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magisterium, 敎權) 개념에 대해서는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Rocks of Ages: Science and Religion in the Fullness of Life』를 참조하라. 여기에서는 과학의 교권과 도덕 철학의 교권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겠다. 그리고 나는 굴드와는 교권 개념을 약간 다르게 사용한다. 굴드는 종교의 교권도덕 철학의 교권을 동일시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종교는 때로는 과학의 교권에도 참견하고 때로는 도덕 철학의 교권에도 참견한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한 때 과학의 교권에 속하는 지동설을 부정하기도 했으며, 구약 성서에는 이웃 나라에 쳐들어가서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전리품으로 차지해도 된다는 도덕 철학 명제를 설파하기도 했다. 따라서 종교의 교권이라는 용어는 혼란만 불러일으킬 것 같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과학의 교권에서는 사실을 다루는 반면 도덕 철학의 교권에서는 당위를 다룬다. 과학의 교권에서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반면 도덕 철학의 교권에서는 규범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진화 윤리학은 당위를 다루기는 하지만 과학의 교권에 속한다. 왜냐하면 진화 윤리학에서는 규범, 양심, 죄책감 등의 진화를 해명하려고 하지 규범을 정당화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온갖 경향의 도덕 심리학도 과학의 교권에 속한다. 도덕 심리학에서는 도덕성과 관련된 심리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목적이지 규범을 정당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진화 윤리학을 도덕 심리학의 한 학파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과학자들의 동물 실험에 대한 규제는 도덕 철학의 교권에 속한다. 왜냐하면 동물과 관련된 현상의 해명이 아니라 동물의 권리에 대한 규범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굴드가 주장했듯이 교권의 경계를 존중해야 한다. 즉 함부로 하나의 교권에서 다른 교권으로 넘나들면 안 된다. 과학의 교권의 명제에서 시작하여 무턱대고 도덕 철학의 교권의 명제로 직행하는 것을 보통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부른다.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사실 명제로부터 규범 명제를 이끌어낼 수 없다.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은 무어(George Edward Moore)이며 그는 나름대로 자연주의적 오류를 정의했다. 하지만 지금은 보통 그가 정의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이 용어를 쓰고 있다. 보통 이 용어는 사실로부터 부당하게 당위를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David Hume)이 그런 오류를 비판한 적이 있다. 흄에 따르면 is(그렇다)에서 ought(그래야 한다)를 이끌어내는 것은 오류다.

 

위에서 무턱대고, 근본적인 수준, 부당하게 등이 삽입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명제에서 당위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이 항상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인간이 농약을 마시면 치명적인 해를 입는다라는 사실 명제 즉 과학의 교권의 명제로부터 농약은 어린이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는 당위 명제 즉 도덕 철학의 교권의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다. 즉 때로는 사실 명제에서 당위 명제를 정당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

 

 

 

근본적인 수준의 규범 또는 도덕적 가치를 사실 명제로부터 이끌어내려고 할 때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나는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수학으로부터 공리(axiom)와 정리(theorem) 개념을 빌려서 도덕 공리와 도덕 정리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이다. 헨리 시지윅(Henry Sidgwick, 1838-1900)이 이미 19세기에 도덕 공리라는 용어를 썼다. 나는 시지윅의 글을 읽어 보지 않았으며 그가 어떤 의미로 도덕 공리라는 용어를 썼는지도 잘 모른다. 도덕 철학에서는 공리정리가 수학에서만큼 깔끔한 개념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나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수학자들이 어떤 정리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을 증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수학 명제가 증명될 수는 없다. 수학자들도 증명을 포기하고 그냥 옳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수준에 부딪친다. 수학자들은 그런 명제를 공리라고 부른다.

 

도덕 공리 역시 그냥 옳다고 가정된다. 즉 정당화를 포기하는 것이다. 에우클레이데스(Εκλείδης, Eukleidēs, Euclid, 유클리드) 기하학과 공리 체계가 다른 비에우클레이데스(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있듯이 도덕 공리가 서로 다른 도덕 체계들이 존재할 수 있다. 도덕 정리는 도덕 공리들에서 유도된다. 물론 그 유도 과정이 수학의 증명처럼 엄밀하기는 힘들 것이다.

 

 

 

도덕 공리와 도덕 정리 개념을 사용하여 농약 보관에 대한 규범이 어떻게 유도되는지 살펴보자.

 

도덕 공리(전제 1): 인간의 목숨은 소중하다.

사실 명제(전제 2): 어린이는 지식과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농약을 아무 곳에나 두면 어린이가 마실 가능성이 있다.

사실 명제(전제 3): 인간이 농약을 마시면 치명적인 해를 입는다.

도덕 정리(결론): 농약은 어린이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도덕 공리를 바탕으로 사실 명제에서 출발하여 도덕 정리를 이끌어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것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도덕 정리는 근본적인 수준의 규범 즉 도덕 공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위에서는 사실 명제에서 출발하여 무턱대고 또는 부당하게 규범을 이끌어 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명제에서 도덕 공리를 이끌어내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하며 그럴 때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부를 수 있다. 도덕 공리가 아니더라도 사실 명제에서 부당하게 규범을 이끌어내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진화 심리학자들은 강간이 적응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강간은 적응이다라는 사실 명제가 강간은 정당하다는 당위 명제로 이어진다고 우려한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추론이 성립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여성주의자들은 사실 명제에서 당위 명제를 무턱대고 이끌어내도 된다고 믿는 모양이다. 만약 사실 명제에서 당위 명제를 무턱대고 이끌어내는 것이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생각한다면 강간은 적응이다강간은 정당하다로 이어진다고 우려할 필요가 없다.

 

강간이 적응이라고 하더라도 강간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번식 경쟁에서의 승리를 도덕적 이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마귀 암컷이 교미를 할 때 수컷을 잡아 먹는다고 해서 살인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연을 모범으로 삼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점점 똑똑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해서 우리가 인간을 더 똑똑해지도록 만들겠다는 우생학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인간 진화의 방향을 우리의 도덕적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위 명제에서 부당하게 사실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을 역자연주의적 오류(anti-naturalistic fallacy, 반자연주의적 오류) 또는 도덕주의적 오류(moralistic fallacy)라고 부른다. 강간은 부당하다라는 규범 명제에서 강간은 적응일 리가 없다라는 사실 명제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그렇다. 백인과 흑인이 평등하게 사는 사회가 바람직하다에서 흑인이 선천적으로 IQ가 낮을 리 없다를 이끌어내는 경우도 그런 오류에 해당한다. 강간은 적응이다흑인이 선천적으로 IQ가 낮다와 같은 과학의 교권의 명제는 사람들의 도덕적 가치가 아니라 과학의 기준에 따라 가려야 한다. 현재의 자신의 도덕적 가치 또는 21세기의 선진 산업국의 지배적 도덕적 가치가 과거의 진화 역사를 결정한다고 믿는 것은 대단한 과대망상이다.

 

 

 

덕하

2011-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