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k people why they support the death penalty or prolonged incarceration for serious crimes, and the reasons they give will usually involve retribution. There may be passing mention of deterrence or rehabilitation, but the surrounding rhetoric gives the game away. People want to kill a criminal as payback for the horrible things he did. Or they want to give "satisfaction' to the victims of the crime or their relatives. An especially warped and disgusting application of the flawed concept of retribution is Christian crucifixion as "atonement' for "sin'

Retribution as a moral principle is incompatible with a scientific view of human behaviour. As scientists, we believe that human brains, though they may not work in the same way as man-made computers, are as surely governed by the laws of physics. When a computer malfunctions, we do not punish it. We track down the problem and fix it, usually by replacing a damaged component, either in hardware or software.

 

Dawkins는 보복이라는 도덕 원칙이 인간 행동에 대한 과학적 견해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하지만 도덕 원칙은 도덕 철학의 교권에 속하는 반면 인간 행동에 대한 과학은 과학의 교권에 속한다근본적인 수준에서 도덕 규범은 과학 명제와 상관이 없다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무엇을 밝혀내든 근본적인 수준의 도덕 규범(근본 규범)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이덕하님이 말씀하시는 '근본적인 수준의 도덕 규범(근본 규범)' 이란, 칸트의 정언명령과 유사한 것으로, 이는 진화의 소산이기에, (후천적으로) 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어떤 사실을 발견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수준의 도덕 규범'은 (거의)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는 말씀이신 것 같다.

맞는 말씀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도덕규범에 영향력을 미쳐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신의 시대,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를 거치면서 자연과 관습이 섞여있는 상태에서 미신적 믿음에서 자연과 관습을 구분해온 것은 과학적 발견, 발전의 역사와 함께했으므로, 이런 의미에서 이덕하님도 사실이 규범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분명 인정할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인정한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의식적' 으로 무엇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가치나 규범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자연 혹은 사실 그리고 그 발견과 과학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논리적으로 사실에서 가치나 규범을 이끌어 낼 수 없다. 포퍼가 말했듯이 어떤 사실에 대해 개인에 따라 다양한 규범이 도출 가능하므로, 하나의 사실로부터 하나의 규범을 도출할 수는 없다. nature 즉 자연 혹은 본성이면 좋거나/나쁘다는 것을 도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가치에 관해 말할 때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항상 오류로서 기각해야만 하는가?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에서 이것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수한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주장을 할 때, 사실을 제시한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도킨스의 주장을 봐야하는 것이 아닌가한다. 그는 tit for tat 이라는 도덕 규범, moral principle 에 자신은 반대하기에,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과학적 사실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tit for tat 자체가 인간 행동에 관한 과학적 견해와 양립할 수 없다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말 이상한 말인데 왜냐하면, 도킨스는 tit for tat 전략을 가장 오래 생존하는 전략이라고 소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로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도킨스 자신의 도덕적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서 제시됐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마치 응보주의나 보복감정에 젖은 이들을 비웃으며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에서는, 계몽주의자들에게서 으레 그렇듯이 지적 오만함을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도킨스가 의도하는 바대로 tit for tat 도덕 규범을 비판하고자 하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효과적이였음은 분명하다.

 어쩌면, 정치 경제적으로 우파적이라고 한편에서 비난받고 도덕적 허무주의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는 도킨스(일파)가 사형제 반대와 응보주의 반대를 통해 도덕적으로 진보적인 모습을 애써 비추며 이런 비난을 무마하려는 정치적 행보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결함있는 인간의 교정이라는 미명 아래 펼쳐지는 또다른 우생학적 시각이라고 비난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또 어쩌면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책임에서 책임을 없애버리려는 무의미한 시도라고 비난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싸이코패스와 중범죄자가 교정되고 치료될 수 있다면, 그것이 비록 유토피아적인 상상일지라도, 비난과 책임을 가하며 벌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세상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한도 내에서 도킨스가 싸이코패스와 중범죄자에게 가해지는 보복감정과 책임을 비웃는 데에 동참해서 함께 그들을 비웃고 싶다.