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 자체가 뒤로 너무 밀려 있어서 댓글 말고 본글 형식으로도 올립니다. 

 1. 두 사람 간에 금전 거래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 합의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해 지금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언론을 통해서 전달되는 양 측의 증언을 층분히 들어보고 이를 모두 종합한 이후에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는 한 쪽에서 나오는 이야기들만 듣고 사태를 재구성하는 것은 피했으면 합니다. 제가 아는 한, 그러한 합의에 관한 쌍방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처음엔 검찰에 소환된 박 교수측에서 검찰에서 했다는 증언들만 쏟아져 나왔지요. 그 이후 단일화의 중재를 담당했던 시민단체의 인터뷰가 얼마 전에 있었고,  엊그제부터 곽 교육감측 사람들의 증언, 즉 곽 협상 담당자였던 이씨나 강경선 교수의 인터뷰가 나오는군요.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검찰 소환 후에 흘러나오는 검찰측 증언들의 신빙성이라는게 사안의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면 강해질 수록 믿을만한 것이 못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저번 한명숙씨 재판 건에서 잘 드러났지요. 검찰 측 증인으로 채택되었던 사람이 법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말을 뒤집었습니다.  자신의 진술은 검찰의 강압을 통해서 강제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요. 전 이런 요소들을 왜 다른 분들이 고려하지 않는 것인지 - 저로서는 그렇게 보입니다 -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 녹취록 자체가 없는 상황, 녹취록의 존재가 적어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금태섭이 전개하는 논리는 처음부터 아무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대화 상황을 담은 문건이 없는데, <돈을 달라고 말했을 때 적극적으로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것이 결정적인 증거> 라는 주장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나요? 제 생각에 금씨는 검찰 측에서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 금태섭은 자기 글에서 '자기가 검사라면 이렇게 수사 했을 것' 이라고 말을 꺼내놓고 자기 이야기를 전개 합니다. 이것은 금태섭의 글이 검사의 입장에서 씌여진 글이거나 적어도 검사의 입장이 반영된 글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모든 사례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검찰이 내놓는 논리는 대표적으로 피의자의 유죄를 대변하는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검찰 측의 입장에서 생각된 논리 역시 유죄 논리를 대변한다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만. 유죄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곽노현에게도 무죄 추정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도덕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주장입니다. 금 변호사는 사실상  곽노현이 공선법상 후보자 매수죄 혹은 형법상 포괄적 뇌물죄를 피하가기 어렵다고 보고 있는 것 아닌가요? 

4. 직관적이고 좋은 사례를 드셨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그 사례는 이번 사태의 정합성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형법상의 객관적인 구성 요건, 즉 밖으로 드러난 사태가 확실한 상황에서 그 범죄를 저지르려는 행위자의 주관적인 의사가 과연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예로 드신 사안의 경우에서 만약 철수가 그 사무실의 냉장고가 원래 자신의 것인줄 알고 착각해서 가져간 것이라면 철수는 타인의 사물을 불법적으로 가져갈 의사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되어, 절도죄로 처벌 받지 않게 되겠지요. (이런 것을 법률 용어로 구성요건적 고의라고 합니다.)포괄적 뇌물죄 같은 경우에 거래에 어떤 <댓가성>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상황 뿐 아니라 행위자의 주관적인 요소, 즉 돈을 받은 사람과 건넨 사람의 의사가 어떤 것이냐를 종합해 본 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경우에 상황만 보면 빤한 것 아니냐...혹은 그 상황을 보고 댓가성을 유추해야 하는 것 아니냐...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이런 판단이 제가 보기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일단 돈을 건넨 시점도 단일화 협상 도중 혹은 종료 직후가 아니라 교육감 취임후 수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일어난 일이었고, (물론 공선법은 시효 시작을 돈을 건넨 시점에서 6개월내라고 명시하면서 돈을 건넨 시점에 상관하지 않고 규율하려는 입법 태도를 보입니다만...아무래도 시기가 지나면 건네진돈의 댓가성에 대한 추론은 설득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지요. 만약 곽 교육감이 취임후 수개월이 아니라 퇴임 후 수 개월 지난 뒤에 그 돈을 건넸다고 하더라도 이게 단일화 협상 댓가로 건네진 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중재를 담당했던 제 3자 측이 적어도 곽교수는 단일화 협상에 금전적인 배상이 오고가는 것에 매우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곽 교육감이 건넨 돈이 단일화의 협상 댓가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그것보다 크리티컬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곽 측 사람들과 박 측 사람들이 모여서 했다는 단일화 협상 과정의 녹취록이 있고, 그 녹취록 안에 얼마 정도의 선거 비용을 단일화 조건으로 곽 측에서 보전해 주기로 한다는 쌍방간의 구두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검찰이 증명할 수 있다면 게임은 끝나지요. 아무리 곽노현이 그 돈은 협상 댓가가 아니라 선의로 준 돈이었다고 변명을 한다고 해도 곽노현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지금 상황이 그런가요? 입장에 따라 나오는 말이 서로 다릅니다. 저는 저번 한명숙씨 재판 건 같은 전례가 있고 해서, 검찰에서 했다는 박 교수 측 증언보다는 곽교수 사람들 측 증언에 더 진실성의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다른 분들은 <선의로 준 돈 이었다>고 주장하는 곽교수가 처했을 도덕적인 상황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교육감 공정택에게 수년째 교장이 되고 싶어 했던 A라는 사람이 2억원을 주었다고 해봅시다. A는 공정택이라는 사람이 교육감의 위치에 있긴 하지만 선거를 통해 많은 빛을 져서, 그 처지가 딱해서 <선의로> 준 돈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경우에, 우리는 A의 선의를 어느 정도로 신뢰할 수 있습니까? 공정택은 비록 부채에 허덕이고 있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A의 오랜 희망을 실현시켜줄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지요. 이런 면에서 두 사람 간의 이해 관계는 정확히 일치합니다. 반면, 곽교육감이 처한 상황은 어떻습니까? 실제로 곽 교육감과 박 교수간에 단일화 댓가로 돈을 건네기로 했다고 합의를 했다고 가정해 보지요. 이 경우 솔까말, 곽교육감이 돈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곽교육감은 실제적으로 어떤 피해도 받지 않습니다. 분통이 터진 박교수 측에서 이를 언론에 터뜨린다고 해도 그런 합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그런 이면 합의는 자신의 정치적인 양심상 도저히 지킬 수 없었다고 주장하면,  제가 보기엔 곽교육감측이 여론을 끌어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입니다. 교육감이 되고 난 이후에 박교수와 곽교육감간의 관계는, 더 이상 이해 당사자의 관계가 아닙니다. 이미 당선이 된 이상, 곽 교육감이 어떤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의 실현을 위해 댓가성 있는 돈을 건넬 이유가 별로 없어보인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 혹은 이해를 실현시키는 돈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한 인간으로써의 도의적인 책임입니다. 완주를 했다면 자기 대신 교육감에 당선될 수 있었거나 혹은 적어도 일정액의 선거 비용을 선관위로부터 돌려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은, 교육감이 된 이후에 곽노현에게 마음의 짐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교육감 이후에 나간 총장 선거에서도 또 떨어지고...선거때문에 진 사채는 늘어만 가고... 그것 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하다는데...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도덕적인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원인 제공은 선거 비용을 보전 받도록 제 때 단일화를 하지 못한 두 후보간에 있지만, 그런 상황을 만든 책임  때문에라도 곽 교육감은 어느 정도 자신이 박 교수의 처지를 도와줄 도덕적인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2억이라는 돈은 액수 자체는 커보이지만, 서울시 전체 차원의 선거 운동을 위해 후보들이 써야 하는 돈의 액수로 따져 놓고 보면 사실 그리 크지 않는 돈입니다. 당장 이번에 서울시 차원의 무상급식 주민 투표 치르는데만 180억이 들었지요. 서울시장이 되고 나서 곽노현이 선관위로부터 돌려받은 돈만 35억입니다. 박교수측이 그 동안의 선거 캠페인을 통해 들인 비용에 비하면, 2억이라는 돈은 그리 크지 않은 공산이 큽니다. <2억이라는 돈을 어떻게 선의로 줄 수 있느냐> 라고 말할 때, 많은 분들이 그 점을 간과하십니다. 당장 박교수가 사퇴하지 않고 완주했었더라면, 설사 당선이 못되었다고 하더라도 2억보다 큰 액수의 돈을 선관위로부터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사안의 경중을 감안해 볼 때, 곽교육감의 도덕적인 부담감을 덜어내기에 2억이라는 돈이 터무니 없이 큰 돈은 아니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5.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법적인 원칙이 아니라, 시민이 가져야 하는 시민적인 덕성이자 한 사회의 도덕적, 정치적인 원리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한 인간을 도덕적으로 매도하고 막다른 코너로 몰아가지 말자...왜냐하면 나도 그런 비슷한 상황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까.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고 하는 것의 정치적 내용이 쉽게 말해 이것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수 명의 살인을 했다고 여겨지는 연쇄 살인 피의자에 대해서도 움직일 수 없는 살인의 객관적이고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심지어 자신이 죽였다고 피의자가 자백을 한다고 하더라도, 적용되는 것이 무죄 추정의 원칙, <묻지마 돌던지지 말기> 원리입니다. 곽노현의 입장에서 곽노현이 처했을 도덕적인 난감함을 진지하게 노려해 본다면, 과연 어느 누가 곽노현이 부당한 방법으로 박교수를 돈으로 매수하려고 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곽노현의 선의를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도덕적인 딜레마가 분명히 존재하고 또 그 선의를 부인할 수 없이 깨뜨릴 수 없는 증거도 제시가 안된 현재의 이 상황에서,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 진보적인 가치를 노력해 보려고 진지하게 노력해 온 사람에게 그런 행위는 묻지마 돌팔매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p.s. 녹취록의 증거 능력에 관한 한국일보 기사 하나 첨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