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연 교수의 대담이라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네요. 그런데 이 분의 말씀 중에 저의 생각과 비슷한 점이 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역이슈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것이라는 것은 다시확번 확인되는 것이었고 지역주의 망국은 한국에서만 통하는 그릇된 통념이라는 것이죠. 중요한것 지역주의 자체가 아니고 지역주의를 통해 담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이냐 하는 것일 겁니다. 나아가 지역과 계급이 가지는 동등성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 쓴 글이 있긴 합니다.


 

지역주의 담론에서의 구성의 오류에 대해

지역과 계급문제의 올바른 관계설정에 대해 

한국의 지역주의 (망국)론의 부적설성에 대해서  

지역주의 담론의 허와 실 (2) - 3김 청산론을 중심으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독재세력이 퍼뜨린 지역주의 망국론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새빨간 거짓말이고 나아가 민주주의 추동의 가장 큼 힘이 되었던 호남의 지역주의조차 망국적이라고 비하하는 행태가 가지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경북의 지역주의' 나아가 3당합당이후에는 '영남의 지역주의'가 문제였을 뿐이죠.

놀라운 것은 지역주의 망국론을 퍼뜨리면서 항상 이익을 보는 세력은 영남의 윗대가리 독재세력 잔당이었다는 것이죠. 나아가 민주화가 된 지금도 여전히 지역주의 망국론으로 이익을 보는 세력은 야 야 수구 보수 진보를 불문하고 영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익에 있는 곳에 범죄자가 있다는 말에서 보듯 지역주의 망국론으로 이익을 보는 자가 바로 그 지역주의 망국론 나아가 (패권적 속성을 감추기 위한) 지역주의를 퍼뜨리는 장본인 것이죠.

그 이유는 지역주의 망국론은 영남패권의 패악성을 감추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죠. 동시에 정치 경제 언론 학계에 강력한 힘을 가진 영남은 지역주의 망국론을 통해 반호남주의를 퍼뜨리는 통로로 이용해 먹습니다. 그 결과 지역주의 망국론의 결론은 항상 반호남주의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87년 대선에서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지역주의 망국론은 역설적으로 노태우를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일등공신이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지역주의 망국론으 어이없게도 항상 반호남주의 반김대중주의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민주 vs 반민주 구도를 희석시키는 아주 좋은 정치적 아젠다가 된 것이죠.

문제는 민주당 내부에서 다시 이놈의 지역주의 망국론이 그것도 노무현 대통령과 그 친위세력에 의해 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민주당 내부의 극심한 분열과 민주당 내 영남인맥의 대거 충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나아가 지금 목도하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은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 특정지역 출신이 거의 독점적으로 대통령을 해먹고 있는 실정이고 앞으로 몇십년 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현재 나오는 후보군들이 우연인지 의도인지 죄다 영남출신이라는 것이죠.)

솔직히 지역주의 망국론은 영남이익을 위한 영남패권유지를 위한 정치적 아젠다일뿐 정작 그 실체는 모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지역주의 망국론이라는 해괴망칙한 이론에 얽혀 있는 한 영남패권은 주구장창 강화될 겁니다. 계속 이런 지역주의 망국론에 놀아나는 한 앞으로 여든 야든 수구 보수 진보든 영남출신이 주도하는 정국이 될 현실을 곧 목도하게 될테니 말입니다. 나아가 대권후보에서도 영남일색에 간간히 구색으로 몇 맞추는 꼬라지가 반복될 겁니다. 대통령은 앞으로 반세기 가까이 영남출신 대통령만 보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야권에서 영남출신을 몰아내자 이런 소리는 아닙니다. 제가 진정 바라는 것은 한나라당에서 호남대통령이 나오는 것이죠. 그래야 소위 지역주의 타령하는 사람들이 뇌까리는 그 놈의 지역주의가 제대로 극복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문제는 야권의 변화속도에 비해 여권 즉 한나라당은 너무나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 이후 야권의 권력구도 변화가 너무 영남프리미엄 행태로 가고 있는 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 뿐입니다. 야권은 프리미엄이 아닌 상호 공존하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 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놈의 지역주의 망국론이나 영남후보론 걷어 치우세요. )

민주당이 극단적으로 영남을 우대하면 한나라당도 변화할거라는 기대를 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당처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호남출신을 대통령 후보로 뽑지는 않는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설사 뽑는다고 하더라도 그 호남출신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노무현이 과거 했던 정도로 한나라당을 숚대밭으로 만들어놔야 아마 그게 가능할 거라는 거죠. 이정도 되면 한나라당 내에서 지역주의 극복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인식할 수 있을 겁니다.

결론은 지금과 같은 지역주의 망국론, 영남 후보론이 아무런 반성없이 계속 유권자들의 뇌에 최면행태로 주어진다면 그것은 영남패권의 강화, 실질적 권력분립의 붕괴, 민주주의 후퇴로 귀결될 뿐이고 이론적으로는 내부식민지론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런 논의가 어쩌면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이래 영남패권 전술의 기본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다루어 보았고 영남 전체가 동원되어 그 권력을 유지해 보았던 전력이 있음을 또한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런 식견도 없는 박근혜를 무대포로 띄우는 영남의 권력의지와 권력운영경험을 무시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나마 이것을 막는 길은 한나라당을 압박하고 잘못된 지역주의 망국론이 진정 누구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는지를 계몽하는 길 밖에 없을 겁니다.

일단 제 의견은 여기까지 하고 대자보에 실린 글을 단락형태로 편집해서 올려봅니다.

1. 최악의 호남차별은 학계에서 이루어져

그 이유는 당시나 지금이나 호남(인) 차별이 가장 심한 곳이 학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공직은 언론들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심하기 때문에 고건이나 강운태나, 뭔가 얼굴마담으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을 출세시켜줬습니다.

2. 그람시와 이탈리아의 지역주의 - 지역 계급연합방식을 모색

내가 개진한 내용은 진보이론의 정통적 이론입니다. 핍박받는 민중을 칼 마르크스는 계급이라는 이름으로 발견했습니다. 레닌은 계급 이외에도 피압박 민족이라는 이름의 대중을 또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그람시는 ‘소외된 지역’이라는 이름의 핍박받는 대중을 발견해서 진보이론에 추가했습니다. 그걸로 이탈리아를 파시즘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범주, 즉 계급이나 민족밖에 모르는 평당원에서 간부들까지에 이르는 공산당 당원들이 설득이 안 되는 거였습니다. 당의 전략전술을 바꿀 수가 없었죠. 그람시 자신의 전략적 논문에서 서술된 지역개념에 따르면 남부 이탈리아 농민들의 자식들이 중북부 지역에서 전부 노동자 생활을 합니다. 한국의 호남에서 하듯이 말입니다. 이탈리아의 남부 지역은 두 부류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입니다.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가 똑같이 소외되어 있으니까 남부 연합을 꾀해야 했습니다. 남부지역 연합과 북부의 노동자가 계급과 지역연합을 이중으로 체결해서 파시즘에 대항하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람시의 주장이 무시된 이유로) 선거에서 졌습니다. 그 결과 그람시는 무솔리니의 파시즘 체제에서 감옥으로 잡혀가서 거기에서 죽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실현되지 못한 그람시의 전략은 한참 후인 1981년에 프랑스의 미테랑에 의해서 채택됩니다. 남부지역의 사회당 조직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농민들뿐이었으니까 노동자 중심이론만 고수했던 프랑스 사회당은 아예 조직이 없었습니다. 프랑스 남부 지역 농민의 자식들이 파리로 올라와서 노동자 생활을 했습니다. 미테랑의 전통적 노동계급과 남부의 소외된 지역들을 연합시켜, 곧 지역주의를 활용해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겨우 0.6% 차이로 승리했습니다. 나는 이런 일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DJ는 당시 어떤 상황이었냐면, 지역이라고 하면 자꾸 만지면 만질수록 커지는 여의봉 같은 것이기에 지역 문제는 아예 손대면 안 된다는 미신 같은 믿음을 본인은 물론이고 참모와 비서들도 갖고 있었습니다. 동교동 사람들이 지닌 그 미신 같은 믿음을 내가 조금씩 차츰차츰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3. 서양의 지역주의

- 공 : 보충질문을 하겠습니다. 방금 전에 미테랑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주제입니다. 교수님께서 워낙 박학다식하시다 보니까 동서고금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기분입니다. 좌파의 거두 미테랑이 지역연합을 통해서 집권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저도 실은 오늘 처음 들어본 소리입니다.

= 황 : 서양에 대해 아는 척하는 사람들은 매일 개그맨 이야기만 합디다.

- 공 : 무슨 말씀이신지?

= 황 : 서양만큼 지역적으로 분열된 곳이 없습니다. 지역 때문에 테러까지 하고, 심지어는 전쟁마저 불사합니다. 한국의 지역갈등은 대단히 평화적입니다. 선거 때 투표 한번 하는 걸로 발휘될 따름입니다. 서구는 매우 노골적입니다. 정부도 따로 만들고, 화폐도 따로 발행합니다. 프랑스의 코르시카 섬 같은 경우는 헌법과 깃발마저 따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독일도 바이에른 지방의 헌법이 별도로 존재합니다. 국기도 따로 있어요. 중앙정부에서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연방에서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게 예사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는 매우 평화적입니다.

- 공 :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지역담론을 폐기하자고 외치는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제가 교수님을 자주 비판하는 사람들을 일단 예로 들겠습니다. 예컨대 황태연 교수님을 가장 많이 비판했던 사람 중에 하나가 진중권 씨입니다. 논객 시절의 유시민 씨도 그렇고. 우리 정치가 이제는 지역담론에서 계급담론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분들이 항상 거론하는 예가 프랑스와 독일 같은 서유럽 국가들입니다. 그분들이 평상시에 하는 주장들이 “서구를 보라. 저들은 지역 얘기 안 하지 않느냐? 우리도 빨리 호남, 영남 이런 애기 하지 말고 유럽식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그분들이 말과 막걸리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겠네요.

= 황 : 그분들은 서양을 수박 겉핥기로 봐온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서양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그들의 핵심적 정서를 파고들어가고, 그들 나라의 국가원수와 기자들을 자주 만나보고 그랬습니까? 나는 그러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3년 동안 한겨레신문의 프랑크푸르트 통신원으로 일했고, 그들의 헌법구조와 정치상황과 정당조직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분들이 그람시의 지역테제가 있는 줄이나 과연 알까요? 그들이 미테랑이 지역연합에 기초한 선거 전략을 수립한 일을 아나요? 이에 관해서 단 한 편의 논문도 발표한 적이 없을 겁니다. 서구의 선거를 직접 연구하지 않으면 어떤 전략을 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서구의 선거 책임자들을 만나보지 않고는 알 방법이 없어요.

독일도 그렇지만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선거를 잘 보세요. 남부와 북부가 지역적으로 완전히 나눠져 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김대중 정부 때 부산에서 낙선합니다. 자기 고향에서 타 지역 정당 소속 후보로 출마하는 경우에는 자기 고향이어도 떨어지는 경우가 잦습니다. 앨 고어의 고향이 테네시입니다. 거기는 남부입니다. 공화당이 몰표를 받는 곳입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고어가 고향인 그곳에서는 졌습니다. 자기 고향에서 패배한 겁니다. 똑같이 고향에서 진 건데 거기는 민주주의고, 여기는 지역주의? 그것은 미국정치와 한국정치의 공통된 속성인 지역정치의 테제를 우리가 거꾸로 뒤집어서 적용한 결과입니다. 그게 바로 지역주의의 보편적 특성인데 왜 달리 해석하느냐는 말을 내가 했습니다. 지역주의를 통째로 무시하려 드는 담론은 잘못된 것입니다. 서양은 계급적 범주로 생각하니까 다 진보적이고, 여전히 지역주의에 갇힌 한국은 망국병에 걸려 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한국처럼 지역갈등이 평화적이고 온건하며, 건설적인 양상으로 전개되는 곳도 드뭅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의 시간적 상실 없이 연속적으로 이룩했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이 발전한 것은 그만큼 치열하게 영호남이 갈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야 합니다. 경쟁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경쟁을 일부러라도 만들어내야 합니다. 당파 싸움을 일부러 만들어야 발전하는 법입니다. 서로 야합하면 다 같이 몰락하고 맙니다.

- 김 : 우리는 미국처럼 공화당 한번, 민주당 한번 이런 식이 아니라 영남이 계속 패권을 쥐고 있는 상황입니다.

= 황 : 그러니까 그것을 깰 수 있으려면, 우리는 호남사람이 아니라고 자기부인을 해버리는 방법으로는 깨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소외지역이 뭉쳐서 패권지역을 역으로 포위해야 이긴다는 것이 내 지역연합론의 핵심이었습니다. 다만 호남이 소외지역의 맹주 역할을 수행할 수는 있을지언정 독식은 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해보겠습니다. 천 원짜리 담배 사면서 돈 2백 원 모자라면 2백 원만큼 꾸면서 담배 열 개비 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양보를 하면 맹주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2백 원 꿨으니까 장관자리 20개 중에서 너희는 2개만 가져가고, 나머지 모두는 우리가 먹겠다고 그러면 그들이 우리를 돕겠습니까? 우리가 희생할 각오를 하고 협상을 할 수 있는 탄력성이 있어야 합니다.

아까 하던 말씀을 마지막으로 보완하면 서구 자체가 엄청나게 지역갈등이 심각합니다. 칼 마르크스조차 웨일즈 노동자와 스코틀랜드 노동자와 잉글랜드 노동자가 똑같은 노동계급임에도 노동계급 안에서 너무 치열하게 싸우는 바람에 노조를 조직할 수 없다고 푸념할 정도였습니다. 지역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정서적으로 소통되고 있는 하나의 단체입니다. 반면, 계급은 이해관계로만 구성되어 있는 이유로 새롭게 단체를 만들어야 하는 커다란 차이가 양자 간에는 있습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고민이 심해서 서양의 진보세력들은 스스로 계급이라는 말을 당에 내세우기보다, 땅의 색깔로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 중부 지역은 노랗고, 북부지역은 빨갛습니다. 남쪽지역은 시커멓습니다. 그 지역 출신이라면 사람들이 인지하는 매개범주가 있기 마련입니다. 바이에른 태생이면 이 인간은 보수적이겠구나 하는 식으로, 땅을 가지고 진보와 보수와 중도를 가릅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을 깊이 이해하면 그들의 성문화도 우리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들의 정치와 지역문제 또한 우리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몇몇 한국 사람들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서양을 보고 와서, 또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런 헛소문을 내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역태제를 거두어드릴 때가 됐다거나, 지역의 깃발을 내려야 될 때가 됐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말과 행위로써 패권을 쥔 특정지역의 편을 이미 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손호철 교수 같은 학자들이 ‘3김을 넘어서’ 유형의 책들을 썼습니다. 내가 지역패권에 대한 책을 쓰니까 이에 대응하여 썼습니다. ‘3김을 넘어서’라는 책이 2만 부 정도 팔렸는데 그 책을 지지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였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서울과 경기도 토박이들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이 자기들의 이득을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상실감이 있는 사람들이 그런 책을 좋아했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권력을 독차지해온 영남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호남이 집권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방법으로는 아무도 지역으로 나눠먹지 말자고 외치는 것이 제일 좋았기 때문입니다. 지역태제를 무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해 지역투쟁을 벌이는 겁니다. 자기 나름대로 지역주의 싸움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4.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은 옳지 않다.

- 공 : 그럼 제가 이제 진행을 해보겠습니다. 교수님이 주장하시는 담론에 의거하는 현실정치 세력이 탄핵국면에서 거의 몰락하지 않았습니까? 그 와중에 교수님께서도 갑자기 생뚱맞게 공자나 주역을 연구하시게 됐고.

= 황 : (목소리를 높이며) 그렇게 이해하는 패러다임 자체가 한국의 정치사를 무시하는 일입니다. 옛날 박순천 씨가 정치에서 물러나고, 남아 있는 건 젊은 DJ 하나뿐인데 이철승 씨마저 DJ를 도와주지도 않고 있을 때 상황이 어떤지 알아요? YS가 민주당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기택 씨는 옆에게 계속 김영삼 씨를 도와줬습니다. 헤게모니를 호남세력은 이미 싹 잃어버린 겁니다. 당시에도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민주화세력이 김대중을 비판적으로 지지해주고, 호남사람들도 DJ를 꾸준히 응원했습니다. 호남이 김대중이 이끄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것은 사실 DJ 개인의 역사에서도 최근의 일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탄압이 무진장 극에 달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상황입니다.

- 공 : 지적하신 것처럼 지금도 또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입니다.

= 황 : DJ가 처음 등장해서 자기 이름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던 시대는 마치 지금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 공 : 저도 그렇게 봅니다. 이른바 단일화 프레임이 작동을 시작하면서 지금 현재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의 흐름으로 다시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문제는 교수님의 답변을 꼭 듣고 싶은 부분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좀 전에 절반이라도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로서는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으로 나아가도 상관없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그런 논리를 펴고 있거든요. 영남이 야당의 헤게모니를 쥔다한들 그게 무슨 대수이겠느냐, 불완전하나마 여하튼 정권 찾아와서 약간이라도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이 진보지 하는 것이 그쪽 사람들의 주된 논지입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교수님이 말씀하신 논리에 주어만 바꾸어 대입시킨 느낌을 줍니다.

= 황 : 이것과 그것은 헤게모니의 주체가 다릅니다. 조종간의 위치를 다른 데 넘기라는 소리입니다. 내 이야기는 담배 20개비 가운데 12개비를 주더라도 이쪽에서 조종간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공 : 그러나 그 조종간이라는 게 실제로는 애매하지 않습니까?

= 황 : 저들이 말하는 절반의 진보는 다른 세력이 집권하는 것입니다. 다른 세력이! 뻐꾸기들이 와서 집권하는 거라고. (‘뻐꾸기’라는 단어에 이르러 황태연 교수는 유독 힘을 주어 말했다.)

- 공 : 뻐꾸기라면 김만흠 교수가 언급했던 그 개념인가요?

= 황 : 일종의 ‘탁란’이죠, 탁란! [탁란(托卵)은 새가 자기 스스로 둥지를 만들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게 하는 것을 지칭한다. 탁란하는 새로는 뻐꾸기가 유명하다. - 편집자 주] 민주당과 핵심적 호남 표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 키워서 날려 보내는 인큐베이터 역할밖에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정당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지역의 이익을 중요한 이익으로 대변할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타지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호남 아니면 충청 출신일 겁니다. 그것은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사람들이 잉글랜드에서 노동자를 하고 있어서 노동당을 만든 것입니다. 잉글랜드 노동자들이 노동당 찍어줄 것 같아요? 안 찍어줍니다. 잉글랜드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에 기반한 정당인 보수당을 지지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 성향입니다. 그 자체를 탓하면서 정치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소외의식을 가지고 있고, 자꾸만 소외를 당하니까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자꾸 금을 흐트러뜨리고 전선을 교란시킵니다.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최초로 대면했을 때는 DJ가 정치에 대한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 솔직히 말하면 지금보다 더 열악한 상태였습니다. 왜? 깃발을 들어야 하는 당사자가 완전히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상황이 절망적이겠습니까? 그래도 그것을 그 사람한테 그렇게 귀에 닿는 대로 자꾸 얘기하고 설득해서 올바르게 가게끔 하는 것이 나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하면 자꾸 설득하고 싶습니다. 그 길을 벗어난 비정상적 수단으로는 집권하지 못하고, 집권하더라도 탁란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지난번처럼 비참한 배신감만을 느끼게 될 겁니다.

**참고로 계급문제에 대해 저는 이미 복지문제로 접근한 바 있습니다.** 

4대강사업과 감세 그리고 소득재분배

오늘 100분토론 세율문제와 조세부담율 계층별소득세부담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