 동안의 진화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진화가 훨씬 더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정리해 보자. 지난 1만 년은 복잡한 구조가 새로 진화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인 것 같다. 하지만 양적인 측면의 진화의 경우에는 무시할 만한 기간이 아니다. 게다가 복잡한 정교함이 필요하지 않은 질적인 진화의 경우에도 무시할 만한 기간이 아니다. 그리고 퇴화의 경우에는 매우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진화 심리학자들은 지난 1만 년 동안에 심리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진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을 선험적으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순전히 실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덕하

2011-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