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몽땅 유전자로 환원된다

 

어떤 진화 심리학자도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몽땅 유전자로 환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예컨대 미국인이 dog라고 부르는 것을 한국인은 라고 부르는데 미국인의 유전자에 dog라는 단어의 발음과 철자에 대한 정보가 있고, 한국인의 유전자에 라는 단어의 발음과 철자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주장하는 진화 심리학자는 한 명도 없다. 이런 무지막지한 형태의 유전자 환원론은 허수아비일 뿐이다.

 

 

 

인간 본성은 몽땅 유전자로 환원된다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인간 본성에 대한 정보가 거의 모두 유전자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유전자 프로그램에 의해 인간 본성이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인간 본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 중 어느 정도가 유전자로부터 오는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런 정보가 거의 모두 유전자로부터 온다는 것을 누군가 입증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인간 본성은 선택압으로 환원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우선 선택압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가설을 만들어낸다. 이 때 선택압에 대한 이야기는 어림짐작법(heuristics, 발견법)으로 쓰인다. 이 단계에서는 선택압에 대한 이야기 덕분에 무한한 가설 공간에서 덜 헤매기만 하면 만족한다.

 

하지만 결국 진화 심리학자들은 적응 가설을 입증하고 싶어한다. 즉 어떤 선택압 때문에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는 점을 입증하고 싶어한다. 만약 그런 입증이 이루어졌다면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을 선택압으로 환원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행동은 인간 본성으로 환원된다

 

많은 경우 인간 본성은 열린 프로그램이다. 즉 입력 값에 따라 출력 값이 달라진다. 따라서 인간 본성만 안다고 해서 인간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진화 심리학은 인간 행동을 몽땅 인간 본성으로 환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환원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전통적 사회 과학자들도 비슷한 환원을 한다. 다만 그들은 인간 본성에 대해 암묵적으로 가정할 뿐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애매한 상태로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가정들을 검증 가능한 가설로 명시화하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려고 할 뿐이다.

 

 

 

사회 현상은 개인의 심리로 환원된다

 

사회 현상이 개인의 심리로 몽땅 환원된다고 주장하는 진화 심리학자는 없는 것 같다. 다만 개인의 심리를 제대로 고찰하지 않고 사회 현상을 연구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온갖 자연 선택은 결국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으로 환원된다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친족 선택 이론에 대해 논할 수 없으며 이기적 유전자 요소(selfish genetic element) 또는 유전체내 갈등(intragemomic conflict)에 대해 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진화 심리학자들은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을 중시한다.

 

발달 체계 이론(DST) 주창자들은 비유전자 유전(non-genetic inheritance)이 있기 때문에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이 자연 선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진화 심리학자들 중에 이런 주장을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DST 주창자들의 이런 주장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온갖 자연 선택이 몽땅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환원의 줄기

 

유전자가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인간 본성을 만든다. 인간 본성이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개인의 심리를 만든다. 개인의 심리끼리 상호작용하여 사회 현상을 만든다. 이것을 뒤집어 보자. 그러면 사회 현상은 부분적으로 개인의 심리로 환원된다. 개인의 심리는 부분적으로 인간 본성으로 환원된다. 인간 본성은 부분적으로 유전자로 환원된다. 이것은 개인의 발생(development)과 사회 역사와 관련된 환원이다.

 

자연 선택에 의해 선택압이 선천적인 심리 기제를 만든다. 이것을 뒤집어 보자. 그러면 심리 기제는 선택압으로 환원된다. 즉 근접 기제가 궁극 원인으로 환원된다. 이것은 진화 역사와 관련된 환원이다.

 

 

 

좋은 환원론과 나쁜 환원론

 

위에서 몽땅 환원된다라는 명제는 대체로 부정되었으며 부분적으로 환원된다라는 명제는 대체로 긍정되었다. 일부 비판자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진화 심리학자들은 무턱대고 몽땅 환원된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나쁜 환원론은 허수아비일 뿐이다.

 

근접 기제를 궁극 원인으로 환원할 때 중요한 것은 입증이다. 적응 가설을 제시하는 것 자체로는 아직 제대로 환원했다고 볼 수 없다. 적응 가설을 입증할 때에만 제대로 된 환원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아직 가설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환원했다고 우기지는 않는다. 가설과 잘 입증된 이론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쯤은 잘 알고 있다.

 

 

 

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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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