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오해

 

도킨스(Richard Dawkins)가 만들어낸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라는 말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어만 보면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이나 욕망이 있어야 이기심을 품을 수 있는데 유전자는 생각도 할 줄 모르고 욕망도 없기 때문에 이기심을 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킨스가 이런 것도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는 아니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이기적 욕망을 품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약간이라도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이기적 유전자』의 제목만 본 것이 아니라 책 전체를 정독했다면 이런 식으로 오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기적 유전자 때문에 인간이 이기적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인줄 안다. 즉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일종의 성악설을 폈다고 생각한다. 역시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만 보면 충분히 이런 식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이기적 유전자』을 정독했다면 이런 식으로 오해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오히려 동물의 기성보다는 이타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 책에서 어떻게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동물을 만들어내는지를 해명하려고 한다.

 

 

 

이기적 유전자론이 유전자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몽땅 결정한다고 보는 극단적인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이기적 유전자론을 옹호하는 어떤 학자도 이런 바보 같은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이기적 유전자란?

 

어떤 유전자좌(locus)에 대립유전자(allele) A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A가 개체의 표현형에 영향을 끼친다고 하자. A가 개체의 표현형에 끼치는 영향이 결국 세대가 지나면서 유전자 풀(gene pool)에서 A가 차지하는 비율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A가 유전자 풀에서 복제되는 정도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만약 평균적으로 A가 유전자 풀에서 자신이 더 잘 복제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표현형에 영향을 끼친다면 당연히 A가 유전자 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반대로 만약 평균적으로 A가 유전자 풀에서 자신이 덜 복제되도록 하는 반향으로 표현형에 영향을 끼친다면 당연히 A가 유전자 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아주 뻔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이 이기적 유전자 개념의 핵심이다. 자신(개체가 아니라 유전자를 말한다)이 더 잘 복제되도록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에서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유전자는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결국 유전자 풀에는 자신이 더 잘 복제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쳤던 유전자만 남는 경향이 있다. 자연 선택은 그런 방향으로 일어난다.

 

 

 

도킨스는 이런 경향을 의인화했다. 자연 선택의 결과를 보면 마치 유전자가 자신을 복제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것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복제를 유전자의 이해관계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 복제라는 이해관계를 이기적으로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기적 유전자라고 부른 것이다. 이런 투박한 의인화는 초보자를 매우 헷갈리게 하는 것 같다. 헷갈릴 때에는 이기적이라는 말도 이해관계라는 말도 없는 위의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왜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에 초점을 맞추는가?

 

왜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 왜 개체 수준의 자연 선택에 대한 분석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개체 수준의 선택으로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를 해명하기 힘들다.

 

첫째, 유전자 수준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잘 정립된 친족 선택 이론이 탄생할 수 있었다. 개체 수준에서 분석하면 동생의 자식과 같은 방계 자손과 관련된 자연 선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개체 수준에서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 개념으로 분석하면 된다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포괄 적합도 개념 자체가 유전자 수준의 분석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포괄 적합도 개념을 쓰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유전자 수준의 분석에 의존하는 것이다.

 

둘째, 개체 수준에 초점을 맞추면 이기적 유전자 요소(selfish genetic element)와 유전체내 갈등(intragenomic conflict)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통상적으로 개체가 더 잘 번식하면 그 개체 속에 있는 유전자도 더 잘 복제된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유전자는 개체의 번식 능력을 손상하면서까지 자신이 더 잘 복제되도록 하는데 그런 유전자를 이기적 유전자 요소라고 부른다.

 

 

 

유전자(gene)가 유전(inheritance)의 전부는 아니다. 따라서 유전자 수준의 진화 또는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이 진화 또는 자연 선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를 유전자의 빈도 변화로 정의하기도 한다. DST(developmental systems theory, 발달 체계 이론) 지지자들이 이 점을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유전자의 수준의 진화에 대한 연구가 진화 연구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 심리학자들은 주로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에 초점을 맞춘다. 그 이유는 아직 진화 심리학자들이 응용할 만큼 획기적인 진전이 비유전자 유전(non-genetic inheritance) 연구에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유전자에 초점을 맞춘 친족 선택 이론에 버금가는 대단한 성과가 비유전자 유전과 관련하여 발표된다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기꺼이 그런 연구를 심리학에 적용할 것 같다.

 

유전자가 유전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DST 지지자들의 주장은 이기적 유전자론과 모순되지 않는다. 이기적 유전자론에서는 유전자가 때로는 표현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전제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유전자가 표현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부정할 생물학자는 21세기에는 사실상 없어 보인다.

 

 

 

이기적 유전자 요소와 DST에 대해서는 아래 책들을 참조하라. 두 권 모두 초보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어렵다.

 

Genes in Conflict: The Biology of Selfish Genetic Elements, Austin Burt, Robert Trivers, 2006

 

Cycles of Contingency: Developmental Systems and Evolution, Susan Oyama, Paul E. Griffiths, Russell D. Gray 편집, 2001

 

 

 

이덕하

201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