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로는 성경을 비유 또는 상징으로 보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다음 구절이 진짜 진주와 돼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은 뻔해 보인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마태오의 복음서 7:6, 공동번역개정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마태복음 7:6, 개역개정판)

 

 

 

문제는 비유나 상징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명료하고 평이한 문장으로 이야기한 다음과 같은 구절에 있다.

 

여자와 한자리에 들듯이 남자와 한자리에 든 남자가 있으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하였으므로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하다.

(레위기 20:13, 공동번역개정판)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13, 개역개정판)

 

어떤 기독교인은 이 구절을 보고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어떤 기독교인은 이 구절을 보고 동성애가 사악하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할 것이다.

 

어떤 기독교인은 동성애는 사악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면서 위 구절을 해석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비유나 상징일 뿐이니까.

 

 

 

우선 위 구절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나는 위 구절을 그럴 듯하게 해석한 것은 본 적이 없다.

 

위 구절을 글자 그대로 보면 안 되고 비유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제발 한 번 해석 좀 해 주시라.

 

 

 

만약 위와 같이 명료한 언어로 쓴 구절도 비유나 상징으로 해석해야 한다면 도대체 성경에서 비유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없는 구절이 하나라도 남게 될까? 신이 존재한다는 구절도 실제로 신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비유일 뿐일까? 신을 믿어야 한다는 구절도 실제로 믿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상징일 뿐일까? 예수의 승천도 그냥 비유일 뿐일까? 천국도 그냥 비유일 뿐일까? 이렇게 몽땅 다 비유라면 그것이 종교인가?

 

그리고 위와 같은 구절도 비유나 상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면 글자 그대로 읽어야 하는 구절과 비유로 보고 해석해야 하는 구절을 가릴 수 있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냥 기독교인 각자가 지 꼴리는 대로 읽으면 장땡인가?

 

동성애자를 죽이고 싶어하는 기독교인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고, 동성애자를 치료하고 싶어하는 기독교인은 반쯤 글자 그대로 해석하고, 동성애 억압에 반대하는 기독교인은 완전히 재해석하면 되나? 이렇게 제 멋대로 해석할 거면 성경을 뭐 하러 그렇게 신성시하나?

 

 

 

우리는 말이나 글을 볼 때 비유적으로 한 말인지 글자 그대로 한 말인지 문맥이나 상황을 보고 파악한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기독교인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없어 보인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 자기 입맛에 맞으면 글자 그대로 읽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비유니 상징이니 하면서 재해석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것 같다.

 

텍스트를 해석하려면 어느 정도 일관성 있는 논리나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텍스트는 침팬지가 타자기를 쳐서 만든 무의미한 글자 덩어리와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