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ight Side of Being Blue」를 읽고 있다.

 

The Bright Side of Being Blue: Depression as an Adaptation for Analyzing Complex Problems

Paul W. Andrews, J. Anderson Thomson, Jr.

Psychological Review, 2009, Vol. 116, No. 3, 620-654

http://jandersonthomson.com/wp-content/uploads/2009/10/Andrews_Thomson_PsychReview_2009.pdf

 

이 글의 내용 중 대부분은 이 논문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논문의 저자들과 생각이 똑 같은 것은 아니다.

 

이 논문은 우울증의 진화 심리학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내가 보기에는 아주 훌륭하다.

 

이 논문을 다 읽은 다음에 가능하면 이 글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이다.

 

 

 

살다 보면 망설임 없이 즉시 행동해야 좋을 때도 있지만 심사숙고한 후에 행동해야 좋을 때도 있다. 예컨대 눈 앞에 사자가 있을 때에는 사자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보다는 즉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이럴 때에는 공포 기제가 작동하여 인간이 즉시 적응적 행동을 취하도록 만든다. 결혼과 같은 중대한 문제의 경우에는 심사숙고한 후에 결정하는 것이 대체로 적응적일 것 같다. 그럴 때를 위해 심사숙고 기제가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심사숙고 기제가 진화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 때에 심사숙고해야 하는가?를 따지는 기제 역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런 기제가 없다면 심사숙고 기제가 있어 봐야 소용이 없다.

 

 

 

만약 심사숙고 기제가 진화했다면 그 기제는 어떻게 생겼을까? 여러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 기제는 특정한 문제에 집착하도록 만들 것이다.

 

얼핏 보면 그 사람의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지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 집착하면 다른 문제에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자가 예쁜 여자가 옆에 있을 때, 특히 그 여자가 옷을 벗고 있다면, 수학 문제를 잘 못 푸는 것과 비슷하다. 수학 문제를 푸는 능력만 보면 인지 능력이 떨어진 것 같아 보이지만 뇌에서는 지금은 수학 문제를 풀 때가 아니라 짝짓기에 집중할 때다라는 적응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문제 해결 능력은 떨어지지만 그 특정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깊이 있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마음에서 떨쳐버리기 힘들 것이다.

 

의식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기도 어쩔 수 없이 그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은 어느 정도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사숙고 기제가 있음을 암시한다.

 

 

 

둘째, 그 특정한 문제와 관련된 기억력이 강화할 것이며, 그것과 관련된 분석력도 강화할 것이다.

 

 

 

셋째, 심사숙고 기제는 떠들썩한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그런 모임은 심사숙고를 방해한다. 반면 혼자 동떨어져서 골똘히 생각하거나 현명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욕망이 생길 것이다. 그런 대화는 심사숙고에 도움이 된다.

 

 

 

넷째, 신체 에너지가 뇌에 집중될 것이다. 따라서 면역 기능이나 소화 기능 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다섯째, 감각이 둔화할 것이다. 감각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많이 휘둘리면 심사숙고하기가 힘들다.

 

 

 

여섯째, 쾌락 추구 경향이 약화할 것이다. 이런저런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심사숙고에 방해가 된다.

 

 

 

일곱째,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에도 소홀해질 것이다. 최대한 심사숙고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쾌락 추구 행동도 줄이고 일상의 의무도 소홀히 하는 것이 유리하다.

 

 

 

여덟째, 그 특정한 문제와 관련하여 행동이 우유부단해질 것이다. 심사숙고가 어느 정도 끝나기 전에 그 문제와 관련하여 섣부르게 행동을 취한다면 심사숙고의 결과를 유용하게 사용하기 힘들다.

 

결심을 반드시 의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심사숙고 기제가 작동한 결과 생성된 결정이 상당부분 무의식적으로 작동할지도 모른다. 어떤 여자에게 두 남자 AB가 거의 동시에 연애를 하자고 제안했다고 하자. 두 남자가 모두 매력적이며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이럴 때에 심사숙고 기제가 작동할 것이다. 심사숙고 기제의 출력 값을 그 여자가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사숙고 기제가 작동하여 A를 선택하기로 결심하면 그 여자는 자신이 왜 B가 아닌 A를 사랑하게 되는지도 모르는 채 A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심사숙고 과정 중 일부는 의식되지 않을 것 같다.

 

 

 

아홉째, 심사숙고 기제는 무한히 오랫동안 작동해서는 안 된다. 심사숙고를 끝내고 행동에 옮기도록 하는 결심으로 귀결되어야 적응적이다. 무한히 심사숙고만 하는 사람은 제대로 번식하기 힘들다. 대체로 중대한 문제일수록 더 오랫동안 강렬하게 심사숙고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고, 면역 기능이나 소화 기능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심사숙고 기제의 반갑지 않은 부작용이다. 하지만 에너지와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다른 많은 것들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 체온을 올리는 기제가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경우와 비슷하다.

 

 

 

심사숙고 기제가 항상 적응적으로 잘 작동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것은 발열 기제가 때로는 섭씨 40도가 넘는 고열로 이어져서 뇌 세포가 손상되거나 사망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심사숙고 기제와 우울 기제가 함께 작동할 때 때로는 젊고 건강한 사람이 자살하는 것과 같은 부적응적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해서 두 기제 자체가 잘 설계된 적응이라는 점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방 축적 기제가 현대 사회에서는 비만으로 이어지기 쉽듯이 우울한 상태에서 심사숙고를 할 때 현대 사회에서는 사냥-채집 사회에 비해 심각한 우울증으로 많이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 환경과 현대 환경의 차이에서 비만의 원인을 찾을 수 있듯이 과거 환경과 현대 환경의 차이에서 심각한 우울증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울할 때 많은 경우 심사숙고 기제가 작동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심사숙고 기제가 우울할 때만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볼 이유는 없어 보인다. 결혼 결정과 같은 행복한 고민도 있을 수 있다. The Bright Side of Being Blue」에서는 심사숙고 기제와 우울 기제를 동일시하는데 우울 기제와 구분되는 심사숙고 기제가 따로 진화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청혼을 했을 때에 곧바로 결정해서 답하는 것보다는 심사숙고를 하는 것이 적응적일 것 같다. 이럴 때에는 행복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자신을 학대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때에는 남편과 헤어져야 할까?라는 문제를 두고 번민에 빠질 것이다. 이것은 우울한 고민이다.

 

만약 심사숙고 기제와 우울 기제가 따로 존재한다는 내 추측이 옳다면 어떤 사람이 우울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에도 어떤 특정한 문제에 집착하고, 그 문제에 대한 기억력이 강화할 것이며, 떠들썩한 모임보다는 현명한 사람과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다른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감각이 둔해지고, 쾌락을 덜 추구하며, 일상적인 일에도 소홀해지고, 그 문제와 관련하여 우유부단해질 것이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문제에 집착하고, 그 문제에 대한 기억력이 강화할 것이며, 떠들썩한 모임보다는 현명한 사람과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다른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감각이 둔해지고, 쾌락을 덜 추구하며, 일상적인 일에도 소홀해지고, 그 문제와 관련하여 우유부단해질 것이다.

 

만약 집착, 감각 둔화, 기억력 강화, 쾌감 둔감화 등과 같은 이런 현상들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이것은 자연 선택에 의해 심사숙고 기제가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설계 논증(argument from design)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의식적 통제를 벗어나서 그런 현상들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선천적인 기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다른 동물에게도 심사숙고 기제가 있을까? 이론적으로 볼 때 다른 동물에게 심사숙고 기제가 진화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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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